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국회의원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길거리가 온통 현수막으로 뒤덮이고 있다. 선거 때문이 아니라도 평소 눈에 잘 뜨이는 장소에는 합법, 불법을 가리지 않고 늘 펄럭이는 게 현수막인데 선거를 빙자하여 가로수, 전신주, 가로등을 가리지 않고 매달아 놓은 것이 가히 현수막 공화국이라 할만하다. 최근에는 의원 후보들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아주 통째로 현수막으로 가려져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길거리에 걸리는 현수막의 종류는 참 다양하다. 거의 대부분
이 상업성 광고지만 때로는 교통사고 목격자를 찾는 것에서부터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 경우까지 무수한 현수막이 차도, 인도를 가리지 않고 걸리고 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걸리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평상시에 길거리에 거는 모든 현수막은 관계당국의 허가 도장을 받고 허가된 장소에 걸어야 하는 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나에게는 요즈음 선거 때문에 걸리는 것들이나 상업성 불법 현수막은 그렇다 치더라도 평상시 정치인이나 정당에서 법을 어겨가며 자화자찬으로 걸어놓는 현수막들을 보면 과연 이 분들이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살랑거리는 바람에 꽃망울이라도 다치게 할까봐 이슬보다도 작은 안개비로 내던 날 아침에 늘 지나다니던 큰길가 대학병원 앞에 현수막이 한 장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스쳐 지나는 차창 밖으로 바라본즉 "경축 장례식장 리모델링" 이라 적혀있었다. 지나친 차창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바라보면서 저절로 풋하고 웃음이 나왔다. 장례식장을 고친 것을 알리는 것은 상업적 목적의 하나이기는 하겠지만 거기에 "경축"은 어떤 의미일까. 하기야 요새는 결혼축하화환에도 경축, 재개발인가 받았다고 경축, 무슨 조합 결성하였다고 경축 등등 경축이 난무하는 때이고 경축의 사전적 의미가 경사를 축하한다는 뜻이니 장례식장을 고치고 그것을 축하한다고 한다면 못쓸 이유가 있을까만 그래도 이런 현수막의 경축은 좀 너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선거가 끝나면 선거관련 현수막은 철거 되겠지만 또 다른 현수막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당선된 사람은 당선사례 현수막, 떨어진 사람은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현수막, 정당에서는 국민의 승리 어쩌고 하는 현수막 등등. 그러나 이러한 행사들이 끝나고 나면 모든 현수막들은 설치 당사자들이 깨끗이 철거를 하여야 할 텐데 매번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현수막이 살아지고 난 자리에 흉물스럽게 바람을 타고 휘날리는 무수한 현수막 끈들이다. 철거하는 사람들이 끈까지 모두 철거를 해야 함에도 그저 편하게 철거하느라 긴 낫 같은 것으로 줄을 베어 현수막만을 가져가는 바람에 무수한 잔재가 그대로 남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짐을 지우는 것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한 몸 바치겠다고 하시는 분들 이번 선거에서는 승패를 떠나서 자신의 현수막은 자신들이 깨끗이 철거해 주시기 부탁드린다. 그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첫 걸음이 아닐까.
2012년 3월 30일
* 30일은 뭐라 부르나 모르겠네. 스무여드레, 스무아흐레 그 다음은? 아시는 분 댓글
바랍니다. 음력은 그믐, 말일일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