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선물에 대한 가치관

korman 2009. 4. 6. 22:18

 

  

 

선물에 대한 가치관

 

내가 중동에서 일할 때는 큰아이 나이가 두 살이 채 안되었었다.

어느 날 사무실로 나이 지긋하신 미국사람 한분이 찾아오셨다.

중동에 가기 전에 그분의 아들과 같이 일한 적이 있었는데

아들과 같은 회사에서 전무로 재직하며 아들이 일하는 한국에

몇 차례 출장을 왔다가 나와도 친해진 분이었다.

마침 그분이 내가 일하던 지역으로 출장을 왔다가 소식을 듣고는

자기 자식뻘 되는 나를 만나겠다고 일부러 물어물어 찾아 오셨다.

어떻게 내 소식을 알고 찾아왔냐는 나의 놀라움에 웃음을 짓더니만

시간이 없으니 잠깐 동안 점심이나 하자고 하여

사무실에서 가까운 한국식당으로 차를 몰았다.

자리를 잡자마자 그 분은 대뜸 큰아이 소식부터 물었다.

이 얘기 저 얘기하며 식사가 끝나갈 무렵 지갑을 여시더니

바쁜 일정이라 자신이 직접 사올 시간이 없었다며

휴가 길에 아기에게 작은 선물하나 마련하여

당신 이야기하며 주라고 20달러 지폐를 한 장 꺼내 주셨다.

나와 점심이라도 먹겠다고 바쁜 시간에 찾아준 것도 고마운데

내게 아이가 있다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가 돈을 건네준 그에게

따뜻한 아버지의 정 같은 것을 느끼며 마음으로 고맙게 받았다.

사무실에 돌아와 궁금증이 많은 동료들 앞에 내 보인 20달러에

무슨 선물 준다고 겨우 20달러냐며 모두가 하찮게 돌아앉았다.

 

 

 

며칠 전 일 때문에 절친하게 지내는 내 또래 한분이

커피를 한잔 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친한 친구가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고 큰소리 치고 다니면서도

귀국 선물로 술도 한잔 제대로 사지 않고 돌아갔다고

섭섭한 말을 하였다. 소주는 두어 번 같이 하였다고 하면서도.

그럼 당신 원하는 술 선물 이라는 것이

룸살롱을 말하는 거냐 하였더니 그렀노라고 대답하였다.

순간 나는 이 사람이 생각하는 선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의아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이 기대하는 룸살롱에서 술 한 잔 하면

둘이서 마신다 하더라도 150만원은 훌쩍 넘으리라 생각된다.

미국 달러로 계산하더라도 천불이 넘는 금액이다.

잘 살던 못살던 미국에서 천불이라는 금액은

지갑 속에 100불짜리 지폐도 별로 가지고 다니지 않는 그들에게는

우리가 150만원으로 느끼는 크기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큰 금액임을 설명하여 주었지만 그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미국에 사시는 내 누님은 일 년에 한 번씩은 다니러 오신다.

엊그제 누님께서 올해는 4월 말쯤 오시겠다는 전화를 하셨다.

70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누님은 이렇게 다니러 오실 때 마다

동생들과 친척들에게 줄 선물을 가져 오시느라

당신의 빈 몸으로도 다니시기도 어려운 연세에

큰 가방을 두 개씩 가지고 다니신다. 그것도 무게를 꽉 채워서.

요새 유행한다는 무슨 신발을 사다 주려는데 신을 거냐는 말씀에

누님 그냥 오신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고

돈도 돈이지만 이제 힘드시니 그냥 다니시던지

정 섭섭하시면 한집에 커피나 한 봉지씩 가져 오시라 말씀드렸더니

며칠 전에 한국에 다녀온 이웃이 있는데

그 분이 아이들 티셔츠와 커피 몇 봉지를 사가지고가

친척들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돌아올 때쯤

티셔츠는 유명 상표도 아니고 한국에서 커피도 못 사먹는 사람 있냐며

그것도 선물이라고 가져왔냐는 뒷말이 들리더라고

차라리 아무것도 안 가지고 빈 몸으로 가 뒷말 듣는 게 낫지

비싼 거 가져다주지 못할 형편이라면 유명상표 아닌 물건이나

커피 같은 것은 가져가지 말라고 하였다 하신다.

참 기가 찰 노릇이다. 미국생활에 뭐 보태준 것도 없을 텐데.

 

 

 

가끔 미국에 출장을 가서 대하는 교포들 중에는

미국 생활의 괴로움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TV에 소개되는 성공한 교포들도 많이 있지만

한국에서 생활할 때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람도 있고

한국에 다니러 가고 싶어도 항공료가 부담된다는 사람도 있으며

한국에 가려면 빈 몸으로 가지는 못하고

친지들에게 뭔가 선물이라도 가져가야 반가워 할 텐데

항공료가 문제가 아니고 작은 선물은 선물로 알지 않을 테니

선물구입비용이 부담이 되어 차라리 안가는 게 편하다는 분도 있었다.

그리운 모국에 다니러 가고 싶어도 선물에 대한 부담 때문에

그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상대가 건네는 조그마한 초콜릿 하나에라도

서양 사람들처럼 오버액션은 취하지 못할지언정

그것에 대한 물질적 가치를 생각하기 이전에

그것에서 묻어나오는 상대방의 따뜻한 마음을 알아주는

선물에 대한 성숙된 가치관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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