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내 친구의 신은 어디에

korman 2008. 3. 24. 17:47
 

내 친구의 신은 어디에


대학 2학년 때인가 명보극장에서 영화를 한편 본적이 있었다.

유명한 영화도 아니었고 이름난 배우들이 출연한 것도 아니어서

그저 좀 슬픈 영화였다는 기억 외에는 영화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셋이 나오는데 어떤 사유로 형제끼리 같이 살지 못하고

하나씩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어 뿔뿔이 흩어지는 영화였다.

형제가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 없이 흩어지면서도

그들은 서로 격려하고 내일을 약속하고 슬픔을 감추며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혼자 남아서도 그들은 절대 울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흩어지는 장면에서 극장 안은 울음바다로 변했었다.


TV 뉴스를 보면서 뉴스진행자는 참 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양에서 실종되었던 아이의 장례식에 관한 뉴스를 전하면서도

뉴스 진행자들은 아무런 감정을 들어내지 않았다.

그들도 시청자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텐데

직업상 감정을 절제하는 힘이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명보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나는 그저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만 들었을 뿐 

젊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지어낸 이야기라 생각하였음인지

손수건은 필요치 않았었다.

그러나 뉴스를 보면서 아이의 부모가 관을 붙들고 통곡하는 장면에

아무리 노력해도 통제되지 않고 슬며시 고여 드는 눈물에 눈을 깜박이며

그저 실없이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TV를 지켜보던 누군들 나 같은 감정이 없었을까마는.


다른 한 아이의 시신 일부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것 뿐 아직도 더 이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자식을 자신들의 가슴에 묻는다 하였던가.

먼저 발견된 아이는 이제 부모의 가슴에 묻힌 채로 저 세상으로 갔다.

그러나 나머지를 찾지 못한 아이는 친구 따라 보내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 아이의 부모마음은 먼저 보낸 아이의 부모마음 보다도 더 참담하리라.

옆에서 고통을 같이 보고 느끼는 형제자매라 하더라도

아이의 부모마음과 어찌 같을 수 있을까.

섹스피어가 돌아온다 한들 그 마음이 글로 표현될 수 있을까.


어른들은 아이들을 천사라고 표현한다. 천사는 하늘에서 온다.

그리고 인간과 신의 중간 역할을 한다.

인간이 원하는 것을 신께 전하고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한다.

인간은 천사가 신의 전령으로 모두 선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천사는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만든다고 한다.

따라서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천사에 비유한다.

사실 아기들이 자는 모습을 보면 평화롭기 그지없다.

신의 얼굴이 그것인지 천사의 얼굴이 그러한지 시간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신은 존재하는가.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천사가 실질적으로 존재하여야 하고

그러면 이 아이들은 어떤 악으로 부터도 보호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의 친한 벗 송 아무개장로는 오늘도 나와 술잔을 기울이며

내가 일요일이라 칭하는 날을 주일이라 하고

친구들 부부모임을 일요일로 정하면 자기는 못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요일 일주일간의 죄를 자신이 믿는 신께 속죄하라 한다.

그리고 난 내가 이번 주에 무슨 죄를 지었나 생각한다.

지난 금요일 난 그와 소주잔을 앞에 놓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미 X할 네가 믿는 그 잘난 X이 있으면 아이들이 그 지경이 됐겠냐? ”

그냥 알면서 친한 친구이기에 내질러 본 소리였다.

나중 아이도 온전한 시신을 다 찾아

부모 가슴에 묻힐지언정

평화롭고 좋은 세상에서 친구와

천사처럼 지내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08년 3월 스물 사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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