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말죽거리 배추밭

korman 2011. 9. 18. 14:22

 

 

 

말죽거리 배추밭

 

추석이 지나면서 한낮의 볕이 무척 뜨겁다. 가을걷이와 겨울 먹거리를 염려하였음인지 아니면 여름 내내 그리 많은 비를 뿌려 만물의 생장을 방해하였음이 미안하였던지 추석이 지나면서, 결국 며칠 안가 꺾이겠지만, 날씨는 뜨거운 볕이 계속되고 있다. 여름 내내 비 때문에 생장이 늦어 흉작이 염려 되었던 각종 여름 농작물이 이제 한꺼번에 가을의 문턱을 넘어오고 있다고 한다. 벼 익음이 예년과 같을까 묻는 나에게 그래도 남도의 친구는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는 벼이삭 소식을 전하여 주었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각 미디어에서는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그리고 여지없이 꽉 막힌 도로에서 중계방송을 한다. 그러나 올해는 개인들이 소지하고 있는 첨단 장비 덕분에 요리조리 안 막히는 길을 골라 다녀 교통 대란은 없었다고 한다. 장비도 장비지만 매년 새로 건설되고 잘 정비되는 거미줄 같은 우리의 도로망도 한 목 거드는 듯싶다. 여기저기 출장길에 만났던 다른 나라의 도로망과 대중교통망에서 우리나라의 그것은 늘 앞서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명절이 되면 다른 이들은 남쪽으로 내려가느라 고생을 하지만 우리 형제들은 모두 가까운 지역에 사는 고로 다들 쉽게 모이고 쉽게 돌아간다. 어머니께서 살아 계시던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모이면 어머니의 녹음기에서 나오는, 테이프에 들어 있는 전 편을 외운지 오래지만, 이북의 고향이야기를 들으며 하루해를 기울였지만 이제는 그 어머니 녹음기도 돌아가지 않으니 산소에는 먼저 다녀오는 터라 당일에는 차례 후 그저 이집 저집에 모여 식사 같이 하고 결혼한 아이들 처가나 친정에 다녀오라 하고는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게 일이다.

 

나야 그저 환갑이 지난 나이이니 북한 땅에서 낳기는 하였지만 어찌 그곳을 고향이라 할 수 있을까만 70이 훌쩍 넘고 80이 된 형님, 누님 및 매형들이 있어 요새도 가끔 어머니 녹음기를 대신하고 있다. 문제는 어머니의 녹음테이프는 늘 같은 것이었지만 형제들의 녹음기에 담긴 이야기는 약간씩 달라 간혹 서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테이프가 오리지널이라고 다투는데 있다. 그 틈바구니에서 난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세상 떠나신 아버지께 늘 가정에 대한 책임(?)을 돌리곤 한다. 3일만 있으면 고향으로 간다고 고향땅이 빤히 보이는 섬으로 피난을 올 것이 아니라 아예 말죽거리로 나와 배추밭이라도 했으면 내 운명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그저 이 만큼 사는 것도 조상님들 덕분이지만 3일만 있다 귀환하시겠다는 생각 접으시고 남쪽 육지 어딘가에 일찍 자리를 잡으셨으면 살아가는 환경이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력 때문에 고향녹음기가 틀어질 때면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여름이 막바지에 있을 때 대구에서는 국제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각 종목 상위권에 있는 선수들 대부분이 흑인이다.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도 있지만 부유한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흑인들도 있었다. 바로 옆 레인에서 서로 바라보며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은 조상을 잘(?) 두어 부유한 국가에서 살고 있는 피부색이 같은 선수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비록 부유한 땅에 노예로 끌려간 불행한 조상들을 둔 그들이지만 그들 모두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같은 흑인들이거늘. 나의 우스갯소리 “말죽거리의 배추밭”처럼 내 조상은 왜 노예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만.......

 

 

2011년 9월 열 엿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