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소주 한잔에 전철을 타고

korman 2007. 2. 28. 23:49
 

대한극장 부근에 갔다가 이곳에서 편의점을 하시는, 나와는 오랜 인연이 있는 분을 만나 소주를 한잔 하였다. 심야에 아르바이트 하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자신이 가계를 10시 이후까지 지켜야 한다고 저녁겸 소주나 한잔 같이 하자고 하여 그리 되었다.


대한극장앞 대로는 실제로 퇴계로인데 사람들은 건너편을 비롯하여 그 일대를 통 털어 충무로라고 부른다. 실제로 충무로는 퇴계로에서 한 블럭 들어간 길인데도.

아마도 이 일대가 한국영화의 모태가 된 장소이며 다른 오락적 요소가 없었던 시절에 영화의 힘이 그만큼 강했던 탓이라 생각된다.


이 분의 편의점에는 그 주변의 다른 편의점과 비교하여 싼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주 하나만은 다른 곳 보다 한 병에 100원이나 200원정도 싸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편의점을 개업하고 보니 소외된 노인들이 없는 돈을 털어 안주도 사지 못하고 소주 한두병 사 가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공짜로 드리지는 못하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마음이 좀 편하다고 하신다. 순간 아버지 생각이 난다. 우리 아버지도 술 참 좋아하셨는데.


이 분은 술 마시는 방법이 남과 다르다. 보통 사람들은 소주잔에 따라 권커니 잣커니 하는데 이 분은 둘이 마시면 기본으로 두 병을 주문하고 잔은 소주잔이 아니라 맥주잔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소주를 맥주잔에 가득 붇고 건배를 하고는 각자가 알아서 마시는 속도를 조절해 가면서 마신다. 그러니 잔을 권하거나 돌리는 것은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나이가 많건 적건 자신의 영역에서는 첫 번째 병권은 자신이 갖는다. 나이가 작아도 자신에게 온 손님이니 손님에 대한 예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분과의 술자리는 편하다.


나이가 50 중반을 넘고 보니 술 한 잔 마시고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좀 힘들다. 집이 인천인 관계로 충무로에서 집 까지는 2시간정도가 걸린다. 모든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시간에 전철에서 빈 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노약자석에 가서 앉을 수도 없고 자리를 양보 받을 위치에 있는 나이도 되지 못한다. 용산역에 가서 직행을 타면 좀 빨리 가지만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그곳에서도 앉아 가려면 차를 몇 번 걸러야 하니 그냥 보통차로 간다. 그렇게 부평쯤 가면 자리가 나고 앉을 수 있다. 그러나 선채로 오류동쯤을 지나가면 다리는 쥐가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한정거장은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고 또 한정거장은 왼쪽 다리에 힘을 주면서 버텨 나간다.


필요할 때 가끔은 나도 차를 가지고 서울까지 진입한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주 내내 전철을 이용한다. 이동 거리가 길기 때문에 혼자 타고 다니면서 휘발유를 길에다 퍼 붙는 것이 아깝기도 하지만 차를 몰고 다니면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운전기사를 두고 뒷자리에 앉아 다닐 형편이라면 그렇지 않겠지만 직접 몰고 다니면 그 긴 시간에 라디오나 테이프를 듣는 일 외에는 시간을 그냥 허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철을 타면 졸리면 자고 심심하면 책 읽고 음악이 필요하면 MP3 듣고 그것도 싫으면 앞에 앉은 사람들 인물 감상도 하고..... 그러나 차를 가지고 다니면 시간만 흘려보낼 뿐 오늘처럼 소주라도 한잔 걸치고 갈 수 있는 여유로움도 없다. 


전철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는 하였지만 그래도 불편함은 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은 출퇴근 시간이다. 집에서 서울로 갈 때는 늘 앉아가니 그렇지 않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앉을 수 있는 확률도 희박하지만 사람들이 겹겹이 서서 서로 밀치고 밀리기 때문에 나쁜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뒷주머니의 지갑이 온데 간데 없어진 경우도 한번은 당한 터라. 또 하나 여성들이 옆이나 뒤에 서면 또 신경이 쓰인다. 예전에는 어쩌다 좀 어디를 스치거나 하여도 사람 많은 차 안이라 서로 이해를 하였는데 요새는 만지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차 안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에 말다툼을 하는 것을 가끔씩 본다. 직장에서도 조심해야 한다는데 차 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잘못하다 이 나이에 개망신 당할 일 없어야 하니까.


그럭저럭 동인천에 내렸다. 쥐나던 다리는 부평에서 앉았더니 좀 풀렸지만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15분여 가야 하는데 줄 서서 기다리기가 싫다. 또 서 있어야 하니까. 집에 전화를 하였다. 큰 아이 보고 차를 좀 가지고 동인천으로 오라고 하였더니 이 녀석 회사에서 회식하느라 술을 먹어 나오지 못한단다. 마누라는 무면허고 딸님이는 장롱면허고 줄서서 마을버스 기다리는건 괴롭고, 하여 택시를 탄다. 이것도 대중교통인데 좀 타 보지 뭐 혼자 지껄이며.


아파트 현관 우편함에 초대장이 놓여있다. 조회권 선배께서 보낸 아들의 결혼식 청첩장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큰 녀석도 올해 28이니  머지않아 초대장을 만들어야 할 날이 오겠구나 생각하며 승강기에 오른다.


이렇게 하여 또 오늘도 지나 보내고 꽃피는 춘삼월을 맞을 준비를 한다. 내일 삼일절에 걸어 놓을 태극기를 챙기며.   


2007년 2월 마지막날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피 한잔의 아침  (0) 2007.03.06
3.1절에  (0) 2007.03.02
전문성과 대중성  (0) 2007.02.20
화견 (花見)  (0) 2007.02.12
배려  (0) 2007.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