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전통을 앞세워

korman 2010. 3. 1. 15:14

 

 

 

전통을 앞세워

 

큰아이가 결혼식을 올린 날이 설날을 한주 앞둔 날이었기 때문에 신혼여행을 다녀와 처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집에(이제는 자기 집도 아니지만) 온 날은 바로 설 턱밑이었다. 아이들이 신혼여행을 가 있는 동안 어미는 아이들이 돌아오면 바로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적응하게 한다며, 실상은 주위에서 요새는 “뭐는 시어머니가 사 주어야 하고 뭐는 친정에서 해야 한다” 등 주위에서 관례를 앞세워 선동하는 것에 넘어가는 것이었지만, 사소한 주방용품이며 냉장고에 넣어야 할 각종 잡다한 것들 그리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직계 친지들에게 인사갈 때 들고 갈 인사용품 등을 준비하느라 발품을 많이 팔았다. 부엌도 제대로 없는 단칸 셋방에서 살림을 시작한 나로서는 살집을 마련해 주는 일로 시작하여 사소한 것 까지 이리 다 챙겨주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시간이었으며 집사람에게는 차례용품을 준비해야 하는 것까지 겹쳐 참 바쁘게 보낸 며칠간이었다.

 

지나간 세월 내게도 있었을 요식행위였을 테고 관혼상제에서 우리의 전통이나 풍습을 지켜나가는 일은 중요한 것이지만 집안의 대사라는 결혼을 준비하고 치르면서 이런 일들 중에는 시대가 변하는 만큼 생각의 변화와 함께 그 방법을 좀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었다.

 

우선, 이제는 한글세대라는 자식들이 중심이 되는 행사이니만큼 함에 들어가는 문서를 한글화 시켜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내는 자와 받는 자가 다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러나 전통 때문에 한자를 배제할 수 없다면 모든 사람들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한글해석을 병기 하는 것은 어떨까. 정으로 주고받는 편지라 하면서 진작 보내고 받는 당사자들은 내용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인쇄된 견본문구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이름만을 적어 넣어 보내면서 전통에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보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서신에 적힌 한자를 다 해독하지 못하는 것이 무지의 소치라 한다면 그에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지만 그러나 이건 나만의 무식만은 아닌 듯싶다. 하지만 이런 것은 개인의 생각대로 바꾸기에는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동의가 필요할 것이므로 관련 사회단체나 공공기관에서 시대에 맞게 적절한 연구 및 제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예단이라는 것이다. 아마 그 당시 유행하던 얇은 이불 한 채씩이라 생각되는데 내가 결혼 할 때도 내 처가에서는 내 부모님의 4촌 형제들 댁에까지 그것을 장만하여 보냈다. 그 당시에 나는 내 부모님이라면 모를까 나와는 5촌 이상이 되는 친지들에게 까지 예단을 빙자한 선물(뇌물)이 가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그게 선물에서 요새는 현찰을 주고받는 풍습으로 바뀌었단다. 그렇다면 나도 작은 아이를 시집보낼 때는 그렇게 준비해야 하겠지만 문득 이것이 우리가 늘 흉보아 왔던 후진국 신부들의 결혼 지참금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척은 고려하지 않고 부모에게만 보낸다 하더라도 과도한 예단은 상대방에게 무리한 부담을 주고 이것이 결혼도 하기 전 양가에게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하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통하여 사돈댁에 예단에 대하여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전했다. 그래도 딸아이를 보내는 집에서는 그게 아니었던지 얼마간의 현찰을 보낸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그게 그걸 받으면 그 액수의 절반은 바로 돌려보내야 한단다. 수표로 가져올 테니 다른 수표를 준비하여 놨다가 아이가 돌아갈 때 되돌려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또 뭔 풍습인가. 아이들에게 한두푼도 아닌 돈을 들고 왔다 갔다 하게 하는 건 무엇 때문이며 왔던 수표는 놔두고 다른 수표를 마련하여 돌려보내야 하는 건 또 무엇 때문인가. 어차피 현찰이 오가는 것이 우리의 전통은 아닌 듯싶어 정이 그리 하여야 한다면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그냥 그 절반만 계좌로 보내면 아이들 수고도 덜고 시간도 절약되고 위험도도 없으니 그리 하자고 해야겠다고 했더니만 집안에서 나보다 오래 사신 분들은 물론 먼저 결혼한 여자 조카아이들까지 나서서 절차가 그게 아니라고 만류한다. 아무리 “오고가는 현찰 속에 싹트는 정” 이라고는 하지만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예단을 앞세운 현찰은 무엇인가? 하기야 현찰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보내는 입장에서야 누구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 할 필요 없이 받는 쪽에서 알아서 하라고 떠넘기면 되니까. 얼마 전 결혼한 내 작은아이 친구는 신랑 댁에서 시어머니 밍크코트를 비롯하여 물목을 정해주는 바람에 참 힘들게 마련하여 짐차에 실어 보냈다고 한다. 조선시대 상단을 꾸리는 것도 아닌데 물목을 정해주다니. 이것도 정도에서 벗어난 듯 하니 좀 달리 생각하여야 할 것인 듯하다.

 

사돈댁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이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댁에서는 “이바지”라는 것을 마련하여 아이들 편에 보내왔다. 그런데 이게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그저 정으로 보내는 잔칫집 떡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받아놓고 보니 결혼식 후에도 꼭 이리 과도한 물건들이 오가야 하는 게 전통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물건들이 도대체 어디에 이바지 하는 걸까 생각하며 사전을 열었더니 “어렵게 장만한 음식” 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받아놓은 물건에서 사전적 의미가 되새겨졌다. 요즈음은 모두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겠지만 예전에도 이런 것들을 준비하는데 얼마나 어려웠으면 “이바지”라는 단어를 택하였을까 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왔다. 이런 사후 요식행위가 꼭 필요한가 하고 묻는 내게 70이 넘은 누님은 혼수보다도 더 중요한 게 이바지라고 하신다. 그러시며 사돈댁에 가는 물건은 자로 잰 듯이 보내야 하니 가져온 만큼 빨리 장만하여 보내라 하신다. 모두가 집사람이 준비해야 하는 것이지만 설날과 맞물린 장터에서 이바지 답례품까지 마련하려 동분서주하는 집사람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내용물을 담기 위하여 포장이 있는 건지 포장을 위하여 내용물이 존재하는 건지 과대포장을 걷어내면 그 절반의 돈으로도 충분할 수 있을 것 같은 물건들을 장만하면서 이런 과도한 요식행위 모두가 두 가정과 아이들을 위하기보다는 전통을 앞세운 자기 과시와 주위의 눈을 의식하는데서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이렇게 겉포장을 위하여 허비할 돈이라면 아이들 살림살이 하나라도 더 장만해 주든가 아니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함께 양가 식구가 모여 조용한 곳에서 식사라도 같이하며 덕담이라도 나누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나 자신도 체면과 집안 어른들 및 주위에서 보는 시선을 의식한 탓이겠지만 딸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도 아무리 내가 그리하자고 한들 내 제의에 쉽게 동의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식의 대부분은 서양식을 따르면서도 주고받아야 하는 것들에는 전통과 풍습과 관례를 앞세우는 것 같아 모든 행사를 다 치르고도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는다. 번잡하고 고로하다는 이유로 전통방식을 배제하고 서양식을 도입하면서 그 겉면만을 따르고 그와 관련된 서양 사람들의 정신자세는 헤아리지 않는 우리 모습도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행사였다.

 

2010년 2월 열 아흐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