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노인으로 가는 디지털 열차

korman 2011. 10. 19. 18:02

 

 

 

 노인으로 가는 디지털 열차

 

요새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 할 수도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 까지만 해도 환갑이 된 어른을 모신 집에서는 떠들썩하게 환갑잔치를 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한 시대를 넘어 또 다른 시대를 산다는 의미도 있었겠지만 평균 수명이 짧았던 시대여서 60을 넘기면 장수의 상징으로 그 기쁨을 잔치로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물론 요새도 그런 잔치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팔순이라면 모를까 칠순이 되어서도 그리 떠들썩한 잔치를 벌이는 가정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전 TV에서 노인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몇 살 정도로 생각하느냐고 일반인들에게 물은즉 대다수가 75세로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제는 환갑정도만 가지고는 어디 가서 나이 먹은 척 할 수도 없거니와 70이 넘어도 사람에 따라서는 전철 안의 노약자석을 기웃거릴 수 없을 만큼 젊은 얼굴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 하기야 세계 보건기구가 올해 발표한 작년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남자는 76세 여자는 83세라 하니 그래도 70은 넘어야 노인 쪽에 명함을 내밀 수 있을 것 같다.

 

몇 해 전에 인구 조사를 한다고,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 이었겠지만, 안내장과 설문지를 나누어 주던 젊은 사람이 인터넷으로 하면 간단하다고 설명을 하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집에 자녀분 게시면 해 달라고 하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그 친구들이 보기에는 내 얼굴이 인터넷을 설명 하여도 못 알아들을 만큼 나이가 들어 보였음인지..... 그날 저녁 컴퓨터 앞에 앉아 안내장에 설명한 대로 사이트를 찾아 질문사항에 대한 답변을 입력하며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데 어느 순간 입력를 하고 엔터키를 쳐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고는 에러 메시지만이 계속 뜨는 일이 생겼다. 몇 번을 시도 하여도 꼭 그 난에 가서는 에러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아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사용하여 장애가 발생하던지 아니면 서버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나중에 다시 해 보려고 그대로 사이트를 닫았다. 그리고 생각지 않고 며칠을 흘렸다.

 

잠시 그 일을 잊고 있는데 3일 정도 지난 날 어느 여자분께서 전화를 걸어왔다. 입력이 중간에서 끊어져 있어 연락하였다고 하며 왜 계속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다른 일 때문에 며칠 잊고 있었는데 입력하다 같은 곳에서 자꾸 에러가 나 며칠 있다가 다시 하려고 놔두었다고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기 입력된 데이터를 통하여 내 나이를 가늠하였음인지 유치원 아이들에게 묻듯이 이렇게 하였느냐 저렇게 하였느냐 안내대로 따랐느냐 혹 다른 컴퓨터로 해 봤느냐 등등 시시콜콜 따져 물어왔다. 같은 곳에서 에러가 계속 난 사유를 설명하여도 안 될 리가 없다며 내가 잘못하여 그리 된 것으로 계속 몰아가고 있었다. 하도 같은 것을 계속 따지는 통에 내 언성이 좀 높아지며 “내가 나이든 사람이라 자꾸 같은 것을 그리 물으시는 것 같은데 같은 곳에서 계속 에러가 났다는 것은 그 날 그 시간에 그 쪽에서 사용하는 서버에 일시적 장애가 일어났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집 안에 내 컴퓨터를 비롯해서 아이들이 각자 자기 개인용을 다 가지고 있는데 다른 것으로는 안 해 봤겠습니까?” 그제야 그분은 오늘 다시 한 번 더 해 봐 달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는 에러 없이 순조롭게 모든 데이터가 입력되어 신고절차를 마쳤다.

 

세상이 진보하면서 나이든 사람들이 진보된 세상에 적응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기억력이 약화되어 기존의 기기를 다루는데도 취약한데 디지털 기기라는 것들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것으로 변화하여 가지고 있는 기기에 좀 익숙해 지려하면 또 다른 진보에 적응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에게는 나이든 사람들은 컴퓨터에 무조건 취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전화를 하였는 모양이다. 물론 이런 것들로부터 손을 놓아도 불편 하기는 하지만 노인층이 살아가는데 큰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인층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이미 디지털로 넘어간 세상에 살면서 그저 아날로그 세상을 동경할 수만은 없는 것이 세태이니 다소간이라도 디지털 세상에 어울릴 수 있는 견식은 가져야 문맹적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야 이제 겨우 국민연금 초년생이니 한동안은 노인이라 불릴 수 없겠지만 아이들이 선물한 손바닥만 한 신형 디카의 기능을 익히는 게 두려워 몇 달이 지났음에도 아직 매뉴얼은 들추어 보지도 않고 그저 자동 기능만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고 있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매뉴얼이 CD로 되어 있어 보고 싶을 때 컴퓨터에 넣어야만 볼 수 있음을 투덜대며 스스로 디지털에서 멀어지고 싶어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나도 이제 별수 없이 노인으로 가는 긴 열차의 맨 끝 칸에 한발 올려놓은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노인이라 생각하기 전에 오늘은 매뉴얼 한번 볼까 생각하다가 에이 밥 먹고 보지하고 또 미룬다.

 

2011년 10월 열이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