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황금라벨에 가려진 상처

korman 2010. 10. 30. 20:20

 

 

 황금라벨에 가려진 상처

 

지난 추석을 앞두고 불어 온 태풍 때문에 채소며 과일이며 모든 농산물이 영향을 받아 그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었다. 추석 제수에 쓰이는 각종 과일은 풋 맛이 없어지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출하된 것이 많이 있었고 예년처럼 씨알이 굵고 제대로 된 물건을 고르기가 어려웠으며 체면치례를 해야 하는 사이에 선물용으로 쓰일 만한 것은 보통사람들에게는 그 값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또한 최근까지도 배추는 금추라 불렸으며 그 값은 아직도 예년의 두 배라 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니면 유통업자들의 장난이었는지 추석을 보내고 내가 얻은 것은 과일에 붙은, 품질을 보증한다는 금빛 찬란한 라벨이 소비자를 속이는 좋은 수단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각종 농산물, 특히 과일에는 지방 특유의 생산품임을 내세워 생산지의 지방 자치단체가 혹은 생산자 스스로 품질을 보증한다는 금빛 찬란한 라벨을 과일 한 개마다에 상표처럼 붙이는 마케팅이 유행하였고 또 소비자들도 그런 라벨에 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라벨을 이용하여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가 있다는 걸 난 추석을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차례에 쓸 제수용품과 큰아이 처가에 보낼 과일을 보러 다니던 마누라가 집에 들어와 하는 말이 시장이나 마트에 나와 있는 선물세트로 된 과일들이 비싼 거야 둘째 치더라도 그 모양새가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고 하며 사돈댁에 보낼 과일은 평소 가끔 가는 시장의 과일가게에 특별히 주문하여 놓았으나 제수용으로 쓸 몇 개의 과일도 돈에 비하여 잘 익고 흠집 없고 깨끗한 것 고르기가 참 어렵더라고 하였다. 하기야 나도 마트에 가서 제수용으로 특별히 판매하는 스티로폼 속에 묻혀 있는 과일들을 꺼내 보다 그 겉모양이 모두 깨끗한 것을 고르기가 어렵겠다고 느끼고 있었다. 큰 흠집은 없다 하더라도 그 피부가 태풍의 영향으로 긁혀지고 멍든 것이 많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과일가게에서 특별히 배달되어 온 배와 사과 한 상자씩을 큰아이 차에 실어 주었다. 그 역시나 황금빛 찬란한 라벨, 그야말로 금테 두른 과일, 그것이었고 난 그 화려한 라벨 안에 속임수가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추석 이틀 후 이웃 동네에 사는 누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서울 사는 작은 누님에게 추석 다음날 사과를 한 상자 보냈는데 작은 누님 전화인즉 사과의 라벨을 모두 떼어보았더니 라벨을 붙였던 자리에 모두 구멍이 나 있고 그 구멍 때문에 사과 속이 상해서 먹을 수가 없고 멀쩡한 것은 한 상자에서 단지 세 개 뿐이었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형제끼리야 이런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사돈댁에 과일 보낸 게 그리 되었다면 서로 어려운 처지에 민망 할 수 있으니 아이들에게 확인해 보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아이들 집에 들른즉 싱크대에 절반쯤 상한 사과가 놓여 있어 혹시나 하여 누님께 들은 이야기를 전하고 며늘아기에게 사돈댁에 확인하라고 하였더니 싱크대의 사과가 문제의 그것이라는 것이었다. 추석날 내가 보낸 사과 중에서 몇 개 가져가라고 하여 가져왔는데 라벨을 떼니 상처가 있었고 하루가 지나니 그리 되었다는 것이었다. 다행이 배와 사과 두 박스 중에서 라벨에 가려진 상처는 3개뿐이었다고 했다.

 

누님께서는 한 박스 모두 그리 되어 구입한 가게에 항의하였더니 가게 주인은 아무 말 없이 미안하다고 새로운 박스를 내어 주더라 하셨다. 나의 경우도 집사람이 가게에 가서 항의를 하여 미안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생산지에서 라벨이 붙어 있는 상태로 왔기 때문에 사실 판매자들도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별로 놀라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들은 알고 있자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에서도 웬만큼 큰 과일가게들은 냉장시설에 과일을 보관하고 자신들이 포장도 한다. 그러니 그 라벨이 생산자가 붙인 것인지 유통업자들이 붙인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냉장 보관 되었던 과일들은 신선하기는 하지만 상처가 난 상태로 상온에 오래 노출되면 상하가 쉽다. 그래서 며칠 상온에 놔두었던 것들이 그리 상하였을 것이다.

 

어떤 자동차 회사의 판매 왕을 차지한 사람이 충고하기를 현란한 액세서리로 잔뜩 치장한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하여 현란한 라벨을 붙인 과일도 조심해야 할까? 그걸 붙인 사람을 조심해야 하겠지만 과일 라벨 밑의 가려진 상처가 추한 인간의 곪은 가슴을 보는듯하여 내 마음에도 상처로 남는다.

 

2010년 10월 서른 번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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