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고려의 종

중앙박물관 소장 경기도 여주출토 청녕4년명 동종 驪州出土淸寧四年銘銅鍾 (보물 1166호)

korman 2010. 3. 5. 18:26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청녕 4년명 동종, 고려 1058년, 높이 85.4㎝, 지름 54.3㎝, 보물 제1166호, 신수1755

새로운 종의 발견
높이 85.4㎝의 청녕(淸寧) 4년명 동종은 고려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중형 종으로, 1969년 4월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상품리에서 마을 주민이 우연히 발견하였습니다. 고려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종의 발견은 그 시대 동종의 새로운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고려 전기 동종 양식의 정착
이 종의 용뉴와 음통, 상대(上帶)와 하대(下帶), 연곽(蓮廓, 연뢰를 싸고 있는 사각형의 틀)과 연뢰(蓮蕾, 연꽃 봉오리 모양의 돌출된 장식), 당좌(撞座)와 보살상 등은 통일신라 범종의 양식적 특징을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고려시대만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먼저 용뉴를 보면, 용의 머리가 천판(天板)에서 떨어져 정면을 바라보고 입에는 보주를 물고 있습니다. 용이 머리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고 입에 보주를 물고 있는 것은 1010년에 만든 통화(統和) 28년명 천흥사 동종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데, 이러한 양식적 특징이 청녕 4년명 동종에서 정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용의 목은 S자로 굴곡을 이루고 갈기와 비늘까지 묘사되었습니다. 다리 앞에서 뿔처럼 길게 뻗어 나온 갈기가 음통에 부착된 것은 새로운 모습입니다. 가늘고 긴 음통에 연주문으로 단을 나누고, 연꽃당초무늬를 얕게 표현하였습니다.
천판 가장자리에는 꽃무늬 잔식을 살짝 도드라지게 표현했는데, 이와 같은 장식을 입상화문(笠狀花文)이라고 부릅니다. 이 종에서 처음 나타나는 장식 요소입니다. 그 아래 종 몸체에서 상단의 띠를 가리키는 상대에는 연이어진 구슬 모양의 연주문(連珠文) 틀 안에 모란당초무늬를 표현했고, 상대 아래에는 네 군데에 연곽을 만들고, 그 안에 9개의 연뢰를 배치하였습니다. 연곽의 테두리는 연주문으로 틀을 만들고 그 안쪽에 모란당초무늬를 표현하였고, 연곽 안에는 9개의 연뢰를 배치하였습니다. 연곽 아래에는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불상과 보살상 4구를 교대로 배치하였는데, 통일신라 종의 비천상이 고려시대에는 불보살상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의 몸체 하단에는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가 있습니다. 당좌가 4개로 늘어난 것은 고려 중기 범종의 특징으로 이 종에서 처음 보입니다. 몸체 하단에 둘러진 띠인 하대는 상대와 같이 연주문으로 문양 틀을 만들고 그 안에 모란당초무늬를 표현했습니다. 하대 위에는 위패형 문양 틀을 만들고 그 안에 명문을 새겼습니다. 위패형 문양 틀은 통화 28년명 천흥사 종에 처음 나타나며, 이 종에서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고려 후기 ‘입상화문대’의 시원
이 종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상대 위 천판 외연부에 나타나는 입상화문 장식입니다. 입상화문 장식은 고려시대 전기와 후기 종을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시원 양식이 청녕 4년명 동종에 나타납니다. 입상화문 장식 이전에는 종의 천판 가장자리에 이른바 견대(肩帶) 장식이 새겨졌는데, 이것은 성덕대왕신종에 처음 표현되었습니다. 이후 고려시대 동종에서는 점차 사라지며 새로운 장식 요소인 입상화문이 나타나는데, 이 종에 처음으로 적용되었습니다.

명문
하대 위에 맞붙여서 만든 위패형 틀 안에는 다음과 같은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명문은 종에 관한 정보를 주는 가장 중요한 단서입니다.

特爲聖壽天長之願鑄成金鍾一口重一百五十斤淸寧四年戊戌五月日記’

특별히 임금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여, 금종(金鍾) 1개를 주조하여 만들었다.
무게는 150근이다. 청녕(淸寧) 4년(1058년, 문종 12) 무술년(戊戌年) 5월일에 쓴다.

명문에 따르면, 이 종은 당시 국왕인 고려 문종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무게 150근의 재료를 들여 청녕 4년인 1058년 5월에 만들었습니다. 명문에 나오는 성수천장(聖壽天長)은 국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문구로, 불교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이 종을 비롯해 1086년에 제작한 태안(泰安) 2년 장생사(長生寺)명 동종에도 나타납니다. 비록 이 종이 봉안되었던 사찰과 전각의 이름은 명문에 없지만, 종을 만든 직접적인 이유가 국왕의 만수무강 기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종은 무게 150근의 동종으로 11세기 중반 중종(中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청녕 4년명 동종은 통일신라 동종이 고려시대 동종으로 이행하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동종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양식적으로는 고려시대 후기 동종의 특징인 입상화문의 시원적인 종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출처

https://www.museum.go.kr/site/main/home

2022년 5월 22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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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1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녕4년명종

 

고려만의 특징 완연히 보여주는 첫 범종

 

고려 중기 범종 대표 작품

종구쪽 종신 ‘직선화’ 모습

종구 비해 종신 짧아 둔탁

여주 지역 사찰 봉안 추정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녕4년명 종의 전체모습. 높이 85.4cm, 보물 1166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종은 범종의 양식적 특징상 크게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의 유무를 중심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고 필자는 이를 다시 초, 중, 후, 말기의 4기로 세분화하여 구분하고 있다.

 

각 시기별로 특징적인 양식적 변화와 기간을 편년이 확실한 범종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우선 초기는 고려 범종이 성립되어 전개를 이루어 나간 통일신라 종과의 과도기적 시기로 대체로 10세기 중엽부터 11세기 전반에 해당된다.

 

중기는 고려 범종으로의 완전한 정착을 이룬 1058년의 청녕4년명(淸寧四年銘) 종이 만들어진 11세기 중엽부터 12세기 말경으로 편년된다. 입상화문대로 특징 지워지는 고려후기 종은 12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초를 후기로 나누어 입상화문대의 정착과 소종이 유행된 시기, 그리고 14세기 전반부터 말까지의 고려 말기의 범종은 외래(중국) 양식의 유입과 절충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할 청녕4년명종(1058)은 이러한 고려 범종의 편년 가운데 중기 범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그 의미가 크다. 앞서까지의 범종이 아직 통일신라 범종 양식의 과도기적 양상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이 종에 와서 고려 범종의 두드러진 특징을 완연히 보여주게 되는 작품이다.

종신의 불좌상.

우선 용뉴는 그 입을 천판(天板) 위에서 띠어 앞을 바라보고 있어 입 안에 보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S자형으로 힘차게 굴곡진 목에는 갈기와 비늘까지 세세하게 묘사되었고 다리 앞에서 좌우로 뿔처럼 길게 뻗어 나온 갈기 장식이 음통 좌우로 부착된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통일신라 종에 비해 가늘고 긴 음통에는 연주문대의 띠로 구획을 나누어 연당초문을 얕게 시문하였고 연주문대로 두른 상, 하대에는 유려한 모란당초문이 섬세하게 장식되었다. 특히 이 종의 천판의 외연에는 마치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처럼 보이는 구름무늬 내지 당초문처럼 장식된 띠를 두르고 있음이 주목된다. 상대(上帶) 위에 나지막하게 굴곡을 이루는 장식 띠는 결국 고려후기 종에 등장되는 입상화문대의 초보적인 단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상화문대 장식은 고려 초기의 천흥사종(天興寺鐘)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용뉴와 종신을 별도로 붙여 주조할 때 천판 위에 남게 되는 보기 흉한 주물 접합선을 감추기 위한 배려로부터 시작되어 점차 하나의 독립적 문양대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청녕4년명 종 이후에는 다시 보이지 않다가 1196년에 제작된 명창7년명(明昌7年銘) 종까지 오히려 고려전기 종의 요소가 계속 계승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4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성거산 천흥사종(1010)의 종신이 위가 좁고 배가 불룩하다가 다시 종구가 좁아지는 통일신라 종의 항아리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종의 종신은 종구 쪽으로 가면서 점차 직선화된 모습이다.

종신의 보살좌상.

따라서 몸체의 비례가 종구(鐘口)에 비해 종신이 짧아져 둔탁한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형태는 통일신라 종의 종신과 다른 고려 중기 종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요소이다. 상대에는 모란과 줄기, 잎을 유려하게 연결한 문양으로 꽉 채워 매우 입체적으로 표현되었다. 하대는 상대와 일견 유사하지만 그보다 모란을 더 강조한 대신 줄기는 간략하게 묘사하여 약간 다르게 구성하였다.

 

상대 아래 바로 붙은 4개의 연곽대에는 상대와 동일한 형태의 모란문을 장식하였고 그 외곽을 연주문으로 정연하게 둘렀다. 연곽 안에 배치된 9개씩의 연뢰(蓮)는 자방을 약간 도드라지게 만들었지만 높게 돌출된 일반적인 연뢰에 비해 그 높이가 미약하다.

 

이 자방 주위에 유려한 형태의 연판문을 8엽이 아닌 7엽으로 두르고 그 사이에 간엽을 배치한 모습으로서 연판 내부에 판심(瓣心) 같은 세밀한 부분까지 처리한 모습이 돋보인다. 이러한 세부의 정교한 표현은 종 명문에 제작자가 기록되지 않았지만 당시로서도 매우 뛰어난 장인에 의해 제작된 것임을 밝혀준다.

 

특히 이 종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연곽 바로 아래의 네 면에 번갈아가며 불상, 보살상(佛菩薩像)을 배치한 점이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두른 불상과 보살상은 측면관을 취하였고 연화 대좌 위에 앉아 불상은 결가부좌를, 보살상은 무릎을 꿇어 합장한 모습이다. 연화좌 아래에는 구름이 받치고 있으며 신광 뒤쪽으로 길게 구름문이 솟아있다.

 

이처럼 이 범종의 종신에는 지금까지 표현된 주악천인상이나 비천상이 아닌 불보살상을 번갈아가며 배치한 최초의 범종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종신에서 한참 밑으로 내려와 하대 바로 위에 배치된 당좌가 사방에 1개씩 도합 4개로 늘어난 점도 이 종에서 처음 등장하는 새로운 고려 범종 양식의 하나로서 주목된다.

&lsquo;청녕4년명 종&rsquo; 음각 명문.

중앙의 연과를 두고 가늘고 긴 16엽의 연판으로 구성한 당좌의 문양도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당좌 한쪽 옆으로는 하대에 맞붙여 네모난 위패형(位牌形) 명문구를 구획하여 유려한 필치의 음각명문을 새겨놓았는데, 기존의 명문구와 달리 상부에 화문을 장식한 점이 색다르다.

 

또렷한 해서(楷書)채의 음각으로 새겨진 내부의 명문은 ‘특위, 성수천장지원주, 성금종일구중일백. 오십근, 청녕사년무술오월일기(特爲, 聖壽天長之願鑄, 成金鍾一口重一百. 五十斤, 淸寧四年戊戌五月日記)’ 의 5행으로서 ‘청녕사년무술(淸寧四年戊戌)’은 고려 문종(文宗) 12년인 1058년에 해당된다. 그 해 5월 일에 150근의 중량을 들여 금종 한구를 수명 장수를 위해 발원하였음을 기록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의 절 이름은 보이지 않지만 이 종이 1967년 경기도 여주(驪州)에서 발견된 점에서 주변 사찰에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추가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명문 중에 금종(金鍾)이란 명칭이 주목되는데, 고려시대 범종에는 이러한 명칭이 사용된 예가 간혹 보인다. 실제로 금을 넣어 합금하였다기보다 범종의 미사여구 또는 약간의 금도금을 시행하지 않았을까 추측되지만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정밀한 분석이 요망된다.

 

이 종은 고려전기의 과도기적 양식에서 벗어나 이제 고려 종으로의 완전한 정착을 이루게 되는 대표적인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편년자료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현재 보물 1166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국보로 승격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여음(餘音)

1967년 4월18일 경기도 여주군(麗州郡) 금사면(金沙面) 상품리(上品里)에서 동네에 거주하는 이영구 씨란 주민이 고철 수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땅 속에서 발견된 종치고 처음부터 보존상태가 완벽하였고 사용 흔적도 많지 않아 매우 특이한 예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한국 범종 연구에 있어 더없이 귀중한 이 고려 범종이 발견된 주변 지역에 대한 추가적인 정밀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원래 종이 있었던 사지 등에 관한 자료가 전혀 밝혀지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땅 속에서 발견된 선림원지 종과 실상사 파종, 연천 출토 종과 더불어 지하에서 우연히 출토된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불교신문3327호/2017년9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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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0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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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소장 경기도 여주출토 청녕4년명 동종

驪州出土淸寧四年銘銅鍾 (보물 1166호)

 

 

 

 

 

 

 

출처 : 이무지엄 2017년 2월 10일 현재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101100175500000#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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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녕4년명 동종

청녕4년 명동종

 

 

• 코드: cp0501b01001 

 

• 명칭 : 청녕4년명동종 

 

• 지정 : 보물 제 1166호 

 

• 조성연대 : 고려 문종 12년(1058) 

 

• 제원 : 전체높이 83.2㎝, 종신 62㎝, 입지름 55㎝, 무게 : 90kg 

 

• 소재지 : 국립중앙박물관 

 

• 관리자 : 국립중앙박물관 

 

• 설명 

 

고려전기범종으로 1967년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상품리 마을주민이 고철수집 때 우연히 발견하였다. 재질은 청동이다. 

 

용뉴는 한 마리의 용이 신라종의 용두와는 달리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며, 몸체를 구부려서 범종을 매어 달게 하고 있다. 음통은 6단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 부분마다 보상당초문(덩굴무늬)을 돋을새김 하였다. 상대와 천판의 경계선에는 여덟 개 부분의 세워진 꽃봉오리 머리 부분을 문양으로 조식하였다. 

 

종의 상대와 하대, 9개의 연뢰를 둘러싼 사각형의 연곽에는 가늘게 연이은 구슬 모양의 연주문대를 돌리고, 그 내부에 모란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연곽내의 연뢰는 복엽의 연화좌로 장식된 연좌에 자방형으로 도드라지게 하였다. 종 몸통에 있는 비천상은 천흥사종(국보 제280호)과는 달리 4곳에 있으며, 모두 구름무늬와 복련의 연화좌 위에 천의(天衣)를 날리며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결가부좌한 상으로 배치하고 있으며 특히 대칭적으로 보관을 갖춘 2구의 보살상을 배치하고 있으며 다른 2구는 보관이 없는 여래인 점이 특징이다. 당좌 역시 종신에 보살상과 교대로 4곳에 배치하였는데 중앙에 자방을 갖추고 그 주변에 복엽의 16연판을 돌리고 그 외곽에 연주문으로 장식하였다. 

 

종신 아래 위패모양 안에 「특위(特爲) 성수천장지원주(聖壽天長之願鑄) 성김종일구중일백오십근(成金鐘一口重一百五十斤) 청녕사년무술오월(淸寧四年戊戌五月) 일기(日記)」 등 제작 연대와 중량을 알 수 있는 글이 새겨 있는데, 이 명문에서 보이는 청녕(淸寧)은 요(遼)의 연호(年號)이며 「청녕사년무술(淸寧四年戊戌)」은 고려 문종 12년(1058)에 해당되며 주조년대가 확실한 범종이다. 

 

<자료참조 : 문화재청, 직지성보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2017년 12월 5일 햔재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7&cp_code=cp0501&index_id=cp05010023&content_id=cp050100230001&search_left_menu=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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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소장 경기도 여주출토 청녕4년명 동종 驪州出土淸寧四年銘銅鍾 (보물 1166호)

 

 

여주출토 동종 (보물 1166호)

  • 한자驪州 出土 銅鍾
  • 국적/시대한국(韓國)-고려(高麗) <1058년>
  • 출토지경기도(京畿道)-여주군(驪州郡) / 금사면 상품리 87
  • 재질금속(金屬)-동합금제(銅合金製)
  • 명문내용特爲聖壽天長之願鑄成金鍾一口重一百五十斤淸寧四年戊戌五月日記
  • 문양인물문(人物文) / 비천문,불ㆍ보살문
  • 용도종교신앙(宗敎信仰) / 범종
  • 크기높이 83.2cm
  • 소장기관국립중앙박물관
  • 지정구분보물 1166호
  • 유물번호신수(新收)-001755-000

동종 정상부의 용뉴龍鈕는 ‘S'자형의 일반적인 양식으로, 입 안에 구슬을 물고 있으며, 힘찬 굴곡을 이루는 목은 갈기와 비늘까지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대롱 모양의 음통音筒은 6단으로 나누어져 각 단마다 연당초무늬[蓮唐草文]가 장식되었다. 상대上帶의 무늬 띠 위로 구름 또는 당초무늬처럼 장식된 띠가 위로 솟아있다. 네 개의 연곽대蓮廓帶는 상 · 하대와 동일한 무늬를 넣었으며, 그 안에는 얕게 돌출된 아홉 개의 봉오리가 있는 연꽃무늬가 장식되었다. 연곽 바로 아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불상과 보살상 4구를 번갈아가며 배치하였다. 하대에는 네모난 위패位牌형 테두리 안에 글자를 새겨 넣었는데, 글자 가운데 ‘청녕淸寧 사년四年’은 1058년(고려 문종 12년)에 해당된다. 이 동종은 하대 바로 위에 당좌 撞座가 배치되었고, 상대 위쪽에 솟아 있는 장식대 등을 통해 고려 전기의 과도기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양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韓國의 美』23-金屬工藝(중앙일보사;1985).

출처 및 원본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museum.go.kr/program/relic/relicDetail.jsp?menuID=001005002001&relicID=1986&relicDetailID=7941

 

1301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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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출토청녕4년명동종 驪州出土淸寧四年銘銅鍾
 
지정번호
:
보물 제1166호
 
지정연월일
:
1993년 9월 19일
 
시 대
:
고려시대, 문종 12년(1058)
  규 모
:
종 높이 0.84m, 입지름 0.55m
  재 료
:
청동
  소 유 자
:
국유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국립중앙박물관
 
여주출토청녕4년명동종은 고려시대의 범종으로 1967년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상품리에서 고철 수집 때 우연히 발견되었다.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의 용두(龍頭)는 신라 범종의 용두와는 달리 한 마리의 용이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며, 용체(龍體)를 구부러뜨려 범종을 매어 달게 하고 있다. 용의 등 뒤에 있는 음통은 6단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 부분마다 보상문(寶相紋)·당초문(唐草紋)을 양각하여 장식하였다.

용뉴 아래 상대(上帶)의 문양대와 천판(天板)이 접하는 경계 상에는 8개의 입화형(立華形) 뇌두문을 배치하였고 또한 상대·하대(下帶)·유곽대(乳廓帶)에는 가늘고 섬세한 연주문대(聯珠紋帶)를 돌리고 그 내부에 모란문(牧丹紋)과 당초문을 주된 문양으로 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상대 아래에 있는 사각형 유곽에는 꽃 모양으로 돌출된 유두(乳頭) 9개를 붙여놓았고, 유곽 주위에는 유곽대를 돌렸다.

종신(鐘身)에 있는 비천상(飛天像)은 이보다 48년 전에 만들어진 국보 제280호 성거산 천흥사동종이 두 군데에 배치된 것과는 달리 네 곳에 있다. 모두 구름무늬 위에 복련(覆蓮)으로 된 연화좌(蓮花座) 위에 천의(天衣)를 날리며 두신광(頭身光)을 갖추고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대칭 되는 곳에 보관(寶冠)을 쓴 2위의 보살상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 역시 종신 중하단에 보살상과 교대로 엇갈리게 하여 네 곳에 배치하였는데, 당좌 중앙에는 자방(子房)을 갖추고 그 주변에 복엽(複葉)의 16연판(蓮瓣)을 돌렸으며, 그 외곽도 가늘고 섬세한 연주문으로 장식하여 처리하고 있다.

종신 아랫부분 하대에 접하는 곳에는 사각형으로 구획된 방곽(方廓內)을 만들고 그 상부를 화문으로 장식하였다. 방곽 안에는 지름 1.3㎝ 크기의 글씨를 4행으로 새겨 넣었는데, 이 같은 방식은 국보 제28호 천흥사동종 또는 현재 일본 사가(在賀)현 혜일사(惠日寺)에 소장된 태평6년(太平六年, 1026)명 거제북사종(巨濟北寺鐘) 등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이 명문대가 자리한 위치는 용뉴의 용두 방향과 일치되어 유곽 바로 아래에 해당하여 제작 당시 의도적으로 이 자리를 정면으로 삼았던 듯하다.

명문은 하대에 붙여서 만든 사각형의 구획 안에 '特爲聖壽天長之願鑄成金鐘一口重一百五十斤淸寧四年戊戌五月日記'라고 새겨져 있다. 전부 4행으로 음각하였는데, 명문 중에 이 동종을 봉안한 사원이나 승려 이름 등이 나와 있지 않지만, 고려 문종 12년(1058)에 해당하는 '청녕(淸寧)'이라는 중국 요(遼)의 연호가 있어 연대가 확실한 작품이 되고 있다. 현재 이 청녕4년명동종 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된 고려 동종으로는 1010년에 조성한 천흥사동종이 유일하므로 이 동종은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 동종 가운데 두 번째로 빠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다만 일본에 반출된 고려 동종 가운데는 이 보다 빠른 시기의 것으로 영암서원종(靈巖西院鐘, 963), 거제북사종, 태평10년(太平十年, 1030)명 동종 등이 있다.

한편 명문 가운데 이 동종을 가리켜 '금종(金鐘)'이라 한 것도 처음 나타나는 용어이기에 동종의 명칭 고찰에서 매우 중요하다.















출처 : 서울시 서울문화재 사이트 
원문 : http://sca.visitseoul.net/korean/crafts/i_metalwork03008.htm
100503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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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출토 ‘청녕4년’명 동종〈여주출토 ‘청녕4년’명 동종〉, 


1058, 높이 83.2㎝, 보물 제1166호, 국립중앙박물관.1058년(문종 12) 제작된 동종이다. 고려 전기 과도기적 양식에서 벗어나 고려 중, 후기의 완전한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의의가 크다.
[네이버 지식백과] 여주출토동종 [驪州出土銅鍾]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제목 : 여주출토청녕사년명동종  원본보기
설명 : 경기 여주군 금사면 상동리에서 출토된 고려 전기의 범종. 높이 83.2㎝, 입지름 53.5㎝. 보물 제1166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 Copyright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상동리에서 출토된 고려 중기의 범종. 높이 83.2㎝, 입지름 53.5㎝. 보물 제1166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67년 4월 발견되었다. 용통(甬筒)은 6단(段)으로 구획되어 보상당초문(寶相唐草文)을 조각하였다. 용뉴(龍紐)는 입안에 커다란 여의주를 물고 머리 위에 쌍각(雙角)이 달려 있는 용의 목부분을 S자형으로 구부려 고리를 만들었다.

종견(鐘肩) 부분에는 운형(雲形)의 입상화문(笠狀花文)을 장식하였고, 상하대(上下帶)와 유곽대(乳廓帶)에는 보상당초문이 유려하게 양각되었으며 그 양가에는 연주문(連珠文)을 둘러 장식하였다.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乳頭)가 안치되었는데, 복판연화(複瓣蓮花)로 된 유좌(乳座) 가운데에 납작한 유두가 자방(子房)으로 표현하였다.

몸체에는 4개소의 유곽 밑에 각기 1구(軀)씩 비천상(飛天像)을 작게 배치하여 주위 여백을 많이 남기고 있다. 비천상의 2구는 보관(寶冠)을 쓴 보살상이고, 2구는 여래상인데 각기 서로 대칭적으로 마주 대하고 있다. 비천상은 유운상(流雲上)의 연화좌에 결가부좌하고 앉았으며 머리와 몸체에는 둥근 두신광(頭身光)이 표현되었고, 또 기다란 구름 꼬리가 등 뒤로 뻗어오르고 있다.

이 비천상과 교차되는 네 곳에 당좌(撞座)가 배치되었는데, 당좌는 자방이 있는 중판(重瓣)의 16엽 연화로서 둘레에 연주문이 장식되었다. 종신(鐘身)에 새겨진 명문의 내용으로 보아 문종 12년(1058)에 주조된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高麗梵鐘의 新例(黃壽永, 藝術論文集 8, 1969)


출처 : 엠파스 백과
         네이트 백과 081213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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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출토청녕4년명동종 驪州出土淸寧四年銘銅鍾
 
 
지정번호
:
보물 제1166호
 
지정연월일
:
1993년 9월 19일
 
시 대
:
고려시대, 문종 12년(1058)
  규 모
:
종 높이 0.84m, 입지름 0.55m
  재 료
:
청동
  소 유 자
:
국유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국립중앙박물관
 
여주출토청녕4년명동종은 고려시대의 범종으로 1967년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상품리에서 고철 수집 때 우연히 발견되었다.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의 용두(龍頭)는 신라 범종의 용두와는 달리 한 마리의 용이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며, 용체(龍體)를 구부러뜨려 범종을 매어 달게 하고 있다.



용의 등 뒤에 있는 음통은 6단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 부분마다 보상문(寶相紋)·당초문(唐草紋)을 양각하여 장식하였다.

용뉴 아래 상대(上帶)의 문양대와 천판(天板)이 접하는 경계 상에는 8개의 입화형(立華形) 뇌두문을 배치하였고 또한 상대·하대(下帶)·유곽대(乳廓帶)에는 가늘고 섬세한 연주문대(聯珠紋帶)를 돌리고 그 내부에 모란문(牧丹紋)과 당초문을 주된 문양으로 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상대 아래에 있는 사각형 유곽에는 꽃 모양으로 돌출된 유두(乳頭) 9개를 붙여놓았고, 유곽 주위에는 유곽대를 돌렸다.


종신(鐘身)에 있는 비천상(飛天像)은 이보다 48년 전에 만들어진 국보 제280호 성거산 천흥사동종이 두 군데에 배치된 것과는 달리 네 곳에 있다.



모두 구름무늬 위에 복련(覆蓮)으로 된 연화좌(蓮花座) 위에 천의(天衣)를 날리며 두신광(頭身光)을 갖추고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대칭 되는 곳에 보관(寶冠)을 쓴 2위의 보살상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 역시 종신 중하단에 보살상과 교대로 엇갈리게 하여 네 곳에 배치하였는데, 당좌 중앙에는 자방(子房)을 갖추고 그 주변에 복엽(複葉)의 16연판(蓮瓣)을 돌렸으며, 그 외곽도 가늘고 섬세한 연주문으로 장식하여 처리하고 있다.


종신 아랫부분 하대에 접하는 곳에는 사각형으로 구획된 방곽(方廓內)을 만들고 그 상부를 화문으로 장식하였다.



방곽 안에는 지름 1.3㎝ 크기의 글씨를 4행으로 새겨 넣었는데, 이 같은 방식은 국보 제28호 천흥사동종 또는 현재 일본 사가(在賀)현 혜일사(惠日寺)에 소장된 태평6년(太平六年, 1026)명 거제북사종(巨濟北寺鐘) 등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이 명문대가 자리한 위치는 용뉴의 용두 방향과 일치되어 유곽 바로 아래에 해당하여 제작 당시 의도적으로 이 자리를 정면으로 삼았던 듯하다.

명문은 하대에 붙여서 만든 사각형의 구획 안에 '特爲聖壽天長之願鑄成金鐘一口重一百五十斤淸寧四年戊戌五月日記'라고 새겨져 있다.



전부 4행으로 음각하였는데, 명문 중에 이 동종을 봉안한 사원이나 승려 이름 등이 나와 있지 않지만, 고려 문종 12년(1058)에 해당하는 '청녕(淸寧)'이라는 중국 요(遼)의 연호가 있어 연대가 확실한 작품이 되고 있다.


 현재 이 청녕4년명동종 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된 고려 동종으로는 1010년에 조성한 천흥사동종이 유일하므로 이 동종은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 동종 가운데 두 번째로 빠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다만 일본에 반출된 고려 동종 가운데는 이 보다 빠른 시기의 것으로 영암서원종(靈巖西院鐘, 963), 거제북사종, 태평10년(太平十年, 1030)명 동종 등이 있다.

한편 명문 가운데 이 동종을 가리켜 '금종(金鐘)'이라 한 것도 처음 나타나는 용어이기에 동종의 명칭 고찰에서 매우 중요하다.



출처 : 불교문화사랑 061105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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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京畿道) 여주(驪州) 범종(梵鍾) (3-7)



소재지(所在地) : 서울특별시(特別市)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연 대(年 代) : 1058年 (문종(文宗) 12年, 청령(淸寧) 4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84.7cm 종신고(鍾身高); 64cm 용뉴고(龍鈕高); 20.7cm 용통경(甬筒
徑); 4.6cm 상대폭(上帶幅); 4.5cm 유곽폭(乳廓幅); 3.6cm 유곽장(乳廓長); 16×
21.2cm 당좌경(撞座徑); 10cm 구경(口徑); 55cm 하대폭(下帶幅); 7cm 종구후(鍾
口厚); 3.3cm
1967年 4月 18日 경기도(京畿道) 여주군(驪州郡) 금사면(金沙面) 상품리(上品里)에서 동
리(洞里)에 거주(居住)하는 이영구씨(李榮九氏)가 고철 수집시(時) 우연히 발견(發見)한 고
려종(高麗鍾)으로서 좋은 자료(資料)를 남긴 고려(高麗) 전기(前期)의 중형종(中型鍾)이다.
종정(鍾頂)의 천판(天板)위에 서 있는 용뉴(龍鈕) 부분(部分)은 일반형식(一般形式)으로서
용통(甬筒)은 6段으로 구분(區分)되어 있다. 각(各) 부분(部分)마다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
을 양각(陽刻)하였으며 용두(龍頭)는 역시 신라종(新羅鍾)과 달리 고개를 들어 용체(龍體)를
구부러뜨려 종(鍾)을 매달게 되어있는 용체(龍體)로 되어 있다.
상대(上帶)와 천판(天板)이 접(接)하는 계선상(界線上)에는 8個 부분(部分)으로 입화형(立
花形) 뇌두문(蕾頭紋)으로 처리하였고, 또한 상대(上帶), 하대(下帶)와 유곽대(乳廓帶)에는
세잔한 연주문대(連珠紋帶)를 돌리고 그 내부(內部)에 모란당초문(牡丹唐草紋)을 주문대(主
紋帶)로하여 조식(彫飾)하였다. 유곽(乳廓) 내(內)의 유좌(乳座)는 유두(乳頭)가 자방형(子房
形)으로 도드라지게 9유(乳)를 처리하고 복엽(複葉)의 연화좌(蓮華座)로 유좌(乳座)를 조식
(彫飾)하였다. 비천(飛天)은 천흥사종(天興寺鍾)과는 달리 종신(鍾身) 4구(軀)를 배치하고
있다. 모두 운문상(雲紋上)에 복연(覆蓮)의 연화좌(蓮華座)에 천의(天衣)를 날리며 두신광
(頭身光)을 갖추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상태(狀態)로 되어 있는 것이 주목(注目)되는 점
(點)이다. 당좌(撞座) 역시 종신(鍾身)에 보살(菩薩)과 교호(交互)로 4개처(個處)에 배치하고
중앙(中央)에 자방(子房)을 갖추고 그 주변에 복엽(複葉)의 16연판(蓮瓣)을 돌리고 그 외곽
(外廓)에 세잔한 연주문(連珠紋)으로 처리하고 있다.
특히 종복(鍾腹)에는 제작연대(製作年代)와 중량(重量)을 알 수 있는 명문(銘文)이 하대
(下帶)에 접(接)하여 방형(方形)의 구획(區劃)을 정한 內에 각명(刻銘)되어 있다.
特爲(특위)
聖壽天長之願鑄(성수천장지원주)
成今鍾一口重一百(성금종일구중일백)
五十斤(오십근)
淸寧四年戊戌五月日記(청녕사년무술오월일기)
본(本) 명문(銘文)에서 보이는 청녕사년무술(淸寧四年戊戌)은 고려(高麗) 문종(文宗) 12年
(1058)에 해당되며 청녕(淸寧)은 요(遼)의 연호(年號)이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