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폭설 속 전철 역사에서

korman 2010. 1. 12. 23:10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폭설 속 전철 역사에서

 

연초에 큰 눈이 내리고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날 미국에서 잠시 다니러 나온 큰누님의 손녀가 묵고 있는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인천에 오겠다고 하여 전철역 정거장으로 마중을 나갔었다. 그런데 그게 미국과 한국의 표현적 차이인지 아니면 세대 간의 차이인지 그 아이가 “2시에 갈께요” 한 것을 인천에서 전화를 받은 작은 누님은 2시에 역에 도착한다는 것으로 알아듣고 나에게 그 시각에 역에서 기다리라고 전해왔는데 나는 무려 1시간 반이 지난 후에야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아마 아이는 묵고 있는 곳에서 2시에 출발을 한다는 의미로 이야기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리 엇갈린 시간으로 나는 난방도 되지 않아 냉장고 속 같은 역사에서 온몸으로 한기를 느끼며 사람들이 계단을 올라올 때 마다 한참을 기웃거려야 했다.

 

예기는 하였지만 대비가 부족하였음인지 폭설이 내린 도로에는 자동차는 물론 버스도 많이 다니지 않는 상황이라 평소에 전철을 이용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역사로 몰리면서 승차권 자동발매기가 설치된 역사 내부의 자동문은 닫힐 틈이 없이 거의 열려있는 상태가 되었고 승차권 발매기 앞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1시간 반을 기다리며 우리 한국인들의 급한 성질을 재확인하고 자동화 된 사회의 인간미 없는 현실을 느껴야 했다.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후불이던 선불이던 교통카드를 이용한다. 따라서 선불카드를 충전하는 사람 이외에는 역사에서 기계가 내어주는 일회용 표를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날 역사에는 폭설로 인한 일회용 표 수요가 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계 앞으로 몰리는 상황이 되었고 난 의외로 젊은이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자동판매기 작동을 할 줄 모르고 전철 개찰구를 어찌 통과해야 하는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았다. 무임표를 받는 노인들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매일 컴퓨터와 씨름하는 젊은이들이 기계작동을 못하는 게 의아스러워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건 그들이 기계를 만질 줄 몰라서가 아니라 작동설명은 읽지 않고 기계를 작동부터 시키는 우리의 급한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전 우리나라는 전기의 전압을 110V와 220V 두 가지를 병행하여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에 서비스 쎈터가 많이 바빴다고 한다. 그 때 가전제품에는 두 가지 전압을 주고 사용자가 스위치로 전압을 선택하게 하였으며 일자형 플러그에 동그란 플러그를 끼워 쓰게 만든 제품이 많았다. 그리고 설명서에 공장에서 제품이 어찌 되었으니 플러그를 콘센트에 끼우기 전 전압을 확인 하라는 안내문귀가 제품 및 설명서에 붙어 있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서는 처음 제품의 전압이 어찌 되어있는지 설명서는 읽어 보지도 않고 전기부터 연결하는 바람에 쓰지도 않은 제품에 손상이 가서 A/S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설명서 읽는 것을 등한시 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기계에는 단계별로 어찌 하라는 안내문이 자세하게 적혀 있고 그 절차에 대하여 다시 친절한 안내방송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그 시간에 내가 살펴본 사람들 중 기계 앞에서 한참을 헤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기계에 다가가 설명은 읽지 않고 우선 아무 단추나 누르고부터 보는 사람들이었다. 절차를 밟지 않으니 기계가 작동되지 않는 것은 자명한 일, 설명을 잘 읽어보고 다시 하면 될 터인데 대부분은 누군가가 가르쳐 주기 전 까지 그저 아무 단추나 누르고 있었다. 설명을 잘 읽지 않는 것이나 아무 단추나 누르고 보는 것이나 모두 우리의 급한 성격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 아무리 자동화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안내가 있어야 할 듯싶은데 모든 사람들이 기계에 잘 적응하리라 생각하는지 사람들이 그리 몰리는데도 기계에만 모든 일을 맡겨 놓고 승객들은 표를 사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는 역사의 안일한 처사가 자동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불만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기계에서 무임표를 받지 못하시는 할머니 한분을 도와드리는데 그 할머니께서 걸핏하면 파업은 잘 하면서 직원들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고 큰소리 내시는 말씀을 들었는지 누군가 한쪽 구석에서 관계자외 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문을 열고 나왔다.

 

창구가 있긴 있었구나 하고 구석진 곳을 바라보니 반원형 유리창이 달린 것이 예전 표를 팔던 곳 같은데 물어보는 것이 귀찮은지 표는 기계에서 사라는 문구와 함께 매점임을 강조하는 종이를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담배 판매대가 있고 철도회사 직원인지 매점 운영사 직원인지 코레일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이 표 대신에 담배와 각종 상품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내신 큰 소리에 기계에 미숙한 사람들이 많음을 인식하였는지 관계자 외에는 들어오지 말라는 문으로 역시 같은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이 바쁘게 드나들고 있었다. 요새 코레일 직원들은 매점도 운영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눈 쌓인 길로 역사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