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서울 강남구 봉은사 소장 홍무25년장흥사명동종 洪武二十五年長興寺銘銅鍾

korman 2010. 3. 5. 23:03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6호
홍무25년장흥사명동종 洪武二十五年長興寺銘銅鍾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6호

명 칭 홍무25년장흥사명 동종 (洪武25年長興寺銘 銅鐘)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軀

지정(등록)일 1991.05.28

소 재 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73 봉은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상 세 문 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문화체육과 02-3423-5936


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원래 장흥사 종이었는데, 언제 이곳 봉은사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종을 매다는 용뉴는 떨어져 나갔지만 몸체는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종 아래에 연화대를 두었고, 구름을 탄 보살과 종을 치는 당좌가 각각 1개씩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이 종에는 1392년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어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종이다.


출처 : 문화재청 우리지역문화재 검색창 2017년 6월 22일 현재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2&VdkVgwKey=21,00760000,11&query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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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무25년 장흥사 명동종



• 코드: cp0501b03101 


• 명칭 : 홍무25년장흥사명동종 


• 지정 : 시도유형문화재 76호(서울) 


• 조성연대 : 조선 태조 원년(1392) 


• 제원 : 전체높이 60.2㎝, 종신 56.5㎝, 입지름 49.8㎝ 


• 소재지 : 서울 봉은사 


• 관리자 : 서울 봉은사 


• 설명 


고려시대 마지막 연도이자 조선 태조 즉위 원년인 홍무 25년(1392) 천녕(川寧) 상두산(象頭山) 장흥사(長興寺)에서 주조하였음이 명문에 밝혀진 종이지만 언제 봉은사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용뉴는 떨어져 나갔지만 몸체는 완전하게 보존된 채 대웅전 한 편에 보관되어 있다. 재질은 청동이다. 


거칠게 주물 된 천판은 가운데 부분을 중심으로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몸체와 이어지고 있다. 여의두문의 입상화문대를 돌려 거칠게 주물 된 천판을 가리는 효과를 주고 있으며, 상대에는 위∙아래에 구슬모양의 연주문대를 돌리고 그 내부에 화려한 연화당초문을 시문하였는데, 마멸이 심한 편이다. 


상대에 바로 연접해서 사다리꼴의 연곽을 두었고, 연곽대에는 연화당초문으로 장엄하였다. 연곽대 내에는 잎이 뾰족한 아홉 개의 화좌(花座)를 두었으며, 화좌 내에는 연꽃봉오리 모양의 연뢰를 얕게 돌출시켰다. 특히 연곽대 아래쪽 좌우로 술을 달아 늘어뜨리는 독특한 장식을 하여 눈에 띈다. 


꼬리가 길게 날리는 구름 위에서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서있는 형상을 한 보살상이 연꽃으로 장식한 의자 위에 서서 구름을 타고 가는 모습이 양각되어 있다. 그 전까지는 모두 정좌하거나 혹은 꿇어앉은 좌상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단독의 보살상이 입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 종에서 처음 보이는 예이다. 일본에 있는 나미노우에노미야 종 등에서 춤추고 있는 보살상이 입상이기는 하나 이 보살들이 아직까지는 공양을 바치는 입장인 것에 비하여 봉은사의 보살상은 부속적인 존재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서 스스로 공양을 받는 입상인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점은 조선시대에 독립적인 요소로 나타나 그 전의 여래를 대신하는 보살상들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보살은 두툼한 옷에 영락을 걸치고 있으며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후덕한 표정이다. 모두 네 곳에 있다. 당좌도 보살상처럼 네 곳에 있는데 조그맣고 예리한 연화문을 외곽에 돌리고 내부의 자방도 일곱 개의 연자로 단순하게 표현하여 귀여우면서도 단정한 인상을 주고 있다. 하대에도 위 아래로 연주문대를 돌리고 그 내부에 연화당초로 시문하였다. 

<자료참조 : 문화재청, 직지성보박물관, 사찰 홈페이지>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2017년 12월 7일 현재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7&cp_code=cp0501&index_id=cp05010042&content_id=cp050100420001&search_left_menu=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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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6호
지정연월일
:
1991년 5월 28일
시 대
:
조선시대, 태조 1년(1392)
  규 모
:
종 높이 0.6m, 입지름 0.49m
  재 료
:
청동
  소 유 자
:
봉은사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73번지 봉은사

홍무25년장흥사명동종은 조선시대 중기에 만들어진 범종으로 본래 장흥사(長興寺)에 봉안되었는데, 언제 이곳 봉은사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장흥사는 경기도 여주군에 있던 절이다.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의 [봉은사불망기(奉恩寺不忘記)]를 보면 1705년 장흥사가 철거되면서 그곳에 있던 불상·재와(材瓦)·기물 등을 봉은사로 가져왔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아마도 이 동종 역시 이 때 다른 기물과 함께 봉은사로 옮겨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동종은 대체로 고려 범종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용뉴(龍鈕) 부분은 완전히 떨어져나가 그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용뉴가 장식된 천판(天板)과 종신(鐘身)이 맞닿는 경계에 입화식(立華飾)이 장식되어 빙 둘러서 배치된 점은 확연히 고려시대의 양식을 따른 것이다. 입화식 바로 아래에는 상대(上帶)가 붙어 있는데, 그 안을 당초문(唐草紋) 등으로 가득히 장식하였다.
상대 밑으로는 전부 4개인 유곽(遊廓)이 붙어 있다. 각 유곽은 사각형이 아닌 마름모꼴을 하고 있으며, 사방이 문양대(紋樣帶)로 구획되어 있으나 상단만큼은 상대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러한 수법 역시 고려시대 범종의 특징이다. 문양대 안에는 역시 당초문 등으로 장식하였다. 또한 문양대 하단 좌우에는 세로 장식이 기다랗게 연장되어 있음은 이 종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양식으로, 이후 조선시대 범종에서 종종 나타나고 있다.
종신에는 비천상(飛天像) 대신 두광을 갖추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채 연화좌 위에 서서 구름을 타고 가는 모습을 한 보살상 4위를 양각하였으며, 그 사이에 각 1좌씩의 당좌(撞座)를 역시 양각으로 배치하였다. 종신 맨 아래에 있는 하대(下帶)에는 상대와 마찬가지로 당초문 등을 가득히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종신에는 '洪武貳拾伍年九月拾七日川寧土 象頭山長興寺鐘造成 金三百斤以入鐘 施主 戶長 信善 施主大原 化主信雲 同願覺瓊 同願金光才 同願信哲 同願信瓊 大匠 朴□□'라는 수십 자의 명문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따라서 제작 년대와 봉안처를 확실히 알 수 있으며, 그밖에 동종 조성에 관여하였던 승려ㆍ시주자, 그리고 장인의 이름이 나온다.
명문 가운데 '호장(戶長)'이라는 직책이 보여 눈길을 끈다. 호장이란 고려시대에 나타나는 지방 관직으로서 향리직의 우두머리에 해당한다. 해당 고을의 모든 향리들이 수행하던 말단 실무행정을 총괄하던 자리였다. 따라서 이 동종도 여주 지방의 호족을 중심으로 한 인사들과 승려들이 합심하여 발원 조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동종은 전체적으로 알맞은 크기에 각 부의 균형이 잘 잡혀 있어 맵시 있다는 느낌을 준다. 시대적으로 조선시대에 속하기는 하지만 고려와 조선이 교체되는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고려시대의 양식이 보다 뚜렷한 작품이기도 하다.

 

 

 

 

 

 

출처 : 서울시 서울문화재 사이트

원문 : http://blog.daum.net/_blog/ArticleRegisterEnter2.do?blogid=0CNi0&cateID=500229#ajax_history_home (2010년 3월 5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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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자료 : 2008년 4월 10일 현재

 

대웅전 한쪽에 보면, 조선시대 범종 2구가 나란히 놓여 있다. 이 중 윗부분이 조금 결실되고 크기가 조금 작은 것이 장흥사 명동종. 1392년(태조 1)에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60cm, 입지름 49.5cm의 아담한 크기에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혀 있어 맵시가 난다. 조선시대 범종이라고는 하지만, 고려와 조선이 교체되던 해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고려시대 말기의 작풍(作風)이 뚜렷이 나타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동종은 봉은사 동종(銅鐘), 또는 봉은사 승방(僧房)에 걸려 있다 해서 일명 ‘봉은사 승방종’이라 불리기도 한다. 혹은 명문(銘文)에 따라 봉은사 ‘홍무이오년명동종(洪武二五年銘銅鐘)’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동종을 주성(鑄成)할 당시의 사찰이 장흥사(長興寺)였으므로 일반적으로 ‘장흥사 명동종’이라 불리고 있다.

명문에 의하면, 처음 봉안되었던 곳은 경기도 여주의 상두산에 있던 장흥사로, 그 고장 호장(戶長;고려·조선시대 향리직의 우두머리로서 해당 고을의 모든 향리들이 수행하던 말단 실무 행정을 총괄하던 자리)을 중심으로 한 몇몇 유지들이 발원하여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를 보면, 장흥사가 철거되면서 그곳에 있던 불상, 재와(材瓦), 기물 등을 봉은사로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어, 이 범종이 장흥사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때는 1705년으로 추측되나 확실치는 않다.

본래 우리나라 범종은 다른 나라의 것과 구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맨 윗부분에는 용 한두 마리가 서리어 있으면서 그 용신이 종을 거는 꼭지, 곧 용뉴로 사용되며 그 옆에는 음통(音筒) 또는 음관이라고 불리는 막대 모양의 것이 서있게 마련이다. 그 바로 아래는 연꽃·당초 무늬 등으로 장식된 띠가 둘려지면서 정상부와 몸통 부분과의 경계를 짓는다. 몸통 상단에는 유곽(乳廓)이라는 방형 또는 사다리꼴 모양의 네모진 테두리가 있고, 그 안에 돌기 모양의 유두(乳頭)가 있다. 또 몸통 중간 부분에는 비천(飛天) 혹은 나한(羅漢) 등의 인물공양상과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가 어김없이 배치된다. 맨 아래에는 다시 꽃무늬로 장식된 폭이 넓은 띠가 둘려져 종신(鐘身)을 마감하게 된다. 이것이 일반적인 우리나라 종의 형태이다. 특히 유곽의 유두는 중국과 일본의 것이 종마다 그 개수가 일정하지 않고 각각인데 비해 우리나라 것은 신라시대 가장 오래된 종으로부터 현재의 종에 이르기까지 늘 9개로 그 수가 언제나 일정한 것이 큰 특징이다.

이 봉은사 동종도 대체로 한국종의 형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아쉽게도 정상부와 용뉴와 음통(音筒) 부분이 떨어져나가, 음통이 있던 자리에는 둥근 구멍만이 남아 있으나 나머지 부분은 완전한 편이다. 몸통에는 비천 대신 두광을 갖추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한 형태의 보살입상이 연화좌 위에 서서 구름을 타고 가는 모습으로 양각되어 있다. 몸통 가운데는 수십 자의 명문이 역시 돋을새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천판(天板)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고, 어깨 부분에는 입상(立狀)의 보상화문(寶相華紋)이 장식되어 있으나 일부가 파손되었다. 상대(上帶)는 상하 0.8cm 정도의 연주문대를 두르고, 그 사이에 연화문을 장식하였다. 네 곳에 설치된 사다리꼴의 유곽도 외곽은 연주문대를 돌리고, 그 안을 연화문으로 장식하였다. 유곽 안에는 9개의 연화령 유좌(乳座)에 돌출된 유두 9개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 유곽 부분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유곽의 두 귀퉁이 즉, 좌우연(左右緣) 하단에 술장식이 드리워져 있는 것으로, 이것은 다른 범종에서 보지 못했던 특수한 의장(意匠)이라 하겠다.

종신의 하복부에는 보살과 당좌(撞座)를 교호(交互)로 4좌씩 배치하였는데 보살은 입상으로 운상계(雲上界)에서 하계(下界)를 굽어보고 있으며 원형의 두광(頭光)과 보관(寶冠)·천의(天衣) 그리고 유연한 자세 등이 고려시대 동종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당좌는 가운데 7과(顆)의 연자(蓮子)가 있는 자방(子房)이 있고 원권(圓圈) 밖으로는 단엽 17판의 연화문이 돌려져 장식되었다. 하대는 구연부(口緣部)를 따라 돌려져 있는데 상하연(上下緣)에 연주문이 장식되어 있고 그 내면에는 보상화문이 가득히 조각되어 있다. 명문(銘文)은 동체하부(胴體下部)에 다음과 같이 11행으로 음각되어 있다.

◈ 洪武貳拾伍年九月拾七日川寧土 象頭山長興寺鐘造成金三百斤以入鐘 施主戶長信善 施主大原 化主信雲 同願角瓊 願金光木 同願信哲 同願)信瓊 大匠朴 ◈

위 명문에서 홍무이십오년(洪武貳拾伍年)은 고려 공양왕 4년(1392)에 해당되므로 고려왕조 최말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강남구 2008년 4월 10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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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자료 : 2007년 3월 26일 현재

 

洪武 25年(1392), 청동, 전체높이 60.2cm, 종높이 56.5cm, 입지름 49.8cm,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고려시대 마지막 연도이자 조선 태조 즉위 원년인 홍무 25년(1392) 장흥사長興寺에서 주조하였음이 명문에 밝혀진 종이다. 꼬리가 길게 날리는 구름 위에서 합장한 채 연화좌를 밟고 서 있는 보살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전까지는 모두 정좌하거나 혹은 꿇어앉은 좌상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단독의 보살상이 입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 종에서 처음 보이는 예이다. 일본에 있는 나미노우에노미야 종 등에서 춤추고 있는 보살상이 입상이기는 하나 이 보살들이 아직까지는 공양을 바치는 입장인 것에 비하여 봉은사의 보살은 부속적인 존재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서 스스로 공양을 받는 입상인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점은 조선시대에 독립적인 요소로 나타나 그 전의 여래를 대신하는 보살상들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보살은 두툼한 옷에 영락을 걸치고 있으며 부자집 맏며느리같
은 후덕한 표정인데 1구이다. 당좌도 보살상처럼 1좌밖에 없는데 조그맣고 단순한 모양의 꽃잎을 외곽에 돌리고 내부의 자방도 단순하게 표현하여 귀여우면서도 단정한 인상을 주고 있다.
연곽에는 좌우로 술을 달아 늘어뜨리는 독특한 장식을 하여 눈에 띈다. 연곽 안의 연꽃봉오리는 당좌와 같은 모양의 꽃잎으로 받침을 장식하였다.
  2007년 3월 26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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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자료 : 2007년 7월 20일 현재

 

홍무25년장흥사명동종 洪武二十五年長興寺銘銅鍾
▒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6호
▒ 지정연월일 : 1991년 5월 28일
▒ 시 대 : 조선시대, 태조 1년(1392)
▒ 규 모: 종 높이 0.6m, 입지름 0.49m
▒ 재 료 : 청동
▒ 소 유 자 : 봉은사
▒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73번지 봉은사

홍무25년장흥사명동종은 조선시대 중기에 만들어진 범종으로 본래 장흥사(長興寺)에 봉안되었는데, 언제 이곳 봉은사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장흥사는 경기도 여주군에 있던 절이다.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의 [봉은사불망기(奉恩寺不忘記)]를 보면 1705년 장흥사가 철거되면서 그곳에 있던 불상·재와(材瓦)·기물 등을 봉은사로 가져왔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아마도 이 동종 역시 이 때 다른 기물과 함께 봉은사로 옮겨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동종은 대체로 고려 범종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용뉴(龍?) 부분은 완전히 떨어져나가 그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용뉴가 장식된 천판(天板)과 종신(鐘身)이 맞닿는 경계에 입화식(立華飾)이 장식되어 빙 둘러서 배치된 점은 확연히 고려시대의 양식을 따른 것이다. 입화식 바로 아래에는 상대(上帶)가 붙어 있는데, 그 안을 당초문(唐草紋) 등으로 가득히 장식하였다.

상대 밑으로는 전부 4개인 유곽(遊廓)이 붙어 있다. 각 유곽은 사각형이 아닌 마름모꼴을 하고 있으며, 사방이 문양대(紋樣帶)로 구획되어 있으나 상단만큼은 상대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러한 수법 역시 고려시대 범종의 특징이다. 문양대 안에는 역시 당초문 등으로 장식하였다. 또한 문양대 하단 좌우에는 세로 장식이 기다랗게 연장되어 있음은 이 종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양식으로, 이후 조선시대 범종에서 종종 나타나고 있다.
종신에는 비천상(飛天像) 대신 두광을 갖추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채 연화좌 위에 서서 구름을 타고 가는 모습을 한 보살상 4위를 양각하였으며, 그 사이에 각 1좌씩의 당좌(撞座)를 역시 양각으로 배치하였다. 종신 맨 아래에 있는 하대(下帶)에는 상대와 마찬가지로 당초문 등을 가득히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종신에는 '洪武貳拾伍年九月拾七日川寧土 象頭山長興寺鐘造成 金三百斤以入鐘 施主 戶長 信善 施主大原 化主信雲 同願覺瓊 同願金光才 同願信哲 同願信瓊 大匠 朴□□'라는 수십 자의 명문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따라서 제작 년대와 봉안처를 확실히 알 수 있으며, 그밖에 동종 조성에 관여하였던 승려ㆍ시주자, 그리고 장인의 이름이 나온다.
명문 가운데 '호장(戶長)'이라는 직책이 보여 눈길을 끈다. 호장이란 고려시대에 나타나는 지방 관직으로서 향리직의 우두머리에 해당한다. 해당 고을의 모든 향리들이 수행하던 말단 실무행정을 총괄하던 자리였다. 따라서 이 동종도 여주 지방의 호족을 중심으로 한 인사들과 승려들이 합심하여 발원 조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동종은 전체적으로 알맞은 크기에 각 부의 균형이 잘 잡혀 있어 맵시 있다는 느낌을 준다. 시대적으로 조선시대에 속하기는 하지만 고려와 조선이 교체되는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고려시대의 양식이 보다 뚜렷한 작품이기도 하다.

자료:문화재청 
오성스님 편집

2007년 3월 26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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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上帶) 


봉은사(奉恩寺) 홍무이십오년명(洪武二十五年銘) 범종(梵鍾)(2-54,3-42)


소재지(所在地) : 서울특별시(特別市) 강남구(江南區) 삼성동(三成洞)

연 대(年 代) : 1395年(태조(太祖) 4年, 홍무(洪武) 28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60cm, 용통고(甬筒高); cm, 상대폭(上帶幅); 4cm, 유곽장(乳廓長); 16.5×

14.5cm, 구경(口徑); 50cm, 종신고(鍾身高); 57cm, 용통경(甬筒徑); cm, 하대폭(下帶 

幅); 4cm, 종구후(鍾口厚); 4cm, 용뉴고(龍鈕高); cm, 천판경(天板徑); 30cm, 유곽폭 

(遊廓幅); 1.2cm, 당좌경(撞座徑); 7.5cm 


종(鍾)의 형태는 종정(鍾頂)의 천판(天板)이 수평으로 되어 있으며 현재 용뉴는 결실되었

고 용통 부분의 원공(圓孔)만이 종정상(鍾頂上)에 남아 있다. 종정부(鍾頂部)와 상대(上帶)가 

접하는 계선상(界線上)에 여의두문(如意頭紋)으로 처리한 입상문대(立狀文帶)가 돌려져 있으

나 이 입상문대도 절반 정도가 결실 또는 마멸되어 있는 실정이다.

상대(上帶)는 상(上)․하(下)연주문대(連珠紋帶)로 처리하고 그 안에 연화문대(蓮華紋帶)로 

조식하였고 상대(上帶)와 접하여 있는 4개소(個所)에는 사다리꼴의 유곽(乳廓)을 배치하였는

데, 이 유곽(乳廓) 문양대(紋樣帶)도 여의두문(如意頭紋)으로 처리하고 그 내부에 연화문(蓮

華紋)으로 유곽(乳廓)의 문양(紋樣)을 장식(裝飾)하였다. 특히 유곽(乳廓)의 하부(下部) 양끝

에는 주렴(珠簾)과 같은 것이 1개씩 늘어져 있는 것이 다른 종(鍾)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유곽(乳廓) 내(內)의 9유(乳)는 팔판연화좌(八瓣蓮華座)에 돌기된 유두(乳頭)를 갖고 있다. 

종신복(鍾身腹)에는 두광(頭光)을 갖추고 합장(合掌)한 보살입상(菩薩立像)이 연화좌(蓮華座)

위에 구름을 타고 가는 형상으로 양각(陽刻) 조식되어 있으며, 당좌(撞座)는 16엽(葉)의 연

판으로 처리하고 중심의 자방(子房) 내부(內部)에 7과(顆)를 갖춘 당좌(撞座)로 구성(構成)되

어 있다.

하대(下帶) 역시 상대(上帶)와 동일하게 상(上)․하(下)연주문대(連珠紋帶)를 돌리고 그 내

부에 연화문대(蓮華紋帶)로 장식하였다.

 이 범종은 특히 주목되는 바가 있는데 종(鍾)에 명기(銘記)된 명문(銘文)을 보면,

 洪武貳二拾五年九月拾七日川寧土(홍무이이습오년구월습칠일천령토)

 象頭山 長興寺 鍾造成金三百 斤比入鍾(상두산 장흥사 종조성금삼백 근비입종)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보이는 홍무이이습오년(洪武貳二拾五年)은 고려 공양왕(恭讓王) 4年

(1392)이고 조선왕조(朝鮮王朝) 태조(太祖) 원년(元年)에 해당되므로, 공양왕(恭讓王)은 홍무

(洪武) 25年 7月에 몰(沒)하고 조선왕조(朝鮮王朝)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동년(同年) 

7월부터 태조(太祖) 원년(元年)이 된다. 그러므로 이 종(鍾)의 주조(鑄造)는 명문에 의하면, 

9월 17일에 주조되어 조선왕조(朝鮮王朝)가 시작되었으나 범종의 양식상(樣式上)으로 보아 

조선(朝鮮) 전기(前期) 범종(梵鍾)으로보다는 고려말(高麗末)의 후기(後期) 범종(梵鍾)의 양

식(樣式)으로 포함시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