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전남 담양군 용흥사동종(潭陽 龍興寺 銅鍾) (보물 제1555호)

korman 2009. 12. 18. 21:59

[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37> 용흥사종, 대원사 부도암종, 만연사종

 

17세기 사장계를 이끈 선두주자 김용암

 

17세기 중엽부터 후반까지 승장 사인비구(思印比丘)와 쌍벽을 이루며 사장계(私匠系)를 주도하였던 김애립(金愛立)은 그 계열을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김용암(金龍岩)에서 찾을 수 있다. 김용암은 담양의 용흥사종(龍興寺鐘, 1644), 선암사 대각암 소장 대원사종(大原寺鐘, 1657), 화순 만연사종(萬淵寺鐘, 1660)을 만든 장인이다. 그의 범종은 쌍룡의 용뉴 밑으로 불룩이 솟아오른 천판의 가장자리에 둘러진 연판문대(蓮瓣文帶)와 종신에 부조된 용무늬처럼 외형 면에서는 중국 종의 영향을 많이 반영하였다. 그러나 방형의 연곽과 그 사이마다 보살입상을 배치하고 종구(鐘口)쪽에 하대(下帶)를 장식하는 등 우리나라 전통종과의 혼합을 보여준다. 천판 위에는 쌍룡이 서로 반대로 머리를 돌리고 정상부에는 몸체 중앙부에서 솟은 여의주를 서로 받친 모습으로서 이러한 형태 역시 중국 명나라 종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약간 변형된 모습이다. 연곽 사이마다 배치된 4구의 보상입상은 연화좌 위에 합장한 모습이며 하대는 종구에서 약간 올라온 곳에 2줄의 융기선을 둘러 매우 넓게 장식하였다. 이후 김용암의 범종에서는 하대와 상대 문양을 조금씩 바꿔가며 표현하는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김용암은 장인이면서 통정대부(通政大夫)라는 명예 가호를 가장 먼저 쓴 사장이라는 점에서 그의 위치를 짐작케 한다.

 

◀ 담양 용흥사종(龍興寺鐘)

  통정대부라는 명예 가호를 가장 먼저 쓴 김용암이 만든 범종들. 1644년       조성된 보물

   보물 1555호 용흥사종. 높이 100.5cm.

 

현재 전라남도 담양군 용흥사(龍興寺) 대웅전에 걸려 있다. 조선후기의 범종 가운데 용뉴의 위치의 변화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 쌍룡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처럼 4마리 용으로 표현된 범종은 현재까지 조사된 바로는 이 종이 유일하다. 머리를 낮게 숙인 4마리의 용이 서로 머리를 돌린 모습으로서 이 중에서 두 마리의 용만이 몸체가 표현되어 종 고리를 만들고 정상에 여의주(如意珠)를 받쳤다. 김용암 범종에서 보이는 불룩하게 솟아오른 천판과 용뉴를 중심으로 반원형의 연판문을 둥글게 돌아가며 장식하는 의장은 김용암 범종의 두드러진 특징으로서 나중에 김애립(金愛立)이 만든 범종에까지 영향을 준다.

 

2줄로 둘러진 천판 외곽으로 육자광명진언(六字光明眞言)을 배치한 원권의 범자문(梵字文)으로 장식하였고 그 아래로 당초무늬로 구성된 상대를 둘렀다. 이 구름 형태의 당초무늬는 종신에 표현된 연곽대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며 연곽 안에 돌출된 연뢰는 십자형에 가까운 도식화된 연화좌로 장식되었다. 연곽 사이마다 배치된 4구의 보상입상은 연화좌를 밟고 서서 두 손을 합장한 유려한 모습이다. 이 4구의 보살상 중 앞, 뒤쪽에 배치된 보살상 아래쪽에 왕실을 축원하는 전패형(殿牌形) 장식이 첨가되었다. 이 전패는 집 모양의 테두리에 빗금무늬가 있지만 전패 받침과 상부 장식 등은 표현되지 않아 전패의 모티브만을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대는 종구(鐘口)에서 약간 올라와 2줄의 융기선을 두르고 매우 넓게 장식되었다. 이 안 장식된 용무늬는 고견사종(古見寺鐘, 1630), 보광사종(普光寺鐘, 1634)과 같이 승려장인에 의해 제작된 범종에 장식되는 파도 속에 표현되는 용문과 달리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움켜쥔 운룡문(雲龍文)으로 바뀐 것은 직업 장인이란 점에서 새로운 중국 종 요소를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용암의 범종은 다른 곳은 거의 동일한 모습을 유지하지만 하대와 상대 문양을 조금씩 바꿔가며 표현하는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종신 중앙부에는 방형의 명문곽을 두어 ‘순치원년사월일창평현용귀산용흥사신주종기(順治元年四月日昌平縣龍龜山龍興寺新鑄鍾記)’로 시작하는 명문이 양각되어 있어 이종이 순치 원년인 1644년 용흥사의 범종으로 주성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작자로서 ‘주종 통정대부김용암(鑄鐘 通政大夫金龍岩)’ 이라고 기록되었는데, 현재까지 알려진 김용암의 범종 가운데 가장 이른 작품에 해당된다. 사장 가운데 가장 일찍 통정대부라는 명예관계를 쓴 장인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불교신문3419호/2018년8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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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8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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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일 2009년 12월 18일 현재

 

담양 용흥사 동종(龍興寺 銅鍾)

(보물 제1555호)

 

용흥사 순치원년명 동종(龍興寺 順治元年銘 銅鍾 )

 

 

사진출처 :

출처 : 담양군 문화관광과 

http://www.damyang.go.kr/tourism/main/main.jsp

2009년 12월 18일 현재

동 사진은 2014년 1월 10일 현재 동 사이트에 표시되어 있지 않음.

 

 

2014년 1월 10일 현재

 

주소 : (517-832) 전남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574 지정별: 보물 제1555호규모 : 높이 78cm, 지름 66cm(1구)시대 : 인조22년(1644)지정일 : 1982년 10월 15일

소개

이 범종은 정형인 상대와 하대가 있고 중앙 윗부분에 4개의 유곽(乳廓)과 유곽 내에 각각 9개의 유두(乳頭)를 표출하였다. 세부를 보면 하대로 굵은 두 줄의 가로줄을 두고 그 안에 두 마리의 용을 양각하여 반결형을 하였으며 3개의 발톱과 입에서 불을 내뿜는 불꽃무늬가 각출되었다. 몸체 중앙부에는 凹형의 4각선곽을 조식하고 그 안에 ’순치원년 사월일 창평현 용구산용구사신주종기(順治元年 四月日 昌平縣 龍龜山 龍龜寺 新鑄鐘記)……’라는 명문(銘文)이 표기되었는데 행서종행으로 총 38행 255자가 새겨졌다.

이 명문에 의하면 종의 조성연대는 인조22년(1644)임을 알 수 있다. 종신중앙 상단으로는 네 군데 유곽에 9개의 유두와 인동당초문으로 그 외곽을 장식하였다. 유곽사이로는 전후좌우로 두광(頭光)을 선각한 보살상을 정교하게 새겨 몸체의 장식성을 나타냈다. 상대로는 두 줄의 가로줄에 범자(梵字)를 양각했으며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이라 명문하였다. 상부의 용머리는 대개의 경우 한 마리의 용이 허리를 구부려 그 중심부에 고리를 걸도록 하고 그 뒤로 음관(용통)을 세우고 다음 용꼬리를 조각한데 반해 이 범종에서는 이러한 통례와는 달리 4마리의 용이 서로 얽혀 고리에 걸도록 되었으며 음관은 생략하였다. 조선시대 범종이 대개 임진왜란 이후 것인데 이 종은 임란 이후 중에서도 비교적 초기에 속하며 태안사 천순명동종과 함께 매우 귀중한 예라 할 것이다.

용흥사는 담양읍에서 북으로 8km쯤 가다 왼쪽으로 다시 4km쯤 산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용구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속설에 의하면 조선 영조의 어머니인 창평인 최복순 여인이 이 절에서 기도를 하여 영조를 낳고 이 절 이름을 용흥사라 하고 산이름도 용구산에서 몽선산이라 고쳤다고 한다. 용흥사는 현 건물지의 규모로 보아 옛날에는 대규모의 사찰이었던 것 같으나 임진왜란과 한말 의병전쟁, 한국전쟁 당시 모두 소실되었고 근래 대웅전과 요사채를 복원하였다.

전체높이 102cm, 걸고리를 제외한 종신높이 78cm, 상대지름 36cm, 중대지름 58cm, 하대지름 66cm.

출처 : 담양문화관광사이트 2014년 1월 10일 현재

 http://tour.damyang.go.kr/board/view.damyang?boardId=BBS_0000086&menuCd=DOM_000002703001002000&startPage=1&categoryCod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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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일 2010년 5월 14일 현재

 

담양 용흥사동종(潭陽 龍興寺 銅鍾)

 

 

 

 

종 목

보물  제1555호

명 칭

담양 용흥사동종(潭陽 龍興寺 銅鍾)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2008.03.12

소 재 지

전남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574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용흥사

관리자(관리단체)

용흥사
 
높이가 102㎝인 이 종은 조선시대 주종장(鑄鍾匠) 중 김애립(金愛立), 김성원(金成元) 등과 함께 사장계(私匠系)를 대표하는 김용암(金龍岩)이 주가 되어 1644년에 주성한 종으로, 규모도 비교적 클 뿐만 아니라 비례감과 조형성이 뛰어나다. 또한 종 고리로 쌍룡(雙龍) 대신 활력 넘치는 사룡(四龍)을 채용하여 특이함을 보이고, 종신에 시문된 각종 문양의 표현에서도 세련미가 넘쳐 난다

따라서 이 종은 다른 조선 후기 범종에 비해 뛰어난 조형미와 문양 표현 등의 주조기술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출처 : 문화재청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KS_01_02_01&VdkVgwKey=12,15550000,36   
2010년 05월 14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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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일 2009년 12월 18일현재 

 

용흥사범종[ 龍興寺梵鐘 ]

 

 

제목 : 용흥사범종 원본보기

설명 :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용흥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범종. 종신높이 78㎝,

         지름 66㎝.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0호. 종신에 있는 기록으로써 종의

         제작연대가 1644년(인조 22)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Copyright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다른 자료에 따르면 1982년 보물 1555호로 승격 지정되었음.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용흥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범종. 걸고리를 제외한 종신높이 78㎝, 지름 66㎝.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0호. 전라남도에서는 곡성 태안사의 천순명동종과 함께 조선시대의 제작으로서는 연대가 앞선 것이다.

동종의 정형인 상대와 하대가 있고, 중앙 윗부분에 4개의 유곽(乳廓)과 유곽 내에 각각 9개의 유두(乳頭)를 나타내었다. 또, 유곽 사이에는 천의를 걸친 보살상이 정교하게 조각되었다. 하대는 굵은 두 줄의 양각선을 하고 그 안에 두 마리의 용이 몸을 뒤트는 모습을 그렸는데, 3개의 발톱과 입에서 내뿜는 화염이 인상적이다.

하대로 내려와 종신에 이 종의 제작경위를 밝히고 있는데, ‘順治元年四月日昌平縣 龍龜山龍興寺新鑄鐘記······(순치원년4월일창평현 용구산용흥사신주종기······)’라 하여 총 38행 255자를 각하였다. 위의 기록으로써 종의 제작연대가 1644년(인조 22)임을 알 수 있다.

상대 역시 두 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인동문을 표출하고, 그 위에 범자를 새긴 다음 ‘六字大明王眞言(육자대명왕진언)’이라 새겼다. 걸고리는 네 마리의 용으로 대신하고 음관을 생략하였다.

≪참고문헌≫ 朝鮮後期梵鐘의 硏究(安貴淑, 梵鐘 6, 1983)

 

출처 : 네이트 백과 http://100.nate.com/dicsearch/pimage.html?s=&i=266676001&en=266676&p_i=&a_i=&e=1 2009년 12월 18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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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일 2008년 8월 1일 현재

 

 

용흥사에 가면 1644년(인조 22)에 조성된 조선시대의 아담한 범종(梵鐘)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대부분의 범종은 규모가 커서 범종각 안에 봉안되기 때문에 자세기 살필 수가 없는데, 이 범종은 미타전의 한곳에 모셔져 있어 범종에 새겨진 여러 문양과 명문(銘文)을 가까이 접할 수 있어 좋다.범종의 몸체는 전체높이 102cm, 걸고리를 제외한 종신 높이 78cm, 상대 지름 36cm, 중대 지름 58cm, 하대 지름 66cm이다. 종신에 ‘순치원년사월일창평현용귀사 신주종기(順治元年 四月日 昌平縣龍龜山龍龜寺新鑄鐘記)…’라는 명문이 있어 순치원년에 해당하는 1644년(인조 22)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4마리 용으로 만들어진 용뉴(龍紐) 밑의 종신은 꼭대기가 둥글게 부풀고 외형선은 수직으로 되어 둔중한 모양이다. 여의보주를 들어 올리고 있는 원추형 용뉴가 있고 그 아래 꼭대기에는 복련이 만개하였다. 이 점은 중국 종의 특징을 따랐다.

종신을 2분하여 보면, 위쪽에는 원문(圓紋) 안의 범자, 구름무늬의 상대(上帶), 긴 사다리꼴의 유곽과 그 사이에 4구의 합장한 보살입상이 있다.

아래쪽에는 용문의 하대가 구연부에서 분리된 채 상·하 2개의 띠 장식에 둘러싸여 있다. 원문범자, 띠장식, 종복(鐘腹) 가까이에 이르는 유곽, 하대의 분리 등을 비롯한 표면의 묘사 수법은 다소 도식화된 17세기 종의 특색을 보인다.

중앙 윗부분에 있는 4개의 유곽(乳廓)과 유곽 내에 도드라지게 새긴 9개의 유두(乳頭), 정교하게 새겨진 보살상, 몸체 중앙부에 새겨진 명문(銘文), 그밖에 인동당초문ㆍ범자(梵字) 등의 각종 문양을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특히 하대에 용을 장식하고 있는 점은 1491년 만들어진 해인사(海印寺) 대적광전 종이나 1643년 주조된 보광사(普光寺) 종의 계열임을 알 수 있으나 그것들 보다 도식화되었다. 범종은 상대와 하대가 있고 중앙 윗부분에 4개의 유곽과 유곽에 각각 9개의 유두를 표출하였다.

세부를 보면 하대로 굵은 2줄의 횡선을 두고 그 안으로 2마리의 용을 양각하여 발격형을 하였다. 발톱과 용구에서 불을 내뿜는 화염무늬가 있다. 종신 중앙부에는 요형의 사각선곽이 조식되었고 행서종행으로 총 38행 255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종신 중앙 상단에는 4군데 유곽에 9개의 유두와 인동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유곽 사이에 전후좌우로 두광을 선각한 보살상을 정교하게 새겼다. 상대에 2줄의 횡선에 범자를 양각하였으며 ‘육자대면왕진언’이라 명문하였다. 대부분의 범종이 용이 허리를 구부려 중심부에 고리를 걸도록 용뉴를 두는 반면, 4마리 용이 서로 얽혀 고리를 걸도록 하였으며 음관은 생략하였다.

네 마리 용으로 만들어진 용누 밑의 종신은 꼭대기가 둥글게 풀고 외형선은 수직으로 되어 둔중한 모양으로 되어 있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범종은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범종이 대개 임진왜란 이후의 것인데 그 중에서도 비교적 초기에 속할 뿐만 아니라 조성연대가 뚜렷이 밝혀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 : 금성고 문화유산 답사반 2008년 8월 1일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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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일 2007년 3월 31일 현재

 

 
順治 元年 乙酉(1644), 청동,  전체높이 100.5cm, 종높이 69.0cm,  입지름 65.8cm, 주종장 김용암,  전남 담양 용흥사

조선 후기에 활동한 사장私匠 가운데 첫 번째로 등장하는 김용암金龍岩이 만든 종이다. 현재 대웅전에서 사용되는 이 종은 용뉴의 형태와 종신 문양이 매우 독특하다. 머리를 낮게 숙인 용은 머리가 모두 4개이며, 이 중 두 마리만이 몸체가 있어 종고리를 만들고 정상에 여의주를 받들고 있다. 볼록하게 솟은 천판에는 용뉴를 중심으로 13개의 연꽃잎이 둘려 있고 끝이 뾰족한 연꽃잎은 옴자와 화려한 문양으로 꾸며져 있다. 이처럼 천판에 연판이 둘러지는 예는 김용암과 김애립金愛立이 주조한 선암사 대각암 종(1657년), 흥국사 종(1665년), 능가사 종(1690년)에서만 나타난다. 2줄의 횡대 사이에는 육자대명왕진언이 나타나는 원형범자와 '六字大明王眞言'을 적은 원문을 두어 견대를 이루고, 그 아래에는 복잡하게 도안화된 당초무늬로 상대를 둘렀다. 이 당초무늬는 4좌의 연곽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며, 연곽 안에는 십자형의 꽃잎이 9개의 돌출된 봉우리를 받치고 있다. 연곽사이에 자리한 4구의 보살상은 긴 법의를 입고 합장을 하고 있으며 두 발은 연화좌를 밟고 서 있는 모습으로 조각 수법이 유려하다. 4구의 보살상 중 전후에 자리한 보살상 밑에는 왕실어른을 축원하는 원패 2구가 있다. 원패는 집모양의 테두리에 빗금무늬가 되어있고 원패 받침과 뚜껑 등은 아무 장식이 없다. 하대는 종구에서 8cm 올라온 곳에 있는데, 앞발로 여의주를 움켜쥔 용이 구름을 힘차게 헤치며 노니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2007년 3월 31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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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일 2007년 3월 31일 현재

용흥사 범종 龍興寺 梵鐘

 

 

 

 

 

 

 

  시도유형문화재 제90호 (담양군)
  順治 元年 乙酉(仁祖 22년, 1644), 청동,
  총 높이 100.5cm, 종신 높이 69.0cm,
  용뉴 폭 26.5cm, 용뉴 높이 24.5cm,
  상대 폭 12.0cm, 유곽크기 27.0 x 21.0cm,
  천판 지름 40.0cm, 하대 폭 10.4cm,
  종입 지름 65.8cm, 종입 두께 7.5cm
  주종장 ; 김용암,
  전남 담양 월산면 용흥리 몽성산 용흥사


조선 후기에 활동한 사장(私匠) 가운데 첫 번째로 등장하는 김용암(金龍岩)이 만든 종이다.
현재 대웅전에서 사용되는 이 종의 가장 큰 특징은 용뉴의 형태와 종신 문양으로 매우 독특하다.

볼록하게 솟은 반구형 천판에 머리를 낮게 숙인 용은 머리가 모두 4개이며, 이 중 전후방에 있는 두 마리만이 몸체가 있어 종고리를 만들고 정상에 지름 4.5cm정도의 여의주를 받들고 있다.

용의 몸통은 꼭대기가 둥글고 외형선은 수직으로 내려온다. 각기 앞발 2개씩을 갖고 있으나 각 발가락은 3瓜이다.
이와 같이 천판상에 4마리의 용이 배치된 것은 신라, 고려시대에는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양식이라 하겠다.

천판에는 굵은 太條線을 돌리고, 그 안에 용뉴를 중심하여 방사선으로 13개의 연꽃잎이 둘려 있고 끝이 뾰족한 연꽃잎은 옴자와 화려한 문양으로 꾸며져 있다. 이처럼 천판에 연판이 둘러지는 예는 중국종(中國鐘)의 특색으로, 김용암과 김애립(金愛立)이 주조한 선암사 대각암 종(1657년), 흥국사 종(1665년), 능가사 종(1698년)에서만 나타난다.

천판상의 태조선과 천판 가장자리 사이에 '육자대명왕진언'이 나타나는 지름 4.7cm의 원형범자 21자로 된 견대를 돌리고, 그 중에서 3개에는 같은 크기로 '六字大明王眞言'을 적은 願文이 범자대신 기록되어 있다.
그 아래에는 복잡하게 도안화된 당초무늬로 상대를 둘렀다.

이 당초무늬는 상대에서 분리된 4좌의 유곽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며, 유곽 안에는 십자형의 꽃잎이 9개의 돌출된 봉우리를 받치고 있다.

유곽사이에 자리한 4구의 보살상은 긴 법의를 입고, 머리에두광과 보관을 갖추고, 합장을 하고 있으며 두 발은 연화좌를 밟고 서 있는 모습으로 조각 수법이 유려하다.

4구의 보살상 중 우측유곽 우측과 후부유곽 우측 아래쪽에 왕실을 축원하는 원패 2구가 있다. 원패(願牌 ; 위패位牌, 전패殿牌라고도 한다.)는 집모양의 테두리에 빗금무늬가 되어있고 원패 받침과 뚜껑 등은 아무 장식이 없다.



  용 흥 사 마 곡 사
오른 쪽 주상전하 수만세 (主上殿下 壽萬歲) 왕비전하 수제년 (王妃殿下 壽齊年)
중    앙 왕비전하 수만세 (王妃殿下 壽萬歲) 주상전하 수만세 (主上殿下 壽萬歲)
왼    쪽 세자저하 수천추 (世子邸下 壽千秋) 왕자전하 수천추 (王子殿下 壽千秋)









용흥사종은 오른쪽에 왕, 중앙이 왕비, 왼쪽이 세자의 순으로 되어 있고,
마곡사종은 오른쪽에 왕비, 중앙이 왕, 왼쪽이 왕자의 순으로 되어 있다.

하대는 종구에서 8.0cm 올라온 곳까지는 아무런 무늬가 없고, 그 위로 폭 10.4cm의 구간에 상하로 1.3cm정도의 굵은 선 2줄을 돌리고, 그 안에 두 마리의 용이 몸을 뒤트는 모습으로, 앞발로 여의주를 움켜쥔 용이 구름을 힘차게 헤치며 노니는 모습이 표현되었데, 3개의 발톱과 입에서 내뿜는 화염이 인상적이다.
종표면에서 운용문이 나오는 것은 조선 후기의 해인사종(1491), 고견사 종(1630)과보광사종(1634) 등이 있는데 저들보다는 도식화된 면이 엿보인다.

順治元年乙酉四月日口口縣」 龍龜山龍興寺新鑄鐘」 鑄鐘通政大夫 金龍岩」 施鐵匠 李南」
청(淸)나라 순치 원년, 조선 인조(仁祖) 22년(1644년)에 주종장 통정대부 김용암과 시철장 이남에 의해 용귀산 용흥사 신종으로 주성되었다는 명문이 있다.
 
자료출처 ;
한국의 범종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종 염영하 지음
범종 이호관 지음 대원사
직지성보박물관
문화재청
www.nohht.com.ne.kr (원본)
2007년 3월 31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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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龍興寺) 순치원년명(順治元年銘) 범종(梵鍾)(2-71)

 

소재지(所在地) : 전라남도(全羅南道) 담장군(潭陽郡) 월산면(月山面) 용흥리(龍興里)

연 대(年 代) : 1644年(인조(仁祖) 22年, 순치(順治) 원년(元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전라남도(全羅南道)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제(第)90호(號)

(2008년 3월 12일 해제, 보물 1555호로 지정)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102cm, 용통고(甬筒高); cm, 상대폭(上帶幅); 12cm, 유곽장(乳廓長); 

27×21cm, 구경(口徑); 66cm, 종신고(鍾身高); 69.5cm, 용통경(甬筒徑); cm, 하대폭 

(下帶幅); 11cm 종구후(鍾口厚); 7.5cm, 용뉴고(龍鈕高); 25cm, 천판경(天板徑); 40cm 

유곽폭(乳廓幅); cm, 당좌경(撞座徑); cm

 

 범종(梵鍾)의 정상(頂上)인 종정(鍾頂)에는 네 마리의 용(龍)이 몸체를 결박하듯 서로 얽혀서 용뉴를 구성하고 있고 그 정상에는 경(徑) 4.5m 정도의 보주(寶珠)를 얹고 있다.

 

 종정(鍾頂)은 반구형(半球形)이며 용뉴 밑으로 화판(花瓣)이 장설(長舌)과 같이 처리한 복연판(覆蓮瓣)을 13개(個)로 장식하였고 상대로 보여지는 곳에서 세선(細線) 3조(條)로 상하간지(上下間地)를 이룩하며 구획을 설정하였다. 상대(上帶)에는 원좌에 범자(梵字)를 갖춘 문양대를 돌렸고 그 밑으로는 도식화된 당초문(唐草紋)을 장식하여 상대로 나타낸 듯 하였다. 4개소에 배치한 유곽도 상대와 떨어져 독립되게 배치하였다. 유곽의 문양 역시 상대와 유사한 도식화된 당초문으로 장식하고 그 안에 화좌에 자방이 돌출된 듯한 유두 9개를 갖추고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원형 두광과 화려한 보관을 갖춘 보살입상 4구(軀)를 배치하고 있고 종복에는 양주(陽鑄)로 된 장문(長文)이 있어 순치(順治)원년(元年)에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대(下帶)는 융기된 1.3cm 정도의 태선(太線) 2조(條)를 상하(上下)로 주회시키고 그 간지(間地)에 운용문(雲龍紋)을 배치 장식하였다. 양식상 특이한 문양 조식과 형태를 갖춘 범종이며, 순치원년갑신(順治元年甲申)은 인조(仁祖) 22年 갑신(甲申)(1644)에 주조된 것으로 용뉴가 4용(龍)으로 처리한 것이 당시의 양식상으로는 특이하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