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강희 21년명 장경사 동종 ((康熙 二十一年銘 長慶寺 銅鐘)(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82호)

korman 2009. 4. 13. 22:21

강희 21년명 장경사 동종 ((康熙 二十一年銘 長慶寺 銅鐘)(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82호)


종 목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82호

명 칭 강희 21년명 장경사 동종 ((康熙 二十一年銘 長慶寺 銅鐘)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2014.05.09

소 재 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로 676 (남한산성면)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상 세 문 의 경기도 광주시 문화공보과 031-760-4821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검색창 2017년 3월 18일 현재 (사진 및 상세 설명 없음)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28200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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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봉은사 강희 21년명 종 (장경사 동종)

 

남한산성 장경사 동종이 경기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경기도는 "문화재위원회를 거쳐 남한산성 장경사 동종(강희 21년명 장경사 동종) 등 13점을 도지정문화재로 확정해 공고했다"고 11일 밝혔다.

남한산성 장경사 동종은 1682년(조선 숙종 8년) 높이 82.5㎝ 무게 180㎏의 법당용 동종이다. 전통형 범종 양식으로 용뉴는 네발로 천판을 딛고 있으며 죽절혈 음통이 있다.

상대 네 방향에 유곽이 독립적으로 배치되고 구름 형태의 쌍구당초문, 범어로 새겨진 원권범자문이 있고, 보살입상이 4방향에 새겨져 있다. 당좌 대신 "강희21년 임술3월 경기 광주부읍 내 남한산성 장경사 중종중삼백근입"의 명문이 있다.

용뉴 부분이 일부 손상돼 굵은 철사로 감아 걸 수 있도록 했고, 종신에 총탄의 흔적으로 보이는 작은 구멍이 있다.

이 종은 1899년 남한산성 내 사찰의 폐사를 앞두고 봉은사로 옮겨졌다가 100여 년이 지난 2013년 5월 원래 자리인 장경사로 다시 돌아왔다.

발췌 : 불교 포커스 사이트 2014년 12월 30일 현재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7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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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발췌일 2014년 1월 15일 현재

 

봉은사 소장 중종, 본래 자리로 돌아온다

2013.02.22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강희21년명종’ 장경사 반환 결정

“문화재 제자리 있을 때 더 가치”

 

▲‘봉은사강희21년명종(奉恩寺康凞二十一年銘鐘)’.

봉은사는 2월15일 종무회의를 열어 본래 자리인 남한산성 장경사에 돌려줄 것을 결정했다

서울 강남 봉은사(주지 진화 스님)가 경내 소장 중인 법당용 중종(中鐘)을 본래 자리인 남한산성 장경사(주지 경우 스님)에 돌려주기로 해 화제다. 봉은사는 법당용 중종이 성보라는 점에서 제자리에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고 판단, 이 같이 결정해 의미를 더했다.

봉은사는 2월15일 열린 종무회의에서 ‘봉은사강희21년명종(奉恩寺康凞二十一年銘鐘)’으로 알려진 법당용 중종을 장경사에 돌려줄 것을 결정했다. 이 종은 강희21년인 1682년(숙종 8)에 주조된 것으로 높이 82.5㎝, 무게 180kg 규모의 중종으로 전통 범종양식에 따라 과장된 괴수형의 용뉴(龍鈕)는 네발로 천판(天板)을 딛고 있으며 뒤에는 죽절형(竹節形)의 음통이 부착돼 있다.

특히 이 종에는 ‘경기도 광주부 읍내의 남한산성(南漢山城) 장경사(長慶寺)용’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본래 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장경사는 지난해 말 “성보인 중종이 원래 자리인 장경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숙고해 달라”는 사부대중의 뜻을 봉은사에 전달했고, 봉은사는 조계종 총무원에 성보물 반환에 관한 내용을 질의했다. 이와 관련 총무원으로부터 “지정문화재가 아닌 경우 당해 사찰간 협의로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은 봉은사는 종무회의를 통해 중종의 반환을 최종 의결했다.

장경사는 봉은사의 이번 결정에 대해 깊은 감사와 함께 환영의 뜻을 밝혔다. 장경사는 반환시기가 확정되면 이운법회를 열어 그 의미를 널러 전하는 한편, 문화재 지정을 위한 노력에 들어갈 계획이다. 또 봉은사에는 중종과 비슷한 크기의 종을 주조해 답례할 방침이다.

장경사 주지 경우 스님은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준 봉은사 주지 진화 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중종의 반환은 장경사를 여법한 수행공간으로 장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교계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에도 힘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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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2014년 1월 13일 현재

 

봉은사강희21년명종

 


   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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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시대의 범종.

 

▲ 사진출처 : 봉은사 사이트 2014년 1월 15일현재

 

높이 82.5㎝. 1682년 주조. 이 종은 원래 경기도 광주부 읍내의 남한산성(南漢山城) 장경사(長慶寺)용으로 강희21년인 1682년(숙종 8)에 300근의 중량을 들여 제작된 작품이다.
우리나라 전통형 범종을 따른 양식으로서 과장된 괴수형의 용뉴(龍鈕)는 네발로 천판(天板)을 딛고 있으며 뒤에는 죽절형(竹節形)의 음통이 부착되었다.
천판의 외연에는 보상화 형태의 화문을 얕게 시문하였고 상대(上帶)는 2단으로 나누어 아래·위 동일한 양각의 원권범자문(圓圈梵字文)을 가득 주회시켰다.
상대 아래 네 방향에 배치된 방형 유곽대(乳廓帶)에는 구름형태의 쌍구당초문을 장식하였고 유곽 안에는 화형좌(花形座) 위에 낮게 돌출된 종유(鐘乳)를 9개씩 표현하였다.
유곽과 유곽 사이의 여백 면에는 연화가지를 든 운상(雲上)의 보살입상이 1구씩 도합 4구가 시문되었는데, 보살상의 모습은 그다지 유연하지 못하고 약간의 도식화가 엿보인다.
한편 이 종은 당좌(撞座)가 없는 대신 종신 하단부를 돌아가며 별도의 명문판(銘文板)으로 주조된 양각명문이 새겨져 있다. 폭이 좁아진 하대(下帶)에는 유려한 모습의 연당초문(蓮唐草文)을 시문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불교미술대전(韓國佛敎美術大典)』 -불교공예(佛敎工藝)-(한국색채문화사, 1994)
  • 「한국범종(韓國梵鐘)에 관한 연구(硏究) -조선조종(朝鮮朝鐘)의 특징(特徵)-」(염영하, 『범종』11, 1988)

출처 : 네이트를 통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14년 1월 13일 현재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네이버백과 2014년 1월 13일 현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7160&cid=1631&categoryId=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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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2009년 4월 13일 현재

 

봉은사 강희 21년명 종

 

 

 

 

  康熙二十一年 壬戌(조선 肅宗 8년, 1682)
  총 높이 82.5cm, 종신 높이 62.2cm,
  음통 높이 19.2cm,
  종입 지름 53.0cm, 종입 두께 6.2cm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현재 대웅전 종가에 걸려 있는 단용의 용뉴와 음통을 갖춘 전통적인 조선 후기종이다.

음통은 용신과 용꼬리로 나선형으로 감았는데, 이와 같은 양식은 홍천 수타사종(1670), 양산 통도사 대종(1686년), 안성 청룡사종(1674년) 등에서 볼 수 있다.

상대는 62자의 범자문양을 2단으로 돌렸고, 하대는 연화당초문을 돌렸는데 상대폭이 하대폭보다 넓다.

상대에서 독립된 사각형의 유곽 4좌와 구름위의 보살입상 4구가 교대로 배치되었고, 당좌는 없다.

유곽과 보살입상 아래, 즉 종복에 긴 명문대가 있다.
康熙二十一年壬戌三月」 日京畿廣州府邑」 內南漢山城長慶寺」 中鐘重三百斤入」 
즉 강희 21년 조선 19대 숙종 8년(1682) 3월에 경기 광주부 읍내 남한산성에 있던 장경사(현재는 없음) 중종으로 중량은 300근임을 알 수 있다.

자료출처 ;
한국의 종 염영하 지음
범종 이호관 지음 대원사
www.nohht.com.ne.kr
2009년 4월 13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