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일요일의 브런치

korman 2008. 7. 14. 21:54

일요일의 브런치


평일에 일찍 일어나는 버릇은 일요일에도 이어진다.

몸속에 내장된 첨단 시계가 매일 일어나는 시간을 기억하였다가

휴일 아침에도 자동으로 알람을 울리기 때문이다.

토요일이라고 자정을 훨씬 넘겨 일요일 새벽에 잠자리에 들어도

이 생체리듬의 자동시계는 눈치 없이 뇌를 두드린다.

일반시계처럼 알람시간을 조절할 수도 없어

깨우는 대로 눈을 떠야 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두통을 가져다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마누라는 이 첨단 시계와는 상관이 없다.

나와는 달리 신체의 알람을 껐다 켰다 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녀는 꼭 일반 시계의 알람을 조정하고 잠을 청한다.

그녀 몸속의 알람이 깨워준 시간이 좀 이르다 생각되면 이를 무시하고

일반시계에 의지하여 다시 잠을 청한다. 그리고 곧 무의식으로 빠진다.

오늘이 그러하다. 나와 거의 같은 시각에 눈을 떴음에도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일어나기를 거부하고 다시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이럴 때에는 혼자 일어나는 것이 억울하다.

그래서 문소리도 크게 내고 TV도 크게 틀고 핸드폰으로 집 전화에 전화도 하고.......

그러나 별 볼일 없는 휴일 아침 그녀의 세계는 무릉도원이다.

 

 

내가 아침도 거른 채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신 후

평일보다 두 시간이나 늦은 시각에야

허리가 아파 더 누워있지 못하겠다는 핑계를 대며 그녀가 일어났다.

그리고 TV에서 일요일 아침이면 늘 방송되는 도전천곡인가 하는 프로그램을

아침밥도 차릴 생각을 않고 보더니만

프로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에서 조금 떨어진 마트에 가자고 서두른다.

아침도 안 주고 어딜 가냐고 하였더니 일요일인데 아침 좀 건넜다고 죽지 않으니

잠깐 다녀와서 먹으란다.

오늘 아침 그 마트에서는 복날을 대비하여 평소의 절반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닭과 달걀 그리고 수박을 판다고 하였다.

 

 

마트가 열리려면 한 15분쯤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곳 입구에는 닫쳐있는 문을 바라보며 벌써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간혹 이 억척스런 대열에 한발 들여놓은 젊은 부부들도 눈에 뜨이기는 하였지만

줄을 이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로 중. 장년층의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

그리고 나처럼 마지못하여 끌려나왔음직한 그녀의 남편들이었다.

그녀들이 남편까지 동원한 주된 이유는 한 사람당 정해진 수량과

한정된 일일 판매량 때문이며

자신은 계란줄에 서고 남편은 닭줄에 세워 빠른 교차행동을 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주차장도 열지 않았기로 나 또한 자동차의 긴 대열 한쪽을 차지하고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기름값을 생각하며 엔진을 껐다.

 

 

주차를 하고 내려간 지하 식품매장 입구에는

아직 매장 진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고로

쇼핑카트와 플라스틱 바구니와 사람들로 뒤범벅이 되어

매장 직원들이 줄을 세우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얼마 전에 비슷한 행사를 하다가 밀치는 사람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치는 사람들이 생겼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직원들의 조심성이 눈에 띄었다.

마누라가 나를 발견하고는 빨리 그녀 곁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이 여자는 언제 그 긴 줄의 맨 앞 열을 차지하게 되었을까.

결혼할 때만 하여도 동네 아주머니들에도 말조차 잘 건네지 못하던 마누라가

30년을 같이 살고 나니 이렇게 경이롭게 변했다.

 

 

나를 계란줄에 세워 놓고 자신은 닭줄에 서더니만

여름에 계란 재놓으면 안 좋으니까 한판만 집으라고 명령하고는

닭줄을 따라 사라져 버린다. 계란 집고 빨리 닭줄로 오라는 당부와 함께.

이사 갈 때 마누라 버림받지 않으려면 마누라가 좋아하는 강아지라도

품에 안고 있어야 된다는 나이가 되긴 하였지만 

참 내 신세가 벌써 이런 마누라의 명령을 수행해야 할 나이가 되었나.

그냥 집으로 돌아가 아침밥 마누라 신세지지 말고 건너뛸까?

가정의 평화를 생각하며 마누라를 모시고 온 남편 분들 모두의 생각이

이러하지 않을까 하며 점원이 나눠주는 계란 한판을 받으려는데

누군가가 어디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나를 밀치고

잽싸게 그 계란을 낚아챘다.

늦게 도착하였으나 기다리면 자신의 차례가 오지 못할 것을 염려한

또 한분의 용감한 대한민국의 아주머니였다.

그러나 이 연약한 내가 그 아주머니를 어쩌랴!

그리고 계란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마누라가 일인당 2마리씩 파는 닭을 내 몫까지 받아들고는 계산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다시 매장으로 들어갔다.

복날마다 먹으려면 닭을 한 번 더 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박 한통도.

잠시 쳐다보고 있었더니 대부분의 아주머니들이 한번 계산을 하고는

다시 매장으로 들어갔다.

참 난 이 나이에도 아직 순진한 것인가.

내 몫은 다 샀으니 더는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단순한 논리만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부지런한 새가 모이를 많이 먹는다고 하였던가.

부지런한 아주머니들 때문에 좀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사고 싶어도 살 닭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닭과 계란과 수박은 동네 가계에도 널려있다.

그냥 돈을 좀 더 주더라도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사면된다.

남의 남편을 밀쳐내는 억척스런 아주머니들과 그녀들의 남편들 속에서

이것도 내가 살아가는 재미의 한 부분임을 느끼며

타워팰리스에 살아도 휴일아침 마누라와

이런 된장찌개와 같은 데이트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시각은 아침을 먹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

결국 아침밥은 굶고 이른 점심으로 푹 고은 닭 한 마리와 수박 디저트로

일요일의 브런치 데이트를 즐기고

건너편 아파트 옥상 위를 감싸고 있는

구름 한점 없는 푸르디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마누라와 나누는 한 대접의 냉커피로 더위를 잊은 휴일의 하루였다.


2008년 7월 열 사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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