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백령도 때문에

korman 2008. 6. 24. 15:31

백령도 때문에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평소보다는 1시간 빠른 시각이다. 늘 그렇듯이 나는 눈을 뜨면 먼저 커피포트에 물을 붙는다. 우리집에서는 보통 커피를 각자가 타서 마신다. 불과 4식구에 좋아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블랙으로 마시는 원두커피, 집사람은 인스턴트 다방커피, 아이들은 에스프레소와 카페라테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자기 커피를 각자 만들어 마신다. 그러니 커피만큼은 마누라 신세 못 지고 내 것은 늘 내가 끓여야 한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새벽에 마시는 블랙커피는 연애시절의 첫 키스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화장이 덜 끝났다는 집사람 팔을 당겨 아직 여명이 끝나지 않은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24시간 열려있는 김밥가게에 들러 아침용 김밥 두 줄과 편의점에서 작은 물병을 사고는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차를 몰아 연안여객선 부두로 향하였다. 연안부두가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은 지난달 친구들의 모임에서 올해 상반기 부부모임으로 개성관광을 다녀오기로 하고 여행사에 알아보았는데 주말에는 10월까지 예약이 밀려있는 관계로 가지 못하고 며칠 전 소주잔을 기울이며 술김에 건성으로 1박2일 백령도를 다녀오자 하였던 것이 말이 씨가 되어 이렇게 커피로 아침잠을 깨고 여명을 가르며 안개비를 맞게 된 것이다.

 

            

   

여객선 터미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각 도서지역으로 떠나는 배를 타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으나 창밖이 희미할 정도로 짙게 드리운 안개는 7시 백령도행 쾌속선의 출항시간이 다 되었지만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만 더 또 한 시간만 더 그렇게 기다리라는 방송이 이어지기를 4시간여만에 결국 출항이 불가능하니 환불하라는 마지막 방송이 주어지고 터미널에 모였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어디론가 흩어져갔다. 백령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은 다반사라는 듯이 그저 무덤덤하게, 낚시 장비를 잔뜩 챙겨왔던 사람들은 아이스박스에 화풀이 하며 그리고 백령도 부대로 복귀하는 해병대 병사들과 그들의 애인들은 하루가 더 연장된 휴가를 기뻐하면서 그렇게 발길을 돌렸다.

 

          

 

   전쟁이 발발할 즈음 황해도에서 백령도로 피란 온 부모님 덕에 본의 아니게 우리나라 최북단의 섬이 고향이 되어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이번 여행이 추억을 찾아가는 큰 의미가 주어진 시간이었고 또 집사람에게는 한번도 가 보지 못한 남편의 고향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기대가 컸으며 다른 친구 부부들에게도 부부애를 더 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하필 이날 안개라는 덫에 걸려 여객터미널 창밖으로 파도에 흔들리는 쾌속선 선체만을 응시하다 배에는 발도 못 올려보고 점심을 맞았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을 올 때 탔던 (당시에는 연락선이라 했다) 배는 백령도에서 인천까지 16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4시간이면 족하다. 그것도 북한의 위험요소가 사라지면 항로가 짧아져 시간은 훨씬 단축 될 것이라 한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백령도는 포기해야 하고 그렇다고 새벽에 부부가 배낭을 싸들고 나왔으니 집으로 다시 들어가기는 싫고 다들 모여서 적당한 행선지를 모색하는데 너무나 개성이 강한(?) 부인네들이 있어 쉽게 의견 통일이 되지 않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데 불과 몇 명의 의견이 통일되는 것도 이리 어려워서야 언제 남북통일을 이룰까. 그러나 어찌어찌하여 멀리가지 말고 영종도를 건너 을왕리 해수욕장 너머에 있는 왕산해변 근처에 숙소를 정하기로 의견 통일이 되었다. 그곳은 인천시가 영종도-용유도 및 그 주변을 묶어 종합 레저타운으로 개발하는 곳이다. 내가 집사람과 이곳으로 데이트 왔던 게 작년 가을인 듯싶은데 숙소를 찾아다니다 보니 그사이 개발을 한다고 푸르던 산 하나를 통째로 없애고 모두 펜션을 짓고 있는데 서로 자기 펜션만을 생각하여 길도 제대로 만들지 않고 절개지에 대한 안전도 생각하지 않았다. 장마철에 큰 비라도 오면 심한 경사에 저렇게 허술하게 처리한 시설들이 안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개발논리를 앞세워 산 하나를 통째로 헐어 숲과 나무를 없애며 숙박촌을 만들게 하는 당국의 처사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와 산과 숲과 나무가 어우러진 자연속의 숙박촌으로 개발되어야 하는데 가림막이라고는 전혀 없고 그저 도시의 아파트처럼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펜션들에 어느 한 집에서 조금만 떠들어도 주위에 소음 피해를 주는 이러한 개발이 그야말로 난개발의 대표가 아닌가. 인천시 당국에서 내세우는 종합휴양시설계획이 과연 이런 것이었나 생각하며 일단 그곳에서 밤을 보냈다.

 

      

 

머피의 법칙이 맞는 것일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일까. 백령도행이 좌절되고 난 후 끼니를 해결하려고 들른 식당마다 또 한번의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것도 느낌에 좀 괜찮을 것 같은 집과 손님들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 집들을 골라서 갔었는데 모두가 음식 맛은 보기와는 영 딴판이었다. 그래서 머피란 놈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겠지. 원인 분석을 해 보았더니 그 원인은 조개에 있는 것 같았다. 싱싱한 조개들 틈에 하나만이라도 상하거나 마른 조개가 끼워져 있으면 그 음식의 맛은 전체적으로 상한 느낌을 준다. 더욱이 조개류는 보관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쉽게 상하는 물건이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마다 그렇게 상하거나 마른 조개가 몇 개씩 나왔다. 소문난 집에 먹을 거 없다던가! 방송에도 나왔다고 요란하게 현수막까지 내건 집들이 어찌 이렇게 관리되나 하는 생각이 난개발의 숙박촌과 겹쳐지며 매우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는다. 계산을 하며 주인에게 조개이야기를 하였더니 “니들이 조개 맛을 알아?” 하는 표정으로 별 말이 없다. 앞으로 TV에 나왔다고 큰 현수막 걸린 집은 가지 않기로 하였다.

 

    

 

 백령도는 못 갔더라도 배는 태워줘야 할 게 아니냐는 부인네들의 항의에 따라 인천공항 북로 중간에 위치한 포구에서 드라마 “풀 하우스”와 “천국의 계단”의 세트장이 있다는 신도-시도-모도를 가기로 하고 페리선에 차를 올렸다. 이곳은 각기 다른 섬이기는 하여도 다리로 연결되어 자동차로 돌아보면 반나절도 안 걸리는 작은 섬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전거 보관소에 유난히 자전거가 많았다. 젊은 연인들이 이 섬에 와서 자전거를 빌려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풍경이 풀 하우스에 나오는 이야기와 유사할까. 두명이 함께 타는 자전거가 무척 정겹게 느껴졌다. 비포장도로를 거슬러 올라가 작은 산등성이에 지어놓은 천국의 계단 세트장과 해변 모래위에 지은 풀 하우스 세트장에 들어가는 입장료가 5,000원씩이나 한다. 그 돈을 내고 누가 안에 들어가랴 생각 하였지만 그래도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TV에 나왔다고 하여 그리 감흥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송혜교가 타고 다녔다던 현관에 놓인 노란 자전거가 그림처럼 느껴졌다. 안에서 비와 커피라도 한잔 할 수 있다면 5,000원이 문제겠냐는 부인의 말에 한 친구가 그만 가지하고 큰 소리로 외친다.

 

    

 

모도로 건너가는 다리 입구에 차를 세웠다. 다리가 놓여진 물길에 무수히 많은 낚싯배들이 오수를 즐기듯이 한가로이 떠 있고 다리 아래 바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는 것인지 소주를 즐기러 온 것인지 낚싯대는 바닷물에 담가둔 채로 삼삼오오 그늘에 앉아 목운동에 열심이다. 때마침 배낚시를 갔던 사람들이 숭어, 우럭 및 소라가 가득 담긴 작은 플라스틱 대야를 가지고 뭍으로 오르며 누가 낚시꾼 아니랄까봐 일행에게 큰소리를 친다. 그러나 기다리던 일행의 몇 마디 물음에 배에서 산 것임이 곧 들통이 나고 그것으로 만찬을 준비하려는 듯 어디론가 급히 가버렸다.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들의 항로가 이 섬 위를 지나는지 다리 위 하늘에 놓인 길로 비행기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우리도 이곳에서 차를 돌렸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단체 식사를 검증된 집에서 하기로 하고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아귀찜 집을 찾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물텀벙이집이 있는데 이곳은 그 유명세로 하여 중국 청도에도 분점을 가지고 있는 집이다. 아귀를 인천에서는 물텀벙이라 부른다. 지금은 아귀라 불리는, 이름도 없고 사람들이 먹지도 않았던 이 생선은, 예전에는 그물에 걸리면 배에서 그대로 바닷물에 버렸다고 한다. 이 때 물에 던지면 텀벙 소리가 난다고 하여 물텀벙이라 불리고 아귀는 그 못생긴 큰 입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매운 아귀찜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고 모두 만족스러운 입맛을 다시며 이곳에서 여정을 마무리 하였다. 영종도-용유도-신도-시도-모도를 2008년 6월 13일과 14일 1박2일에 돌아본 별난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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