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쇼핑과 샤핑

korman 2008. 6. 30. 13:13
 쇼핑과 샤핑


가끔 얼굴을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아파트 이웃이 있다. 엊그제 주차장에서 만난 그가 요 며칠 싱가폴엘 다녀왔노라고 했다. 몇 마디 그곳의 경험을 얘기하던 그는 싱가폴에서는 영어가 잘 통한다고 들었는데 별로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그가 어떤 영어를 어떻게 구사하고 구사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내가 모르는 터라

“왜요 영어가 공용어인 나라인데 영어가 안통해서 불편하였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요.”

하였더니 자신은 그렇지 못하였노라고 하였다. 그런 그에게 농담 한마디를 던졌다. “영어를 하신 게 아니라 미국어를 하셨나보죠?”

그러자 그는 무슨 말을 하느냐고 반문하였다.


며칠 전 신문에 참 황당한 기사 (내가 느끼기에는)가 났다. 어느 초등학교 영어교사가 shopping을 쇼핑이라고 읽었더니 한 아이가

“선생님, 그거 샤핑이라고 읽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하더라며 요즈음 영어교사들이 아이들 가르치기가 불편하다는 마음을 내 비쳤다고 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중에서 영어를 가장 중요시 여기고 또 거의 모든 자녀들을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별도로 영어학원에도 보낸다. 그리고 모두가 원어민 교사를 찾는다. 따라서 학교에는 많은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들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학원에서도 원어민이 없으면 학생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아니 부모들이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원어민은 어느 나라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지난 주 전시회에서 자주 만나던 일본 사람이 업무차 서울에 왔다며 바쁘지 않으면 업계 돌아가는 방향도 이야기 할 겸 차라도 한잔 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가 묵는 호텔의 라운지에서 커피를 한잔씩 놓고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 아이들 영어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일본도 영어에 관한 한은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다 보니 자연 그게 화제가 되었고 또 그와 나도 전시회에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둘 다 영어에서 자유로운 처지가 되지 못하다 보니 자연 영어가 원수라는 말로 이어졌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그래도 당신과 나도 잘 하던 못하던 이나마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 아니겠냐고 응수를 하였다.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평균적으로 일본인의 영어 발음은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하여 떨어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는 물론 우리가 이야기 하는 원어민 발음을 기준할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그의 발음도 보통의 일본사람에서 더 나을 것도 없는데 그런 그가 나에게 하는 말이 한국사람 많이 만났지만 어떤 사람은 입속에서 우물거리는 발음을 하여 알아듣기 어려운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하며 그렇게 입 속에서 우물우물 혀를 굴리기보다는 본인의 발음이 좋던 나쁘던 그냥 자연스럽게 깨끗하고 정확한 발음을 하는 것이 더 좋은 일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서로가 원어민 발음은 아니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요새 인천의 모든 버스는 정류장 안내방송을 영어로도 제공한다. 따라서 내가 자주 이용하는 우리 동네 마을버스에서도 영어안내가 나온다. 웬만한 동네나 거리에는 외국인이 늘어가니 영어안내방송은 좋은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 방송을 들을 때마다 늘 아쉬운 것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동네마다 오랫동안 써오던 정겨운 동사무소라는 이름은 버리고 주민들에게 새롭게 다가가겠다고 주민센터로 그 이름을 개명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영문 이름은 “OO-dong Community Service Center"라 부른다. 따라서 내가 용현5동에 사니 버스가 용현5동 주민센터 앞 정거장에 멈출 때면 늘

”디스 스 이스 용현오동 커뮤니 비스 쎄

이라는 방송이 나온다.  용현오이라 발음 안하는 게 다행이다 싶지만 보통의 미국인 보다 더 미국인다운 발음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안내는 어느 나라 사람이건 쉽게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확하고 깨끗하게 발음하여야 하며 특히 대중교통의 안내방송은 더욱 그렇게 하여야 된다고 생각 한다.

따라서 미국 원어민만을 위한 방송이 아닌 다음에야  모든 외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명확한 발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더구나 인천의 버스를 이용하는 외국인의 대부분은 동남아에서 온 일반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은 Center를 쎄널이라고 하기보다는 쎈터 혹은 쎈터~ 이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전시장에서 만난 외국인이 나에게 몇 개 국어를 하느냐고 물어왔다.

그 때 나는 농담으로 잘은 못하지만 그저 간단한 의사소통은 4개 국어를 한다고 하였더니 매우 놀라는 표정으로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 물었다.

한국어는 잘 하고, 콩글리시, 잉글리시 그리고 아메리시라 하였더니 멍해 있다가 한참 설명을 들은 후에야 서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따지면 그는 한 6개 국어쯤은 하는 듯싶었다. 자기 발음 외에도 인도와 스리랑카 사람들의 발음과 표정도 아주 자연스럽게 흉내 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LA 출장길에 대한항공에서 운영하던 Omni Hotel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때 미국인 한 사람이 어느 호텔에 묵느냐고 묻기에 옴니호텔이라고 대답하였더니 그는 계속 “어디요?”만 연발하였다. 몇 번 다시 대답하고 나서 나는 그가 알아들었으면서도 내가 암니호텔이라 발음할 때 까지 계속 묻고 있는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나도 옴니를 고집하다 고개를 돌려버렸더니 결국 그는 제풀에 못 이겨 스스로

“암니호텔 말인가요? 하였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단어의 영문철자 “O”를 “아”로 발음한다. 그렇다 하여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름이나 지명은 그리 발음하면 실례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국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Oxford"를 ”옥스포드“라 하는 미국인들은 거의 없다. 모두가 ”악스포드“라 발음한다.

일반적인 단어도 아니고 국제적으로 어찌 불리고 있는지 보통 사람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지명을 의도적으로 “악스포드”라 부르는 그들의 그런 태도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를 이야기 하면 누구에게나 원어민 그것도 미국인 발음을 과하게 요구한다. 본인이 영어 발음에 좋은 혀를 가지고 있어서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을 구사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하여 타인으로부터 놀림을 받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면 영어교육에서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다고 여겨진다. 발음 보다는 의사소통이 말의 기본이기 때문이고 반기문씨가 원어민 발음으로 UN 사무총장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원어민의 정의가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국가의 국민이라 한다면 아직 이 지구상에 샤핑보다는 쇼핑이라 발음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원어민 발음을 오직 미국발음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현실인 듯싶다.  아울러 그분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칭하는 원어민들이 미국인뿐만이 아니고 영국, 호주, 뉴질랜드, 스코틀랜드, 심지어는 남아공 사람도 있으며 또 이들이 모두 미국 발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 고유의 발음을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한편으로 자녀들을 미국과 캐나다가 아닌 다른 영어권 국가로 어학연수를 보내면서도 미국발음을 배워 오기를 기대하고, 샤핑은 맞고 쇼핑은 틀린다는 자녀의 말을 옹호하여 학교의 영어 선생님에게 짐을 안겨주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대신에 자녀들이 이 두 가지 발음 모두를 옳은 발음으로 받아들이고 말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만드는 부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영화 Princess Diary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발음이 참 예쁘다고 느끼며.......


2008년 6월 스무 아흐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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