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2011년 체코 여인과 쪽 소리 나게 볼 비비기

korman 2011. 12. 11. 11:40

 

 

 2011년 체코 여인과 쪽 소리 나게 볼 비비기

 

 

소주잔을 들고 나와 마누라에게 상차림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며 몇 달 전 자신의 친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던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큰애를 통하여 그 말을 전해 듣고 그녀에게 이메일로 조의를 표하기는 하였지만 음식을 앞에 놓고 세상 떠나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녀의 마음이 애처로워 이런 순간에 서양에서는 어떤 말로 마음을 보듬어 주는지도 모르는 이 순 한국 토종은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을 한다는 것이 그저 주워들은 말로 “아이엠 쏘리”만을 몇 번 입 밖으로 낼 수 있었을 뿐이었다. 체코인으로 이태리 밀라노에 살고 있는 그녀는 아버지가 둘이었다. 어릴 적 부모가 이혼 하고 어머니가 재혼 하는 바람에 친아버지는 세상 뜨기 전까지 체코의 프라하에 혼자 살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 계시는 나이든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며칠에 한 번씩 전화로 안부를 묻곤 하였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하루 종일 전화를 받지 않아 현지 경찰에 연락하여 집에 좀 가 봐달라고 부탁하였더니 돌아온 대답이 집에 가 본즉 돌아가신 분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도 황당한데 그녀는 얼마나 슬프고 황당하였을까.

 

작년 6월에 잡채와 불고기와 구운 김으로 거나하게 소주잔을 주고받았던 그녀가 지난 몇 번처럼 큰애네 집에 여장을 풀고는 우리말로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며 내 집 문간에 들어섰다. 올 봄 작은애의 결혼식에 맞추어 오겠다고 하였었는데 서른 중반의 나이로 남편 없이 혼자 사는지라 학교 다니는 12살 된 아이를 어디 맡길 데가 없어 오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 프라하에 살며 실버모델일을 하는 그녀의 어머니 일정이 비어있어 어머니를 밀라노로 오시게 해 아이를 맡기고 올 수 있었다고 하며 아직도 나에게는 낯 설기만한 그 쪽쪽거리며 볼 비비는 인사를 마누라와 나에게 쏟아 부었다. 그리고는 지난해와 같은 메뉴 앞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자세가 불편하여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도 이 음식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며 연거푸 소주잔을 비우고 수다를 이어갔다. 이태리 와인을 빼고 세상에서 가장 좋은 술이 소주인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그래도 아직 김치와는 사귀지 못한 상태이다.

 

지방 도시의 공장에 내려갔다가 돌아온 온 그녀는 자꾸만 속이 편하지 않다고 했다. 점심때 무얼 먹었나는 내 질문에 그 도시에서 스파게티를 제일 잘 한다는 식당을 소개받아 그걸 먹었는데 그게 안 좋았던 것 같다고 하였다. 한식을 먹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고 같은 스파게티를 먹은 한국 사람은 멀쩡한데 이태리에 사는 사람이 이태리 음식을 먹고 속이 좋지 않은 것은 이제 자기도 한국 사람이 다 된 모양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속을 달래준다고 며늘아기가 마련한 것이 깨끗한 떡국이었다. 계란 풀어 소고기로 끊인 떡국이니 외국인인들 못 먹을 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그 뜨거운 국물을 맛있다고 잘도 먹어댔다. 한국에서는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거라고 농담을 하였더니 이미 절반쯤 비운 그릇을 앞으로 밀어 놓으며 웃어대었다.

 

그녀가 이번에 내게 선물한 것은 프라하를 소개하는 사진집이었다. 그런데 투명비닐포장 속에 곱게 싸여있는 책의 이름은 놀랍게도 한글로 된 “마법의 프라하”였다. 제목뿐만이 아니고 책 속의 내용까지 모두 한글로 되어 있었다. 한글로의 번역이 약간 어색한 것으로 보아 현지에서 현지인에 의하여 모두 만들어진 것 같았다. 몇 년 전 그녀가 영어를 못하는 그녀 회사의 사장과 같이 왔을 때 이태리어로 한국을 소개하는 책자를 찾으러 다니다 어떠한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설명은 한 줄도 들어가지 않고 이름만 영문으로 써 있는 우리나라 산들을 소개하는 화보집을 선물로 준 기억이 나 씁쓸하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점에 이태리어는 고사하고 영문으로 된 겨우 몇 권의 책자들도, 그것도 요리책이 대부분이었던, 기둥 뒤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진열된 그 모습에 실망이 컸었는데 이미 2005년도에 발간된 이 동쪽 작은 나라의 글로 된 남의나라 사진집을 보면서 우리도 상업성이 없어 민간 출판사에서 하지 못한다면 정부기관이나 관광공사 같은 곳에서 정책적으로 여러 언어로 된 책자들을 일반인들이 보통 책방에서 대할 수 있도록 해 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외국인 100만명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데. 몇 년이 흘렀으니까 영어로라도 좀 제대로 된 책이 나왔을까 하여 인천에서 제일 큰 책방을 찾았다. 서울에서도 제일 큰 책방이니까 서울과 같은 책들이 있겠지 생각하고 둘러본 그곳에는 그러나 외국에서 수입된 영어 원서와 영어교재들만이 즐비할 뿐 내가 외국인에게 선물 하고 싶은 우리책자는 단 한권도 없었다. 대신 내가 그녀를 위해 준비한 것은 이름하여 “홍삼종합세트 (차, 절편 및 젤리)” 이었고 밀라노와 프라하에도 한류를 기대하면서 그녀의 아들을 위해서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CD를 건네주었다.

 

이태리로 돌아간다고 공항에 나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짐의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 소주 몇 병과 배 몇 개를 빼 큰애에게 주었으니 저녁에 배를 안주삼아 아들과 소주 한잔 하라는 말과 함께. 집에 돌아온 큰애에게 짐이 왜 그리 무거웠냐고 물은즉 혼자 두고 먹는다고 소주를 휴대용 플라스틱병 20개, 동네 사람들과 나눠 즐긴다고 큰 플라스틱병 3개 및 배가 3개씩 들어간 플라스틱 팩을 여러 개 넣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남기고 간 소주 6병과 배로 초겨울 저녁 시간을 아들과 거나하게 보냈다. 그녀도 이 저녁 동네사람들과 한국 소주로 거나해져 가겠지. 그녀의 입을 통하여 한국과 한국의 소주가 이태리와 체코의 하늘에 덮여지기 바란다.

 

2011년 12월 아흐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