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똑똑한 사람과 잘난 사람

korman 2011. 11. 17. 00:35

 

 

 

똑똑한 사람과 잘난 사람

 

 

저녁 무렵, 동네 한 모퉁이에 새로 생긴 가전제품 대리점 앞을 지나치는데 대리점에서 판촉을 위하여 밖에 내어놓은 TV 앞에서 뒷짐을 지고 뉴스를 보시던 초로의 신사 한 분이 독백으로 "저리 잘난X들이 많으니...쯧쯧.."하고 혀를 차며 돌아 서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은 듯이 짖는 미소에 입술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가 어떤 뉴스를 보고 하는 말 인가는 같은 뉴스를 보지 않았어도 짐작이 간다.

 

어린 시절 동네 어른들에게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었음직한 두 가지 비슷한 말이 있다. “그 놈 참 똑똑하게도 생겼다”와 “그 놈 참 잘 났다”이다. 두 말 모두 실제로 그리 보인다기보다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덕담으로 들리게 하려는

이웃들의 배려였다. 부모들은 그것이 입에 발린 소리라 여겨 들으면서도 그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기 자식 똑똑하고 잘 났다는데 그게 입에 발린 소리인들 싫어하는 부모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어린 아이들이 훗날 성인이 되어 같은 말을 듣게 된다면 어릴 때와는 달리 이 두 단에는 야릇하게 서로 다른 뉘앙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때 부모들은 알고 있었을까?

 

얼핏 들으면 “잘났다”라는 말이 “똑똑하다”는 말 보다 더 우월하게 생각되고 똑똑한 사람은 잘난 사람 범주에 속하는 듯 생각되지만 잘났다는 말이 그 사전적 의미 그대로 쓰이기보다는 예전과는 달리 내포하고 있는 반어적 의미가 강하게 표출되는 것을 생

각해 보면 똑똑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훨씬 더 영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똑똑한 사람은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알지만 잘난 사람은 항상 자신이 첫 번째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할 것 같고, 똑똑한 사람의 주장은 고집이라 생각 될 수 있지만 잘난 사람의 주장은 아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똑똑한 사람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냉정하게 잘 풀어가지만 잘난 사람은 자신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를 것 같고 똑똑한 사람은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지만 잘난 사람은 자기가 보는 나무를 모든 사람이 본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숲이라 생각할 것 같다.

 

옛 말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였다. 이는 똑똑한 사람을 칭하기 보다는 잘난 사람이 많으면 일을 그르친다는 의미라 생각되는데 요즈음은 자동차에서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이리가라 저리가라 하여 예전 잘난 사공을 대신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일찍이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서양에도 이런 잘난 사람들이 많았는지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사공을 대신하는 뒷좌석 운전자들을 가리키는 Back seat driver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도 저도 이제는 내비게이션이라는 진짜 똑똑하고도 잘난 놈이 나와서 사공도 가르치고 뒷좌석 운전자도 꼼짝 못하게 하며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공이나 뒷좌석 운전자라는 말이 꼭 탈것을 지칭하는 말이 아닐진대 서두의 신사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TV뉴스나 신문을 볼라치면 똑똑한 사람들 보다는 잘난 사람들, 아니 자기가 잘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신문 1면은 제목만 보고 넘기고 TV뉴스는 5분 후에 본다. 똑똑하지도 못하고 잘나지도 못한 이 무지한 국민은 왜 꼭 그 잘난 사람들이 TV뉴스의 서막을 장식하고 신문의 1면에 나와야 하는지 참 궁금하다. 그런 거 정리하는 내비게이션은 안 나오나?

 

2011년 11월 열 이튿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