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난 이 나이에 글을 몰라 편지를 대필한다

korman 2010. 2. 3. 17:48

 

   

 

 

난 이 나이에 글을 몰라 편지를 대필한다

 

휴일이면 가끔씩 찾아가는 월미산 산책로 중간쯤 산으로 오르는 한 곁에 언제부터인가 하얀 바탕의 나무판자로 되어있는 추모비라는 것이 세워져 있다.

월미도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 예전 이곳에 군부대가 있을 때에는 세우지 못하다가 그들이 철수하고 월미산이 자유로워지면서 관련 민간단체가 세웠다고 하는데 어느 분이신가 알고 싶어 빼곡히 쓰인 추모비문을 몇 줄 읽다가 머리와 눈에 동시에 쥐가 올라 그만두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로도 그곳에 계속 가고는 있지만 눈길은 가되 그것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추모비문이 토씨만 제외하고는 온통 한자 일색이고 나 자신이 한자로부터 자유스러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이, 가, 는, 에게, 한테, 부터, 을, 도, 에 등등” 한글 토씨를 제외하고는 읽을 글자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몇 줄 살펴본 추모비문에 쓰인 한자어의 대부분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항상 쓰고 있는 단어인 관계로 굳이 한자로 표기하지 않아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씨만을 한글로 표기한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한자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분을 추모하여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래야만 위엄이 선다고 생각한 것인지 모를 일이로되 굳이 한자표기가 필요하였으면 한글로 쓰고 그 옆에 괄호를 만들어 한자를 병기하였다면 좋지 않았을까. 시청에 문의하였더니 외국인을 위해서 그리 하였다는 대답이다. 한자표기가 우리나라, 일본, 중국이 다른 게 많고 특히 중국은 간체를 쓰며 한글 토씨가 붙어 있고 있어야 할 관련 영문 안내문은 없으면서 무슨 외국인? 참 궁색한 대답이다.

 

큰아이의 혼사를 치루면서 사돈댁에 함을 보냈다. 그런데 그 안에 신랑 아버지가 사돈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어야 한단다. 내용인즉 곱게 기른 딸을 보내 주어서 고맙다는 표현을 포함하여 의례적 인사를 한자로 적는 것이라는데 집안의 웃어른이 한지에 붓으로 써야 한단다. 하지만 요새 도시의 보통 가정에 그것을 격식에 맞게 한자로 적을 수 있는 어른이 있는 집이 얼마나 되랴. 다른 형식은 다 서구화 되면서 이런 것은 꼭 한자로 써야하나, 한글로 그저 고마움의 표시를 하면 안 되나, 인터넷을 뒤져보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한복집에서 전화가 왔다. 옷 찾으러 올 때 신랑, 신부의 인적사항 몇 가지를 적어 보내라는 것이었다. 뭐에 쓰나 물은즉 사주와 문제의 그 편지를 써준다는 것이다. 요새는 그런 격식이나 형식을 제대로 아는 일반인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한복집 같은 곳에서 다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예쁜 천으로 만든 봉투에 곱게 접어 넣은 편지를 꺼내본즉 프린트 된 형식에 빈칸만 채워 넣었다. 그런데 이 편지에 아는 글자라고는 한 절반정도 밖에는 안 되니 역시 눈과 머리에 쥐가 오른다. 한글 토씨도 없으니 아는 글자가 있다고 한들 해독하기도 어렵겠지만 내 이름 밑에 배상이라 쓰여 있으니 내가 보내는 건 알겠는데 편지 쓴 사람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편지를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짧은 웃음이 픽 나왔다. 남의 힘을 빌려 쓴 편지이니 그 내용이 설사 내가 그쪽 집에 아들을 데릴사위로 보내겠다고 쓰여 있다 하더라도 이 무식한 편지 발송인은 그저 다시 조심스럽게 접어서 함속에 넣어야 하는 일 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또 한편 이런 편지를 받는 쪽에서는 무슨 내용인지 완전히 해독 할 수 있을까. 그저 형식적으로 꺼내보고 하얀 건 종이이고 검은 건 글씨이니 좋은 이야기야 하고는 뒤꼍으로 밀어 놓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에 또 한 번 웃음이 나온다. 아무리 형식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우리가 중국인도 아니거늘 한글토씨 하나 없이 내용도 모르는 편지를 이리 주고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한글로 풀어쓴 편지로 이 형식을 대신하면 더 무식하다는 소리 들으려나 하는 생각과 한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님들 이런 거 좀 한글로 만들어 여러 사람 편하게 하여 주시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공존한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신 이유가 한자와 이를 읽는 우리나라 말과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그 첫 번째라면 비록 옛 우리나라의 각종 역사적 기록이나 전통 및 풍습에 대한 기록이 모두 한자로 이루어져 있다 할지라도 한글이 창제 된지 벌써 560년이 넘었으니 그동안 일반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전통문화나 풍습에 대한 기록이나 용어는 한글화 되었을 법도 한데 아직 경조금에 사용하는 봉투 겉면의 용어조차도 한자를 배제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를 생각하면 그것이 그동안 한글을 언문이라 업신여겨온 조상님들 덕분이다 생각하기 이전에 아직 우리의 인식에 그런 격식을 차려야 하는 지리에는 한자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으며 이것이 결국은 한글은 그런 자리에는 끼지 못한다는 언문적 사고방식이다 주장한다면 또 무식하다는 소리 들을까?

 

몇 년 전 북경에 갔을 때 젊은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한자에 대한 기성세대 지식층 혹은 관료층의 행동에 대하여 의미 있는 비판을 하였다. 중국에서는 현재 대부분의 한자에 대하여 중국식 약자(간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일부 지식층이나 혹은 관료층 사람들이 자신의 위엄이나 유식을 나타내고 싶을 때 간체를 쓰지 않고 정자(번체)를 사용한다고 하며 이는 아주 잘못된 정신 상태라고 지적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내부문서에 “결제를 바랍니다”라고 적어 윗선에 올렸더니 올라가면서 “결제를 앙망하나이다”로 고쳐지더라는 어느 초보 사회인의 이야기가 떠올려지며 주요 공식문서에 사용되는 용어나 가끔씩 TV 인터뷰에서 어깨를 반쯤 뒤로 제치고는 쉬운 말을 놔두고 각종 한자어로의 용어 선택에 애쓰시는 분들을 볼 때 우리도 비슷한 처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 신문에 부모들의 85% 이상이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한자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한자를 많이 알아야 한다는 데는 나도 이견이 없는 사람이지만 국적도 모르는 외국어가 남발되고 있는 이때에 한자교육에 앞서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한글의 중요성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교육이 더욱 절실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2010년 2월 초이튿날

 

       

The Ducbess Tree, The Scottish Fiddle Orchestra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빛 베레모의 세월  (0) 2010.03.16
전통을 앞세워  (0) 2010.03.01
폭설 속 전철 역사에서  (0) 2010.01.12
낙엽 쌓인 등산로에서  (0) 2009.12.19
가을의 담배꽁초  (0) 2009.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