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스피노자의 사과나무

korman 2012. 5. 24. 19:43

 

 

 

스피노자의 사과나무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고 하더니만 인터넷 연하장을 보내겠다고 이 그림 저 그림을 골라 짜깁기를 한지가 어느새 반년이 다 가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의 제약을 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세월의 흐름을 재촉하기도 하였지만 이제 충분한 나이가 들었음에 좀 천천히 갔으면 하는 마음인데 눈뜨고 나면 저녁노을이 보인다. 시점과 종점도 없으면서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사람들 가슴에 허전함을 안겨주는 게 세월이기도 하다. 세상에 공존하는 모든 생명체 혹은 사물 어느 것에나 평등하게 흐르는 게 또한 세월이겠지만 생각해 보면 각기 태어나고 죽는 날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날이 그들 세월의 시점과 종점이 아니겠는가.

 

 

하늘에 구름 흘러가는 것이 세월 같다고나 할까. 난 가끔씩 커다란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담아 하늘이 보이는 창이 있는 벽에 한쪽 어깨를 기대고 서서 하늘 가녘에 걸려있는 구름을 향하여 돌진하는 고속도로의 자동차 행렬을 바라보며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생각할 때가 있다. 그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였다는데 난 내 세월의 종점이 그보다 좀 길게 3일 후쯤이라면 남아있는 3일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을까가 아니라 무엇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지나온 세월에 무엇을 못한 아쉬움 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것을 3일 후부터 하지 못할 것에 대한 아쉬움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가 지구의 종말과 사과나무를 통하여 절망과 희망을 이야기 하였다면 나는 절망이라는 생각 없이 3일간 어느 바닷가에 앉아 3일 후의 아쉬움을 초월하여 허전한 마음을 큰 바다로 채우는 평온함을 가질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데 더 아쉽고 덜 아쉬운 것이 있을까만 큰 잔의 커피가 다 없어지도록 생각하여도 내게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인지 결론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나에게는 아직 긴 세월이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마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반면에 세상에 알려진 다른 이들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사과나무를 놓고 현대의 학자들은 스피노자가 아니라 마틴루터라는 사람이 한 이야기라는 주장을 내 세우기도 한다는데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이런 학자들에게는 누가 한 이야기인지 밝히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을까, 산처럼 큰 재산을 쌓아 놓고도 더 갖겠다고 형제끼리 법정다툼까지 불사하는 사람들은 법원 판결이 그 때까지 나지 않으면 그게 아쉬움으로 남을까, 여의도에서 국민을 생각한다고 연일 큰소리치는 사람들은 금배지를 못 가져가서 그게 아쉬움이 될까 등등.

 

 

빈 잔에 새로 내려진 커피를 채우면서 그저 생각한 아쉬움이라는 것이

친구들과 더 이상 술잔을 기울이지 못하겠구나 하는 거

이제 한창 귀여움을 떠는 손주를 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거

마누라와 더 이상 같은 곳에서 자지 못하겠구나 하는 거

그리고 세월이 다 한다는데 난 그저 이런 거 밖에는 생각나는 게 없을까 하는 거.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들도 내게 흘러가는 나머지 세월의 길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한 10년쯤 후에는 좀 더 많은 아쉬움이 생각나기를 바라지만 지금 보다도 모자라는 생각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나와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의 아쉬움은 과연 무엇일까?

 

 

2012524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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