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6월이 시작되던 그 다음 날인가 어디서 집수리를 하는지 콘크리트를 가는 소리, 못을 박는 소리 등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아파트의 구조상 누군가가 집수리를 하면 그 요란한 소리는 벽을 타고 혹은 통로를 타고 돌아다니며 소음의 근원지에서 비록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 할지라도 같은 동에 있는 집들에게 영향을 주어 소음에 민감한 이웃들의 이마에 주름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 소음은 앞뒤로 가로막고 있는 다른 동에 부딪혀 메아리를 만들고 결국 그 주위에 있는 다른 동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소음의 까칠함을 선사한다. 아침나절부터 내 집에 들리는 소리가 크더니만 그 소음의 진원지는 나와 같은 줄에 사는 1층집이었다. 승강기에서 내리며 살면서 집수리를 하려면 무척 힘들겠다고 생각하였는데 집으로 돌아오며 다시 보니 빈집이었다.
집에 돌아와 집사람에게 "아래층 수리하는걸 보니 이사갔나봐?" 하고 물었다. 그 집에 할머니가 계셨는데 집사람에게 살갑게 대해 주시고 아이들도 무척 예뻐하셔서 가끔씩 그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던 터라 그리 물었는데 집사람은 요 며칠 할머니를 뵙지는 못하였지만 이사 간다는 이야기는 없었다고 하였다. 그 동안 내가 집사람에게서 귀동냥으로 들은 것은 아들, 며느리가 모두 밖에서 일을 하는 터라 지금 학교 다니는 손주들을 모두 할머니가 키웠으며 지금도 늘 안살림은 할머니께서 하고 계시고 아파트 할머니들이 모이는 정자에서도 다른 분들과 잘 어울리신다고 하였다. 집사람도 손주를 돌보고 있지만 할머니들 틈에 끼일 나이는 못되고 또 남의 집 사정을 그리 알려고도 하지 않는지라 그저 가끔씩 정자를 지나치며 인사를 나누는 할머니들로부터 주워들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밖에 나갔던 집사람이 집수리하는 집의 이야기를 가지고 들어왔다. 정자를 지나며 어느 할머니께 "우리 아랫집 할머니 댁은 이사 가셨나 봐요? 집수리를 하던데." 라고 말을 흘렸더니 거기 앉아 계시던 모든 할머니께서 혀를 끌끌 차시며 한 마디씩 거드시는데 모두가 그 집 아들 내외에 대한 섭섭한 이야기뿐이었다고 하였다. 며칠 전 심장수술을 받으시던 할머니가 깨어나지 못하셨는데 산소에 모시고 온 그 다음날부터 수리를 한다고 하였다. 자식들 다 길러주고 살림살이 도맡아 해 주시던 어머니의 자취를 그리 쉽게 버리려 하였는지 돌아가시자마자 그리 한다고 하였다. 아들, 며느리 그리 보지 않았는데 다시 보아야겠다고도 하였다. 그 소식을 가지고 온 집사람도 어찌 어머니 떠나시자 마자 그리 할 수가 있을까 한다. 그 말을 들은 나 또한 첫마디가 "모르긴 몰라도 아무리 집수리를 하고 싶었다 한들 적어도 어머니 49재나 지내고 하지 자식 된 도리로..."였다. 내 생각이 이러한데 정자에서 같이 어울리시던 할머니들의 마음이야 오죽하였을까? 모두 비슷한 세월을 사신 분들인데.
아이들이 집에 왔기에 그 소식을 전하였다. 그런데 아이들 이야기는 나와 좀 달랐다. 할머니가 그리 되실 줄 모르고 사전에 집수리 계획을 세우고 업자와 날짜를 다 잡아 놨는데 그리 되시어 어쩔 수 없이 진행하였을 거라고 하였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요새는 모든 게 예약제고 시일을 두고 진행을 하는데 한번 예기치 않은 일로 예정을 지나치면 빠른 시일 내에 일을 다시 진행하는데 여러 여건상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에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 그 말이 나에게는 왜 좀 섭섭하게 들렸을까? 집수리 않는다고 그것 때문에 누가 또 금방 숨넘어가지 않는데 좀 시일이 걸리더라도 다시 예정을 잡아서 하면 될 것을 그리도 빨리 어머니의 체취를 치워 버리고 싶었나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아무리 그래도 야 그건 좀 너무했다. 좀 나중으로 연기했어야 하는 게 도리 아닐까?" 하고는 보통 두 번에 나눠 마시던 소주잔을 단번에 비우고는 식구들의 즐거운 자리를 위하여 내 스스로 얼른 화제를 우스갯소리로 바꿨다. 술잔을 비우는 아들을 바라보시는 사진 속 내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2012년 6월 16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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