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차례상 앞에서

korman 2008. 2. 11. 14:42

 

차례상 앞에서


지난달에 어머니를 보내드린 친구가

그믐날 소주나 한잔 하자고 하여

오랜만에 대구에서 온 친구와 셋이

강남역 뒷골목에서 소주잔을 마주하였다.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음인지

대부분 가계들이 문을 닫았지만

문을 연 곳에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주로 젊은층이었지만,

옹기종기 모여앉아 서로 덕담과

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구에서 온 친구도

부모님 돌아가신지 오래되지 않은 관계로

자연히 부모님 보내 드릴 때의 이야기와

생전의 모습 등을 그리며 

잔을 비우고

이야기는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흘러갔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께서

치매를 가지고 계셨다는 공통점으로.


한달여전에 어머니를 보내드린 그 친구는

날이 갈수록

못해 드렸던 일만이 생각난다고 했다.

누군들 돌아가신 후에

후회 없는 자식이 있을까만

치매를 가지고 계신 분들의 상태를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친구의 마음이

가슴 저리도록 나에게 와 닿았다.


내 어머니는 15년 이상을

그 몹쓸 병을 가지고 계시다 떠나셨다.

그래서 나는 그 병의 진행 과정에 대하여 잘 안다.

때문에 위의 두 친구들은 종종 나에게

자신들의 어머니 상황을 이야기하고

대처 방법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겪었던 만큼의 오랜 세월을 보내지 않고

그 분들은 자식들의 상처와 고생을 덜어 주셨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흐르면

그런 분을 직접 모시는 사람은

고생의 기억 보다는 마음에 아픈 상처가 많이 남는다.

옆에서 물정 모르는 사람들의 입놀림으로 인하여......


차례를 지냈다.

해외에서 일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년 하는 행사를 걸렀다는 기억은 없다.

세월이 세월인 만큼

집안의 풍습과 전통적 법도대로 다 따져서

틀에 꼭 맞는 차례를 지내지는 못한다.

음식을 차려 제상에 놓는다고

가신 분들께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그저 돌아가셨어도 기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랄까.

아니면 이런 날이라도 형제끼리 모두 모여

즐겁게 음식을 나누며 우애를 다지거라 하는

조상의 바람을 들어 드린다고 해야 할까.

차례상에는 부모님 사진이 함께 있거늘

어머니 사진에 시선이 더 머문다. 


우리 조상님들은 이런 좋은 풍습을 만드셨지만

세월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요즈음은 많은 가정들이 이런 때가 되어도

서로 모이지 못하거나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혹자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어떤 가정은 해외에 거주하는 까닭에,

또 어떤 이들은 연휴를 즐기기 위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등등

이런저런 이유 중에서 나는

종교적인 이유로 모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일 안타깝게 여겨진다.

나쁜 풍습이야 종교적인 힘을 빌어서라도 없애야 하겠지만

한 나라의 좋은 전통이 종교적 교리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지켜지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또 한편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직장에 얽매여 가지지 못하는

먼 곳으로의 여행이나 취미활동을

이런 연휴를 통하여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가족 모임이나 차례를 지내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는 것 또한 애석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큰 아이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다.

아비 세대에서는 그리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런 연휴 때나 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가족여행의 기회가 생긴다면 

아비 제사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다만 잊지 않고 사진이라도 가지고 다니며

부모와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여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아니한가.

같은 가족이라도 죽은 자 보다는

살아있는 가족이 더욱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에 아직 아내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죽은 날 제상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그 때마다 나는 아내를 설득한다.

자식들이 부모의 생일이나 기일이나 전통적 풍습을

잊지 않고 지키게 가르치면 그 뿐

죽어서 아이들 생활을 방해하지 말자고.

꼭 정해진 곳에서 상차림 받으려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이 비행기 타면 같이 타고

피자 먹으면 같이 먹고

즐거워하면 같이 웃고 위험하면 보살펴 주고

설에는 있는 그곳에서 세배 받고

그 숨 막히는 땅 속에 누워

자식들이 찾아 올 때를

기다리는 것 보다야 좋지 않겠냐고.

어르신들 들으시면 화내실 일이지만

나는 내 자식들이 전통을 버리지 않으면서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기회 또한

잃지 않는 현명한 길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아직 아내와의 합의가 필요하지만.


현재도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여행지에서

상을 차려 제를 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세태를 개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게 그렇게 

욕먹을 만큼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제사나 차례는 옮겨 다니며 지내지 않는다”

“굳이 옮겨야 한다면 정해진 전통적 절차를 밟아야한다”

라는 관념에서 조금만 양보 한다면

그것이 양면을 동시에 수행하는

좋은 길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도

우리의 좋은 전통이 배척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되지만

한복을 현대에 맞게 개량하는 것이나

한옥의 내부를 생활에 편리하게 개량하는 것이나

모두가 전통을 이어가며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것처럼

제사나 차례도

그 고정관념을 조금 깨뜨리면

다음 세대의 생활이 좀 더 자유롭고 편해지지 않을까

차례상 앞에서 생각해 본다.

내 조상님들은 나의 이런 생각을 이해하시려나?

 


The letter to chopin(쇼팽에게 보내는 편지) / Anna G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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