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인터넷, 그 악담과 쌍욕의 게시판

korman 2008. 7. 27. 14:15
 

인터넷, 그 악담과 쌍욕의 게시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문득

사람들은 얼굴이 안보이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로 촛불집회가 격해지고 있을 때

방송을 진행하던 코미디언이 촛불집회에 관한 자신들의 견해를 밝혔다.

그녀는 소고기 수입을 찬성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촛불집회가 평화스러운 방법에서 벗어나고

본질에서 어긋나게 진행되는 것을 염려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입에 담지도 못할 악성 글들이 인터넷에 올려지고

결국 그녀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고

그때까지 진행하고 있던 몇몇 프로그램에서 중도 하차하였다.

그녀의 발언이 뭐가 그리 잘못된 것이었으며

방송국에서는 어찌 그런 악성 글들이

침묵한 대다수의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였을까.


인터넷이 아니라도, 소고기와 촛불이 아니라도

모든 일에는 찬반양론이 존재하고

찬반을 뒷받침하는 각자의 의견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고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듯이

각종 험악한 악담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있다.

신식말로 이를 “사이버테러”라고 한다.

그녀도 그리 당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녀의 발언을 두둔하는 사람들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녀의 그러한 의견과

악담을 올린 사람들이 만나 공개된 장소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의견을 제시하였다면

과연 그런 악담을 입 밖으로 뱉어낼 수 있었을까.

거기 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글을 올리는 이름이 별명이나 ID가 아니라

자신의 실명이라면 그리 할 수 있었을까.


옛말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고 하였던가.

사이버테러리스트들에게 이 말은 즉,

인터넷도 보이지 않으니 어떤 말인들 못할게 뭐 있을까

그리 해석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벽을 보고도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라고 한 말은

그들에게 어떤 해석으로 다가가고 있을는지.


이 세상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 수 대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고 있지만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하여

모두가 글을 올리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모두가 악담을 올리는 것은 더욱 아니다.

어떤 이는 좋은 글로 반대의견을 제시하고

또 어떤 이는 점잖은 말로

악담에 대항하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이버테러를 당한 사람들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즈에 독도광고를 지원한 가수의 기사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분 좋은 격려를 보냈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악성 댓글을 달고 있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듯이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그가 하였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아플 배가 따로 있어야지 어찌 그런 일에 그리 악담을 할까.

어느 나라 어느 사회이건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존재한다.

악담을 인터넷에 올리는 모든 사람들이

정상적이지 못하다고 치부할 것은 못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정상적인 현상은 더더욱 아니다.

 

밥상에서 말을 하면 어른들에게서 욕을 먹고 자란 세대가

연령상 이 사회의 상부층에 속한다 한다면

대학입시로 하여 토론이나 인성교육이 결여된 교육을 받은 세대가

이 사회의 중간층과 하부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또 다른 세대는 그런 악담으로 형성된 인터넷을 보면서

미래의 사회를 이끌 꿈을 꾸고 있다.

이같은 사례는

우리에게 예로부터 지금까지

올바른 토론문화가 없어왔음을 보여준다.


세계의 IT산업을 주도한다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이제는 관련법을 정비하여서라도

타인에게 상처를 남기는 행위는 자동적으로 제재되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실명을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이버테러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올바른 토론문화가 하루빨리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08년 7월 스무 나흗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