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전문성과 대중성

korman 2007. 2. 20. 12:41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 연후가 지나고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갔다. 일기예보에는 연휴에 비가 내릴 거라고 하였는데 남쪽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하늘은 연휴 내내 매우 청명하고 따뜻하였다. 설날에 개나리 피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도 같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설 연휴나 추석 연휴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녀들을 동반하고 전통생활양식을 관람할 수 있는 고궁이나 민속촌 또는 조용한 사찰을 찾기도 한다. 한가함이나 여유로움을 즐기기 위함도 있겠지만 이런 기회를 통하여 자녀들과 더불어 우리의 옛 생활상을 엿보고 문화재에 대한 이해도 높이며 서로 헤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궁이나 사찰등 우리의 전통양식을 볼 수 있는 장소에 들어간 사람들이 첫 번째로 만나는 것이 그곳에 대한 안내문이다. 안내문에는 그 장소에 대한 전체 혹은 각각의 시설물에 대한 문화와 역사적 배경, 설치 이유등 간략하지만 관람자들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정보가 적혀있다. 물론 관람자들 중에는 그러한 안내문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녀들과 같이 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녀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또는 자녀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안내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안내문을 한번 읽고 모두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안내문에 사용된 용어가 어려운 한자어 또는 각종 전문용어로 표기된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한자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물론 한자를 많이 알지 못하는 어른들에게도 이러한 안내문은 전체를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준다. 물론 문화재나 옛 생활의 특성상 안내문 표기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안내문을 만드는 전문가들이 전문성을 떠나서 안내문이 어린이를 비롯하여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보다는 좀 더 쉬운 용어를 찾아서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말 안내문에 쓰여진 용어를 영문으로 표기한 영어 안내문에서 영한사전을 찾으면 우리말 안내문에 사용된 용어에 좀 더 쉬운 우리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일전에 화성에 있는 오래된 사찰을 찾은 일이 있었는데 그곳의 안내문에는 “본 사찰은 0000년에 초건하고 0000에 중건하고 0000에 화재로 소실되어 0000에 재건하고......” 이렇게 시작되는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물론 그 옆에는 한자로 토를 달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초건, 중건, 소실, 재건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 사찰의 간축양식에 대한 전문용어는 대하기도 전에 안내문 초입에서 더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좀 더 연구를 하였더라면 꼭 이런 어려운 한자어가 아니더라도 문장이 좀 길어질지언정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몇 년 전에 미국의 백악관에서는 공무원 사회에 지침을 내려 국민에게 발표하는 모든 공식 문서나 안내문에 좀 더 쉬운 용어를 사용하라고 하였다고 한다. 미국이 다민족 국가이기도 하지만 영어에도 쉬운 단어와 어려운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상대로 한 각종 안내문이나 발표문이 진작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들로 꾸며져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배려가 아닌가 생각된다. 언젠가 어느 젊은 친구가 얘기하기를 기안용지에 “.....결재를 바랍니다.” 라고 작성하여 상사에게 올렸더니 어느 나이 드신 분이 “결재를 앙망 하나이다” 라고 고쳐서 그 윗선으로 올리더란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 아직도 그런 문구를 좋아하는 높은 분이 계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용어에는 전문성과 대중성이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전문성을 일반 대중에게 과시할 목적인지는 모르겠으되 누구에게나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가끔씩 있다. 물론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상호간의 업무적 대화에서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를 사용하여야만 일의 능률이 오르고 의사소통도 자유롭다, 하지만 그 같은 용어를 일반 대중에게 사용한다면 상호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될까.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많은 안내문과 각종 표지판들을 대하게 된다. 이런 것들은 그 계통에 종사하는 혹은 관련 부서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에 의하여 만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심심치 않게 지적하듯이 개중에는 많은 문제점을 가진 것들이 적지 않게 있다. 이는 만드는 사람들이 객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된다. 만드는 자신들이야 그 건에 대하여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일반 대중이야 어디 그러한가. 만일 만드는 사람들이 그 건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대중의 생각으로 만든다면 좀 더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는 안내문이나 표지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만일 어떠한 안내문이나 표지판을 확정하기 이전에 관련 전문가, 한글학자, 문학가, 예술가 및 일반인등이 모여 협의체를 구성하고 그들이 초보자의 마음으로 서로 의견을 나누고 가장 대중성 있는 문장이나 용어 및 형태를 구상하여 최종 문구와 모양을 확정한다면 지금 보다는 좀 더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고 아름다운 안내문이나 표지판이 설치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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