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걱정을 앞세우고

korman 2008. 3. 9. 23:51

걱정을 앞세우고


며칠 전 가깝게 지내던 사회 후배 한분이 소주 한잔을 하면서 해외여행에 관한 여러 가지 필요한 사항에 대하여 물어왔다. 사연인즉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아이가 지방대학에 들어가기는 하였는데 여자아이를 지방에서 혼자 지내게 하느니 차라리 아르헨티나에 사는 외삼촌댁에 보내어 외국어도 익히고 그곳에서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고 본인도 원하는 일이라 그리 정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딸아이가 어디 가까운 외국은 물론이고 제주도 가는 비행기도 한번 못타본 처지라 그 먼 외국 길에 어찌 혼자 보내야 할지 걱정이라 자세한 안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예약한 비행기 스케줄을 받아 보았다. 아비로써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여정이었다. 캐나다항공을 이용하는 여정은 인천에서 밴쿠버로 가서 그곳에서 토론토 가는 캐나다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토론토에 도착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비행기를 또 갈아타야 하는 여정이었다. 내가 생각하여도 제주도 가는 비행기도 한번 안타보고 여러 가지 용어 자체도 생소한 아이에게 혼자 가는 이 여정은 참 어렵겠구나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밴쿠버에 도착하여 국내선으로 갈아탈 때는 짐을 찾아 캐나다 입국과 통관절차를 거치고 나서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하여 토론토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이라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아이의 엄마는 벌써부터 불안감을 보이고 아빠가 돼 가지고 어찌 그리 태평이냐고 잔소리가 심하다고 했다. 그리 오랜 세월을 같이 살았으면서 속으로 엄마보다도 더 걱정을 하는 아비의 마음을 마누라는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는 푸념도 이어졌다. 나도 딸을 기르는 아비로써 내 딸을 혼자 보내는 것 같아 해외여행과 동 여정에 대한 자세한 참고자료를 조사, 작성하여 이메일로 보내주겠노라 약속하였다.


세계 어느 나라 공항이든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밟아야 하는 절차와 방법은 모두 같다. 그래서 한번의 경험만 있으면 어디를 가든 관찰만 잘 하고 표지판만 잘 보면 어려울 문제는 없겠으나 다니다 보면 예기치 않은 변수가 발생할 때도 있는데 제주도 가는 비행기도 타보지 않았다는 이 아이를 위하여 가장 적절한 안내서는 무엇일까. 더욱이 초행에 외국에서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중간에 남의 나라 입국과 세관 절차도 밟아야 하지 않는가. 물론 시간을 갖고 각종 여행안내 서적을 본다면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이 아이에게는 단지 며칠간의 여유만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절차와 방법은 같다고 하더라도 모양새와 환경은 공항마다 모두 다르지 않은가. 나 또한 같은 여정에 대한 경험은 없는지라 어찌 알려줘야 할까 고심이 되었다.


우선 살펴야 할 표지판에 씌어진 일반적인 용어와 출입국 방법에 대한 절차를 요약하고 캐나다 항공에 전화를 하였다. 11살 이상의 승객에게 제공되는 특별도우미 프로그램은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갈아 탈 때의 상황을 알아보고 동 항공사의 국내 홈페이지와 본사 홈페이지 그리고 밴쿠버 공항과 토론토 공항 및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의 홈페이지를 뒤져 자료를 꿰맞추고 보니 아무리 초행이라도 눈썰미만 있으면 잘 찾아갈 것 같았다. 몇 가지 일어날 수 있는 변수에 관한 것과 주의해야 할 점 그리고 밴쿠버에서 입국심사 받을 때 불안하면 한국어 통역관이 있는 번호에 줄을 서는 것 등을 추가하여 이메일로 보내 주고는 그래도 미심쩍어 그 아이가 떠나는 날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인천공항 체크인 할 때도 물어보고 밴쿠버행 비행기에서도 승무원에게 재차 확인 하라고 일러두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서 그 후배가 마침 같은 비행기에 밴쿠버에서 국내선을 갈아타는 한국인 가족이 있어 아이를 부탁하였다면서 안심해도 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러면 같은 절차를 밟으면 될 테니 아이에게는 큰 위안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린아이가 비행기 타고 가는 내내 얼마나 불안하였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가 잘 도착하였다는 연락이 있기 전 까지 부모마음이야 오죽 불안할까.


이틀 밤을 지내고 난 후 그 후배를 만났다. 커피잔을 앞에 놓고 입을 연 그 후배는 아이와 헤어지고 밤을 보내기 위하여 소주가 필요하였다고 하며 아이가 삼촌댁에 잘 도착하였다는 전화를 받았노라 하였다. 나도 부모심정 보다야 못했겠지만 마음 한구석에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는데 반가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찌 생각하여야 할지 못내 아쉬웠다. 그 사연인즉,


인천공항에서 그 한국인 가족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국내선 갈아탈 때 까지는 걱정이 없겠구나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참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아이가 비행기에 탔을 때 그 가족도 마침 자기의 뒷좌석에 앉게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쪽 여자 분은 아이의 고등학교 선배였고 사는 곳도 한동네 같은 아파트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식구들과 같이 여행하는 편한 마음 이었는데 비행기를 내려서 그 가족과 함께 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자기들끼리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모두 입국심사를 받고 세관을 통과해야하므로 남들이 가는 곳으로 팻말을 보며 잘 찾아가서 한국어 통역관이 있는 곳에 줄을 서서 심사를 받는데 캐나다 입국 심사관도 걱정이 되었던지 아이와 같은 여정을 가진 외국인 한 분을 찾아서 아이를 부탁하여 주어 그 사람과 같이 갈 수 있었던 고로 아무런 걱정 없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사연을 전하면서 그 후배는 각별한 부탁까지 하였는데 그리고 자기의 고등학교 후배이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인연이었는데 조금만 보살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 헤어졌다니 같은 한국인에게 베푸는 마음이 외국인이 베풀어 주는 마음보다도 못한 것이 우리의 정체성인지 의아해 했다.


양쪽이 정확하게 어떤 연유로 헤어졌는지는 모르겠으되 예전 내가 해외라고는 처음으로 영국으로 출장을 가서 한달 만에 런던의 길거리에서 한국인들을 만나 한국식당으로 가는 길을 물었을 때 턱으로 “어기요” 하고는 마치 금기시 되었던 북한 사람이나 만난 것처럼 서둘러 사라져 버렸던 사람들이 생각나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 때도 런던 경찰이 자세히 알려 주었었는데.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났다고 하여 그 사람이 내가 필요한 것을 다 가르쳐 줄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성의 있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다른 나라 사람들 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 무뚝뚝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처음 가는 아이에게 부모의 특별한 부탁이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금 신경을 쓸 여유도 그들에게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사연이었다.

 

2008년 3월 아흐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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