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맛있어 좋은 날

korman 2008. 4. 27. 22:53
 

맛있어 좋은 날


요새 TV를 보면 먹는 프로그램이 무수히 많이 나온다. 특히 주말에는 아침부터 어디에 무슨 요리가 맛있고 어디에 무슨 음식이 특이하고 어디에서 나는 무슨 재료가 특별하고 등등. 그렇게 소개되는 온갖 음식들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들마다 감탄사를 늘어놓는 만큼 모든 이들에게 맛이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길거리를 가다 보면 TV에 나왔다고 현수막을 걸어놓은 집들이 즐비하다. 그러다 보니 그 희귀성이 없어져 그리 특별히 맛있게 보이지도 않고 또 방송국마다 같은 음식과 같은 집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집에는 “TV에 나오지 않은 집”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곳도 더러 눈에 뜨인다. 그만큼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TV에 소개된 집은 꼭 한번은 찾아가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었고 누가 어디서 무슨 특별한 음식을 경험하였다고 하면 먼 곳이라도 시간을 내어 찾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식도락가”라 하였던가. 


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음식점들은 우리음식뿐만이 아니고 우리가 평소에 별로 경험하지 못하는 나라를 포함하여 매우 다양한 나라들의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세계속의 주요국가로 발 돋음 한 까닭도 있지만 그만큼 여러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또한 매우 다양한 여러 나라의 문화가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음식은 각 민족의 중요한 고유  문화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비중이 우리나라 총 인구의 10%를 넘는다고 하니 음식이 다양화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해외여행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늘면서 여행지에서 대면하였던 여러 가지 독특한 맛에 대한 경험 또한 다양화에 일조를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디 어느 곳에 가든 그곳 현지음식에 아무런 부담감 없이 잘 먹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아무리 외국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사람도 자기나라 고유의 음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그런 딱한 사람들 중에 하나여서 어디 며칠 출장이라도 가려면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라면, 인스턴트 국, 볶은 고추장 그리고 햇반이다. 출장 초년병도 아니면서 그리 적응을 못하느냐는 마누라 핀잔을 들으면서도 나는 출장 일수에 따라 제일 먼저 그런 것들을 꼭 가방 밑에 넣어야 안심이 된다. 그리고 출장지 현지 음식점에 가야 할 때는 비행기에서 나눠주는 튜브 고추장을 꼭 주머니에 넣고 간다. 설명만 듣고 음식을 시켰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때는 고추장으로 제압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나라 대도시에 가든 다 있는 맥도널드가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맥도널드의 맛은 어느 곳에서도 다 같으니까. 우리나라에 들어와 많은 세월을 보내고 있는 외국인들 중에도 나 같은 사람이 없지는 않으리라 본다. 내가 중국의 향채 냄새에 참을성이 없듯이 그들도 우리의 청국장이나 된장 끓이는 냄새에 코를 막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지난겨울에 큰아이가 바이어라고 이태리 사람 두명을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하였었다. 한명은 7살 아이를 둔 여자였고 한명은 같은 회사 남자 직원이라 하였다. 우리는 귀한 사람을 대접할 때는 고급 식당으로 모시지만 서양 사람들은 집으로 초대 한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러라고 하였지만 두명 모두 한국 경험이 첫 번이라 하니 음식을 뭘 준비하여야 할지 몰라 마누라가 자문을 구하였다. 큰아이의 얘기는 며칠 다녀보니 생선은 좋아하지 않고 고기를 주로 먹고 식당도 양식당을 주로 이용 하였다는데 이태리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엇을 준비하여야 할지 참 난감하였다. 한 십여년 전 나도 두명의 미국인을 집에 초대하였었는데 그 때 그들이 즐겨 먹었던 것으로 준비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준비한 것들이 쌀밥, 소고기 무국, 불고기, 잡채, 생선전, 돼지갈비찜 그리고 동침이 등이었다. 예상대로 그들은 준비한 음식을 잘 먹었다. 특히 소고기 무국과 불고기, 잡채를 특히 많이 먹었다. 흰쌀밥과 소고기 무국은 먼 곳에서 온 손님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기 위하여 대접하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첫 번째 음식이라는 설명에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소주로 시작한 저녁자리가 마호타이와 맥주로 이어지며 새벽 한시가 되어서야 그들은 호텔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마누라는 나와 결혼한 이래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꽃다발을 받았다.


그들이 이태리로 돌아가고 난 며칠 후 큰아이에게 여자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자신이 우리 집에서 먹은 음식 중 불고기와 잡채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주문이었다. 자기의 어머니가 주말에 자기 집에 오는데 그때 그것들을 만들어 어머니께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만드는 법을 알려준들 이태리에서 알맞은 재료를 구할지도 의문이고 그녀가 아무리 요리를 잘 한다 하더라도 처음 대한 음식의 요리법을 알려준들 어찌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처음 온 우리나라의 음식을 잘 먹어주고 기억하여 주는 것이 고마운지라 마누라가 일러주는 대로 열심히 번역하여 보내 주었다. 우리나라에는 “손맛”이라는 것이 있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엊그제 그녀에게서 큰아이에게 다시 이메일 왔다. 오늘 인천공항에 다른 임원과 같이 도착하는데 어머니께 이야기 하여 일전에 먹었던 음식 그대로 다시 해주면 좋겠다고 말씀드려 달라고 했다. 우리는 아직 그들을 집에 다시 초대하겠다고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당연히 우리 집에 다시 와서 그 음식들을 먹어야 하겠다고 생각 하였는 모양이다. 마누라는 음식 만드는 것이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기분은 좋은지 아니면 또 그 멋있는 꽃다발을 기대하는지 별로 싫은 기색이 없고 나는 그들이 우리 문화에 대하여 또 어떤 질문을 할지 몰라 한번도 외워보지 않았던 영어 단어 공부를 위하여 사전을 뒤적이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를 또 한사람의 외국인에게 심어 주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2008년 4월 스무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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