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가슴을 시원하게

korman 2008. 8. 2. 20:59

가슴을 시원하게

 

 

날은 어느덧 8월의 문턱에 접어들고

몰려오는 무더위를 피하려 많은 사람들이

집을 떠나고 있다.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그리고 외국으로.

오늘아침 운전석에서 바라본 길거리는

꽤나 횅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봄이 한창일 무렵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승강기를 전면 보수하고 내외장을 다시 꾸미고

CCTV를 설치하는 리모델링 공사를 실시하였다.

단지 전체를 한꺼번에 하다보니 시간도 많이 걸렸고

고층에 사는 사람들은 많은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래도 대다수의 주민들은 아무 불평 없이

잘 협조하여주어 여름에 들어서면서

보기에 깨끗하고 느끼기에 안전한

승강기가 탄생하였다.

 

 

공사하는 도중에 참 말이 많았다.

대다수의 주민은 불편을 감수하면서 묵묵히

공사가 마무리 되고

각종 테스트가 끝날 때 까지 기다려 주었는데

관리사무소나 공사업체의 안내문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편함을 참아내지 못하고

아파트 홈페이지에 각종 문책성 및 악의적인 글을 남기었다.

함께 사는 마음이 결여된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공사가 마무리되고

승강기의 운행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자연히 없어졌다.

 

 

그러나 최근 습기가 가득한 무더위가 시작되자

한 젊은 주부로 짐작되는 주민이 다시

홈페이지에 시비성 글을 남겼다.

승강기를 리모델링 하였는데

에어컨이 달려있지 않아 시원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승강기를 이용하는 이웃들이 모두 욕을 한다고도 하였다.

그러자 관리사무소에서 댓글을 달았다.

리모델링 전에도 승강기에 에어컨은 없었으며

에어컨이 달려있는 승강기는 다른 곳에도 별로 없다는 내용으로.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살펴본 홈페이지에는

승강기의 에어컨에 대하여 참 집요하게 집착하는

그녀의 막말 같은 글이 다시 올라있었다.

나의 아파트는 최저의 아파트 인가요

참 이런 아파트에 산다는 것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에어컨이 없는 엘리베이터가 아직도 있나요?

저희 아파트는 리모델링을 했는데 참 개가 한탄 할일 아닌가요?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어디 좋은 곳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야말로 개가 한탄할 글인 것 같아

한줄 댓글을 남겼다.

몇 층에 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15충까지 올라간다고 하여도

실로 잠깐이면 되는데 이 짧은 여름을 위하여

굳이 많은 돈 들여 승강기에 에어컨을 설치하고

또한 비싼 전기료를 물어야 할까요?

그리고 승강기에 선풍기는 설치되었어도

에어컨 설치된 아파트 별로 없다는 게 제 짧은 생각입니다.

 

 

내가 댓글을 남긴 며칠 후 관리소장이 다시 댓글을 달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승강기 한 대당 에어컨이 60만원 이상이며

설치비는 500만원이 더 든다는데

비용도 중요하지만 결로현상을 해결할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아주 고급 건물 아니면 에어컨이 설치되어있지 않다고 하였다.

고비용과 기술적 결함을 무시하고

승강기에 에어컨을 달아야 하겠냐는 지적과 함께.

 

 

그녀는 어떤 경험으로

다른 곳의 승강기들에는 에어컨이 있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만 없다고 생각하였을까.

얼마 전 신문에 한 고급스러운 아파트로 세를 든 부인이

공동전기료 포함하여 한달에 50만원 이상씩 하는

전기료를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인터뷰한 기사가 있었다.

내 주위의 보통의 가정에서는 5만원 정도도 많게 여긴다고 하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의 승강기에 에어컨이 없어

개가 한탄할 일이라 한 그녀는

얼마정도의 전기료를 자기 능력의 한계라 여길 수 있을까.

 

 

무더위가 시작되는 8월의 문턱에서

에어컨으로 만드는 인위적인 시원함보다는

이웃을 배려하고 이웃의 가슴으로 전달되는

마음의 시원함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2008년 8월 이튿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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