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본 의원은

korman 2010. 11. 9. 17:44

 

 

 

본 의원은

  

금요일, 평소 절친하게 지내던 모 회사 대표가 점심이나 하며 이야기 좀 나누자는 연락으로 그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우선 커피를 한잔 놓고 이야기를 꺼내고는 어디엔가 잠시 전화를 하더니만 누구냐고 묻는 상대방에게 “나 0자 0자 0자 쓰는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나는 “풋” 하고 나오는 웃음을 침을 꿀꺽 삼키며 속으로 집어넣었다.

 

 

벌써 한 이십수년이 흘렀을까. 당시 20대 후반이던 서로 절친한 친구 두명이 만든 회사와 같이 할 일이 생겨 그 회사에 자주 들르곤 하였다. 이들은 서로 절반씩을 투자하여 둘 다 스스로 전무라는 직함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거야 뭐 흠잡을 일이 있을까만 이들이 어디 전화를 할라치면 상대방이 누구든 간에 늘 “나 K전무입니다”, “나 P전무입니다”라 하곤 하였다. 스스로 만든 직함을 아무에게나 스스로 불러대는 모습이 보기 안 좋아 나이 좀 더 먹은 내가 이야기를 해 주어야겠다 생각하고 “직함은 남이 불러주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당신네들은 나이도 젊고 또 그 직함도 스스로 만들어 가진 것 아닙니까. 그러니 어디 전화라도 하실 땐 ‘저 ㅇㅇ회사 K 아무개입니다’라 하시고 상대가 직함을 물으면 ‘전무를 맞고 있습니다’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충고를 하였지만 그 후에도 그들의 그런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요새도 나와 차 한 잔씩 가끔 하며 자주 전화로 안부를 묻는 ㅇ사장 이라는 분이 계신다. 지금은 수익도 나지 않는 사무실을 혼자 지키고 있지만 예전에는 회사를 7개씩이나 차리고 그룹사 형태의 사업을 하며 잘 나가던 분이셨다. 이분이 나에게 전화를 할 때면 첫 마디가 "나 ㅇ사장입니다“라고 한다. 이분 역시도 사업이 한창 번성 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어디 전화를 할 때면 자신의 이름 대신에 언제나 스스로 꼭 ㅇ사장이라 일컫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분에게도 그런 버릇을 고쳤으면 하여 위에 적은 젊은 친구들의 예를 들어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하였던 바 웃으며 내 말에 동조를 하였지만 혼자 있는 사무실에서도 스스로 부르는 사장이란 직함을 내려놓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군 연병장에 서서 단상에 있는 높은 분의 일장 연설을 들으신 분들은 모두 알고 계실 것이다. 요새도 스스로를 그리 부르는 높은 양반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단상에 선 분은 늘 “본관은“이란 말을 즐겨 썼다. 물론 군대는 상명하복의 계급사회이고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여야 하는 명확한 수직사회이다. 따라서 군 연병장 단상에서 연설하는 상관이 부하들에게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 ”본관은“이란 존칭을 썼다하여 그리 흠잡을 일은 못되지만 이 사람이 만약 지역사회의 행사에서 많은 시민들이 모인 자리의 단상에 올라 일반 군중을 향하여 ”본관“이라는 존칭을 썼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반 군중은 그의 부하가 아니며 ”본관이란 고을 수령을 백성들이 부를 때 사용하던 말“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요새 TV, 특히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뿐만이 아니고 사회자 까지도 자신들의 선배 뻘 되는 연예인들과 같이 출연하면 방송 중임에도 나이 가리지 않고 그 선배를 ㅇㅇ씨 대신에 깍듯이 “ㅇㅇ선배님”이라고 호칭한다. 원로 연예인이 되어 시청자들에게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공감이 가는 세월을 흘린 분이라면 모르겠으되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방송을 하면서 사회나 국민들이 붙여준 직함이나 존칭도 아닌 자신들만의 개인적 관계를 모든 시청자들과의 관계인양 “선배님”이라 부르는 것은 그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한 일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대중적 방송에 출연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선후배가 모여 자기들만의 오락을 즐기는 것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된다고 한다면 너무 욕된 표현일까. 출연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사회자 까지 거기에 동승을 한다면 더욱 가관이 된다. 하기야 선후배가 엄격한 연예계에서 또한 뭔가 윗사람에게 존칭을 붙여야 하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그것이 출연자들만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또 한편으로 느껴지는 것은 방송 전에 프로그램 제작자가 대중방송이니 만큼 비록 선후배 사이라도 호칭을 어찌하라고 미리 알려주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새 뉴스를 보면 국회가 매우 시끄럽다. 어제 오늘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늘 나라와 국민의 심부름꾼임을 자청하지만 누가 진작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지 의심스럽다. 그들 역시 국민들이 불러주어야 할 존칭(?)을 본인들 스스로의 권위를 위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열리면 많은 의원들이 국회 내에서 연설도 하고 대정부 질문도 한다. 그런데 등장하는 의원마다 자신을 가리켜 “아무개의원입니다”, “본 의원은”이란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 의원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국회에서 질문하고 연설하는 그들이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동료 의원이나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책은 국민을 대신하여 질문하고 연설하는, 국민들이 국민의 입장에서 나라살림 잘 챙기라고 그들에게 부여한 직함이다. 따라서 의원들은 자신들이 하는 질문이나 연설이 군 연병장 단상에서 “본관”이 하는 행위와 다름을 인식하여아 함에도 단상에 오르는 사람마다 “본 의원” 찾기 바쁘다. 선거 때 하던 그대로 “저는”이 안 되면 “나는”이라도 좋으니 거만함이 묻어나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듯한 “본 의원” 이라는 호칭을 스스로 버리는 의원은 언제쯤 나올까.

 

만일 우리나라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의 그것처럼 대 국민 연설이나 담화 때 마다 대통령 휘장인 금봉황 뱃지를 달고 나와 국민 앞에서 말끝마다 “본 대통령은”이라고 한다면 “본 의원”을 즐겨 찾는 국회의원님들은 무어라 하실까. 본 국민은 감히 국회의원들에게 묻고싶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듯한 “본 의원”존칭 이제 그만 찾으시고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그 국회의원 뱃지 또한 거두어들이고 국민 앞에 스스로를 낮추는 지칭을 사용할 수는 없겠냐고. 언제 누가 그리 될까만......

 

 

 

 

 

2010년 11월 여드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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