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가을 햇살 가득찬 문틀에 기대어

korman 2010. 10. 24. 14:15

 

 

 

 

가을 햇살 가득찬 문틀에 기대어

 

좀 쌀쌀한 날씨가 되겠다던 주말이 한낮이 되자 강한 햇살을 집 안으로 들이밀어 눈을 부시게 한다. 늘 바라보는 앞집의 옥상에 설치된 환기용 바람개비가 살랑살랑 오가는 가을바람에도 20년의 세월을 언제 흘렸냐는 듯이 활기차게 돌아간다. 늘 버릇대로 커피 한잔을 들고 거실 문을 조금 열고는 문틀에 기대어 그 바람개비를 물끄러미 주시한다. 생각은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한 딸아이를 위한 상견례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는 곳에 머물러 있다. 큰아이를 위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생각은 그 한 곳에서 움직이지를 않는다. 순간 큰길가에서 앞집을 넘어 들려오는 아스팔트위의 강한 마찰음이 식어오던 커피잔을 흔들리게 하고 뒤이어 들리는 충돌음에 움직이지 않던 생각이 누군가가 다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으로 옮겨진다.

 

사고가 나서 신고하면 경찰차나 119구급차에 앞서 견인차가 일착으로 도착한다고 한다. 그들 업계에서는 먼저 도착하는 차가 사고 차량을 견인 할 우선권을 주는 것인지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에 여러 대의 견인차가 그 특유의 경음을 울리며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견인차의 마음이었던가. 문틀에 기대어져 있던 내 몸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어느새 커피잔을 던지듯 전화기 옆에 내려놓고는 현관의 슬리퍼를 신었다.

 

사고는 바로 집 앞 사거리에서 났다. 중형차 두 대가 모두 운전석 쪽이 심하게 부서진 것으로 보아 좌회전 하려던 차와 직진하려던 차 중 누군가가 신호를 지키지 않은 것이 분명하였다. 요새 운전을 하다보면 신호가 노란색을 지나 상대편 신호로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차가 출발하는데 필요한 약간의 시간차를 이용하여 달려오던 탄력에 급가속까지 하며 신호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차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그런 차에 위험함을 경험한 나로서는 신호가 바뀌어도 내 쪽 신호에 의존하지 않고 꼭 상대차를 살핀 후 출발한다. 또 이는 운전하는 내 아이들에게도 늘 하는 잔소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직진하던 택시운전자는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좌회전 하던 차의 여자운전자는 어디로 전화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보험회사이겠지, 필시 이 경우도 직진하던 택시가 그 시차를 이용하려 한 것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예상한 대로 이미 여러 대의 견인차들이 길 가에 주차하고 있었다. 저들 중 누구에게 우선권이 있을까. 구경하던 사람들 중에 초등학생들이 여럿 보였다. 그 애들에게 다가가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 물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택시의 잘못이라고 즉각적으로 대답하였다. 그리고 정확한 상황 설명도 곁들였다. 역시 내가 생각한 그대로를 아이들도 그려내고 있었다. 이런 것이 교육의 힘인가. 그러는 사이에 경찰과 구급차가 도착하였다. 그들도 상황이 어찌 되었는지는 짐작하는 듯 우선 택시 기사를 부축하여 구급차에 옮겨 실은 후 정황을 살피고 있었다. 난 속으로 아이들에게 물으면 상황을 조기에 수습 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아이들의 증언이 이런 상황에서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지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사고 택시에 블랙박스가 있었다면 누구의 증언도 필요 없을 테지만.

 

요새 차를 몰고 다니다 보면 운전자들의 행태가 과거보다 많이 나빠졌음을 느낀다. 물론 자동차가 늘어났으니 그에 따른 여러 형태의 운전자들이 생겨났겠지만 운전에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가운데 하나가 위의 예처럼 자기 신호를 지키지 않아 위험을 초래하는 운전자들이 많아진 것은 제쳐 두더라도 회전 차로에서 깜빡이를 켜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회전 전용차로가 있고 전용 신호가 주어지는 곳에서는 그리하지 않아서 위험한 일은 드물다. 그러나 비보호 좌회전이 주어지는 곳이라면 좀 다르다. 반대편에 보이는 차량에 어느 방향으로 가겠다는 의사표시가 없으면 다른 한쪽 사람은 그 쪽도 직진하리라 생각하고 사거리에 진입하지만 상대가 갑자기 좌회전을 한다면 얼마나 낭패일까. 또한 직진과 비보호 좌회전을 동시에 주는 차로에서 앞차가 좌회전 깜빡이를 켜지 않으면 직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뒤에서 대기 하지만 신호가 바뀌어도 꼼짝하지 않는 차에 경적을 울리면 그때서야 좌회전 깜빡이를 켜는 차를 만났다면 강아지를 앞세운 육두문자가 절로 나온다. 앞차가 예시를 주었다면 뒤따라오는 차는 미리 다른 차로로 바꾸어 직진 할 수 있을 텐데.

 

사람들이 건너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건널목을 침범하고서야 정차하는 운전자들을 볼 때면 전기쇠톱으로 정차선을 지나 들이민 부분만큼 잘라주고 싶지만, 그러나 그들이 도로교통법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비단 그들의 잘못만은 아닌 듯싶어 입 밖으로 내어 놓은 육두문자를 거두고 싶을 때도 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 입에 오르는 운전자들은 교통법규는 지키지 않아도 범법행위의 범주에 속하지 않을 거라고 여기는 그들의 잘못된 생각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앞서 말하고 싶지만 또한 그러한 위법행위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것은 법규를 위반하면 타인은 물론 자신의 생명까지도 앗아갈 수 있는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반을 단속하는 사람들도 그저 형식적이거나 적극적이지 못할 때가 많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가을 무심코 차창 밖으로 버린 담배꽁초 하나에 산야가 불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2010년 10월 열엿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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