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3.1절에

korman 2007. 3. 2. 15:41

보물 2호 보신각종

 

 

어제가 3.1절이었다.


아침에 베란다의 유리문을 열고 한쪽에 태극기를 달았다. 깃대를 고무줄로 베란다 난간에 단단하게 묶어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게 고정하였다. 그냥 국기 꽂는 곳에 깃대만 꽂아 놓았다가 바람에 날아가 두 번씩이나 태극기를 새로 장만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TV를 켰다. 모 방송국에서 3.1절 특집으로 애국지사들의 자손들이 어렵게 사는 모습들을 취재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국내에 살건 국외에 살건 모두 어렵게 생활하는 것은 한가지였다. 외국에 사는 애국지사의 자손들은 분명히 애국지사의 자손들로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조상이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국외에서 활동한 대가로 그 후손들은 우리나라 국적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전달한 이 TV 프로그램은, 그러나 이들을 어찌해야 한다는 강력한 해결의 목소리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작년 초인가 친일파 후손들이 조상의 재산을 찾겠다고 국가를 상대로 승소한 사건이 있었다. 그 재산은 일제에 충성하고 동포를 판 대가로 치부된 재산이었다. 다행이도 얼마 전에 국가에서는 친일파의 재산을 파악하여 환수조치 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친일파의 후손이 간직한 재산이라고 하여도 그들이 정당한 방법으로 취득한 재산에 대하여는 국가가 이를 보호해 주어야 마땅하지만 그들의 조상이 매국의 대가로 취득한 부분에 대하여는 환수되는 것이 당연하리라 생각한다. 만일 재판에서 승소한 친일파의 후손들이 독립유공자의 자손들을 위하여 스스로 이를 국가에 헌납한다면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겠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의 농업국가가 아닌데도 쌀 소비량이 줄어 많은 양의 쌀이나 벼의 잉여분이 창고에서 상하기도 하고 이를 관리하고 보관하기 위하여 매년 수십억이 소요된다고 하며 또 국제간 무역협정에 의하여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의무 할당량도 골치 아픈 존재라 한다. 난 이런 기사를 보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쌀이 그렇게 남아 골치 아프다면 밥 한 끼니가 아쉬운 어려운 사람들과 국가유공자 자손들에게 할애하면 될 텐데 무슨 걸림돌이 있어서 그리하지 못하는지. 또 아무리 퍼 주어도 돌아오는 것 없는 저 철면피한 북한 지도부에는 식량을 비롯하여 온갖 것을 틈만 있으면 무상 제공하면서 TV에 소개된 것과 같이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가진 재산을 아낌없이 헌납하고 자신과 가족을 희생한 유공자와 그 후손들에게는 어째서 마땅한 조치가 취해지지 못하고 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큰 아이가 이천에 가서 회사의 물건을 가져와야 한다기에 집사람과 무임승차 하는 기분으로 동행하였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무심코 올려다본, 내가 살고 있는 13동에는 총 90세대 중 단 3세대에만 태극기가 걸려있다. 다른 동을 살펴본즉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현상이라면 내년 3.1절에는 어찌 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축구시합에서만 국기를 보는 것은 아닐는지.


이천에서 잠시 도자기 엑스포장에 들려 여러 가지 형태의 도자기 작품을 돌아보고, 도자기에 무식하니 어느 작품에 감탄하여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천쌀로 지은 돌솟밥 한그릇 먹고 막히는 영동고속도로 하품하며 돌아왔다. 태극기를 걷어야 하는 시간 아파트 1동과 2동 벽 사이로 붉은 저녁노을이 비춰지고 있었다.


2007년 3월 둘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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