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불고기와 잡채와 소주의 즐거움

korman 2008. 5. 9. 23:23

 

지난겨울에 큰아이의 손님으로 우리 집에 와서 불고기와 잡채에 매료 되었던 이태리 손님들이 다시 왔다. 이번에도 남녀 두명이 왔지만 7살 난 아이의 엄마라는 여자는 다시 왔으나 남자는 다른 사람으로 그 회사의 실질적인 경영권자라 했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이 회사의 실권자이기 때문에 큰아이에게는 이번이 지난번 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일요일 도착한 그들은 월요일 아침 큰아이를 앞세워 2박 3일 예정으로 자신들이 수입해 가는 물건을 생산하는 전국의 공장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길을 떠났다. 영어도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혼자 운전하고 영어로 대화하며 아무리 내비게이션이 있다고 하여도 공장가는 길까지 찾아 혼자 2박 3일간 운전을 하고 다녀야 하는 큰아이가 걱정이 되었지만 그들도 야간 운전이 걱정 되었는지 낮에만 다니고 저녁에는 행선지에서 묵는 계획을 세웠다고 하여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큰아이가 연락을 해왔다. 운전하고 상담하고 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는데 같이 온 남자가 낯선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아 다니는 동안 내내 맥도널드나 아웃백을 찾아 다녔고 한식집에 가면 다른 음식은 손도 안대고 술도 한잔 마시지 않으며 물과 밥만 먹는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수요일 저녁 올라와서 집에 올 테니 저녁 준비를 하여 달라고 하였다. 마누라는 이 소식에 걱정이 많았다. 여자의 경우 다시 오기 전에 이메일로 전에 왔을 때 먹었던 그 음식들 그대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있었지만 남자의 경우 한식은 그렇게 아무것도 먹지 않으니 같이 다니는 큰아이도 당황스럽다고 하였다. 어찌 되었건 남자가 먹던 먹지 않던 여자의 요청대로 전과 같은 음식들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여자라서 그런지 아니면 지난번 대접의 고마움인지 식구들의 선물을 준비해 왔다는 큰아이의 전언에 나도 뭔가 답례품을 준비 하여야 하겠기로 고심을 하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 들렀다. 지난번 왔을 때는 기념품으로 우리문양의 북마크, 매듭으로 된 핸드폰 고리 그리고 자수 및 누비로 된 잔받침을 선물하였으니 이번에는 우리문화 혹은 한국과의 비즈니스에 대한 소개책자가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나는 그 두 곳에서 책을 고르며 섭섭하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그 두 책방에서 내가 대할 수 있었던 영문으로 된 우리나라 관련 책자들은 그리 다양하지도 않았고 얼마 되지도 않았으며 그나마 음식을 소개하는 책과 한글을 가르치는 교재가 대부분이었고 진열한 장소도 별로 눈에 뜨이지 않았으며 영풍문고의 경우 기둥에 가려져 손을 뻗어도 책을 꺼낼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후미진 곳에 초라하게 놓여있는 몇 종류 되지도 않는 한국소개 영문책자들을 보며 세계 제12위의 경제대국이며 OECD의 일원인 우리의 문화적 현실이 이것 밖에는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초라해 지는 느낌이었다. 현실이 이럴진대 60개국 이상에 수출된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건 한참을 고심한 끝에 우리나라의 핵심 이미지를 모아 설명한 “Image of Korea"라는 책과 전래동화들을 변역한 ”Korean Fairy tale" 이라는 책을 골라 들었다. 그리고 남대문 시장 공예점에 들러 자수와 매듭으로 된 장식용 청홍색 노리개 한 쌍을 분홍색 복주머니에 넣고 연꽃을 이용한 우리 전통 문양이 장식된 편지 오프너와 명함첩 세트를 초록과 하늘색으로 염색한 복주머니에 넣어 구매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목요일에는 서울 구경을 위한 나들이를 하겠다고 하니 짧은 시간에 편리하게 여러 곳을 이동할 수 있는 안내가 필요할 것 같아 광화문 지하도 근처에 있는 서울시티투어버스 안내소를 찾았다.


닫쳐져 있는 안내소 유리창문을 두드려 안에 있는 중년의 남자에게 안내서를 부탁하였더니 이분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일본어로 된 것 한 장을 창문 너머로 휙 내 던지더니 더 물어볼 시간도 주지 않고 잽싸게 종이 커피잔을 들고는 머리가 벗겨진 뒤통수를 보이며 반대편 쪽으로 가 버린다. 난 분명 한국어로 물었는데 이분은 일본어로 알아 들으셨나? 아니면 자신은 이용객의 상담에 응해주는 자리보다는 좀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였나? 이분 외국인이 와서 물을 때도 저런 태도를 보일까? 아직 저런 분이 계시구나. 좀 안된 말이 나의 입 밖으로 벗어나려는 것을 꾹 누르고 있을 즈음 밖에 나갔던 여자 분이 들어와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면 누르고 있던 것이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을 것이다. 여자 분으로부터 한글과 영문으로 된 안내서를 받아들고 돌아오긴 하였지만 저런 것이 관광한국을 외치는 우리나라 관광업계의 현실인가 생각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지난번에 이들이 왔을 때 우리 집에서 평소 사용하는 식탁이 좁아 재래식 낮은 식탁에 상차림을 하였더니 앉아있는 내내 매우 불편해 하던 것이 생각나 대여회사에서 6인용 테이블과 깨끗한 테이블보를 빌렸다. 그리고 그 위에 식탁용 냅킨을 깔고 연적을 놓고 수저를 얹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손님 접대용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난번 보다는 모양새가 좋아 보였다. 이제 마누라의 요리와 소주 몇 병만 올리면 된다. 그 까다로운 남자도 좀 먹어주기를 기대하면서.


마련한 선물을 포장하였다. 여자의 어머니를 위해서는 노리개를 아이를 위해서는 Korea Fairy Tale책을 그리고 그녀를 위해서는 Image of Korea를 한봉투에 담고 남자를 위해서는 편지 오프너와 명함첩을 싸고 그리고 내가 소장하고 있던 한국의 국립공원 (National Parks of Korea)라는 책을 꺼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국립공원 (명산)의 사계를 짤막한 소개를 한글과 영문을 곁들여 사진으로 보여주는 큼지막한 사진첩이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그에게 우리나라를 알리는 방법은 사진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국인에게 주려다 보니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책의 겉장 표지는 한글 “국립공원”이 아니고 한자로 國立公園 이라 적고 영문을 곁들였다. 그러나 이 책을 만든 목적이 외국인에게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소개하는 데 있는 것이었다면 주 제목은 한자가 아닌 한글로 우선 표기를 하고 한자가 필요하다면 영문표기처럼 보조수단으로 사용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고서도 아니고 중국인만을 위한 책도 아닌데 굳이 표지의 책이름을 한글이 아닌 한자를 내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한글도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문화이거늘. 가끔씩 권위를 내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자를 부각시키는 경우를 본다. 국제전시회에 참가하여 외국인들로부터 한국에 한국어가 있느냐 고유의 문자가 있느냐 하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던 나로서는 이럴 때마다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나이 먹은 중국 사람들이 권위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간체를 쓰지 않고 번체를 쓴다고 하는데 한자로 권위를 내세우는 분들께 한글이 아직도 언문은 아니겠지.


상을 차렸다. 남자가 혹시 먹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약간의 빵과 버터도 준비 하였다. 기대 하였던 대로 여자는 역시 마누라에게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소주를 곁들여 잘 먹었다. 젓가락도 잘 사용하였다. 3일 동안 열심히 연습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니면 차려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였는지 조금씩 맛을 보던 남자가 밥, 국, 동치미를 한 그릇씩 다 비우고 불고기, 잡채 및 새우튀김을 곁들여 소주까지 한잔을 쭉 비웠다. 남자의 이런 행동에 큰아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진작 더 놀란 사람은 여자였다. 지금까지 같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그가 포도주 한잔이라도 술을 마시는 것을 본 일이 없다는 그녀는 그가 음식을 곁들여 소주까지 한잔 한 것은 가히 혁명적이라 하였다. 아무튼 또 다른 외국인에게 우리 문화가 수출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흥겨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 소주는 4병이나 비워지고 맥주로 이어지며 참외와 배로 맥주 안주를 대신하였는데 두 사람 모두 그 맛에 매료되어 돌아갈 때 특히 배를 사가겠다고 하였다. 지신들의 나라 입국시에 검역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다음 날 그들을 데리고 인사동에 들른 큰아이에게서 연적을 어디에서 살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 남자가 하얀색 연적을 사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날 우리 집에서의 저녁 식사 때 그 연적이 맘에 들었던지 자기의 가족을 위하여 그것을 준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또 태극 문양이 새겨진 쇠로 된 젓가락을 100벌이나 샀다고 했다. 그새 우리나라 식문화에 매료되었나?


두 사람이 돌아가는 인천공항에서 그들은 그 쇠젓가락으로 인하여 가방 무게가 초과되어 30만원의 초과운임을 지불하고 출국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뒤따라간 큰아이와 그들은 지금 밀라노의 전시장에서 다시 모여 잡채와 불고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큰아이가 그들 회사의 아시아 담당 매니저로 합류한 까닭이다. 여자 왈 앞으로 한국에 가는 주된 목적중의 하나가 불고기와 잡채를 먹기 위함이라 하였다나.…….

 

 



2008년 5월 아흐레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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