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편지

korman 2009. 3. 8. 17:44

 

아이들에게 쓴 편지

 

3월이 시작되는 날 아이들에게 애비가 쓰는 편지를 보냈다.

2월에 한 열흘 생각하며 조금씩 써 오던 것을 끝냈기 때문이다.

사실 이 편지는 올해가 시작되는 시점에 보내려 하였던 것인데

졸필이라 표현하기도 쑥스러운 글이라 하더라도

생각과 문장력이 그리 따라 주지 못하여

생각하는데 며칠, 그걸 정리하는데 며칠, 머리글 쓰는데 며칠,

그리 몇 날을 흘리다 2월이 다 가는 날에야 마지막 글귀를 정리하고

무슨 3.1절 기념 축사라도 하듯 베란다에 태극기를 걸고는

제법 긴 편지를 아이들 이메일 주소로 발송한 것이다.

 

아이들이 출가하여 따로 사는 것도 아니고

한집에 살면서 무슨 편지를 보낼까 생각되어지기도 하지만

손으로 써 빨간 우체통에 집어넣고

우편배달부의 낡은 가죽가방에 넣어져 배달되는 낭만은 없어도

가끔씩은 소설흉내라도 내, 긴 편지를 쓰고 싶은 때가 있다.

올해에 누구에겐가 또 이런 편지를 보내게 될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그 첫 번째 대상으로 난 내 아이들에게 주는 편지를 쓰고 싶었다.

아이들이 사춘기였을 때, 그 때에는 이메일이란 것이 없었던 고로

한번은 학교 가는 아이의 책가방 속에

또 한 번은 책상 서랍에 예쁜 편지봉투를 넣어 주었던 이후로

강산이 한번반쯤은 바뀌어졌을 세월을 보내고

이제 그 지나온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긴 편지를 보냈다.

 

내가 올해에 아이들에게 편지를 주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올해가 내 나이 60을 바라보는 결혼 3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지나간 세월동안의 내 가정사와 주위를 돌아보고

얼마가 남아 있을지 모르는 세월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꼈으며

남자인 큰 아이가 가정에서나 사회에 잘 적응하여

而立이라 부른 다는 30살이 되어 이미 혼기를 맞았고

딸아이인 작은 애가 26살을 맞은 것은

남자 나이 30살에 버금가는 세월을 보냈다고 생각되어

아이들에게도 전환점이 되는 해를 맞았다는 판단에

밥상에서 혹은 같이 TV를 보며 단편적으로 이야기하던 주제를

그저 좀 글로 정리하여 아이들에게 보내주면

애비의 잔소리라 가볍게 흘려보내기 보다는

좋은 여행기를 읽은 것처럼 몇 구절이라도 마음 한구석에라도 남겨져

집사람이 아직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나와의 연애시절 주고받은 편지만은 못하더라도

간직하는 시간이 좀 길어지지는 않겠나 하는 바램에서이다.

 

그냥 한 장의 편지를 쓰고 싶을 뿐이었는데

매일 조금씩 쓰고는 읽고 고쳐 쓰고 그리고 또 쓰고

무슨 연속극 대본처럼 쓰다 보니 몇 장이 훌렁 넘어버렸다.

예전처럼 손으로 원고지를 채우던 시절이었다면

진작 포기하고 내버렸어야 할 지난 30년의 세월이

두들겨지는 컴퓨터 자판의 요망함으로 인하여

세월을 정리하는 애비의 긴 일기를 남기게 하였다.

짧지 않은 시간이라 느낄만큼은 살아 온 애비의 지나온 길에서

이제 아이들의 인생으로 넘겨주어야 할 바램을

“인생에 대하여”로부터 시작하여

“친구에 대하여”로 이어지고“, ”사랑과 결혼에 대하여”,

“가정에 대하여”, “사화와 직장에 대하여”, “종교에 대하여”,

“국가에 대하여”,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라는

소제목에 담아 두서없는 긴 넋두리를 펼쳤다.

그리고 엄마가 아이들에게 베푼 무조건적인 희생에 대하여

늘 생각하라는 부탁의 말로 편지의 끝맺음을 하였다.

 

아이들의 이메일 주소를 컴퓨터 창에 띄워 편지보내기 단추를 누르며

애비의 생각이라고 모두가 도움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이 편지가 얼마동안이나 아이들 마음에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과

내 아이들의 아이들에게도 이 편지가 전해졌으면 하는 욕심에

보낸 메일에 몇 번이고 눈이 되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저 결혼할 때 까지만 이라도 마음에 담아두기 바라며

2009년 3월 여드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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