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비 개인 아침의 베이비 세일과 키즈

korman 2012. 7. 3. 18:58

 

 

 

 비개인 아침의 베이비세일과 키즈

 

오랜만에 비가 내려 마음 한구석이 시원하고 좀 가벼워 졌음을 느낀다. 농촌에 살지도 않고 꼭지만 틀면 물이 펑펑 쏟아지는 아파트에 사는 내가 비가 왔다고 무더위를 식혀 주니까 좋은 것 외에 마음까지 가벼워질 것은 무엇인가 생각 되지만 그래도 연일 뉴스에서 갈라진 논바닥과 타들어가는 밭작물들 그리고 속살이 다 들어난 저수지들을 보면서 그리 펑펑 쏟아지는 물을 쓰고 사는 내가 하늘을 매일 올려다보는 농촌 사람들에게 좀 미안했었는데 그 마음 한켠이 내리는 비에 적셔진 모양이다.

 

 

햇빛이 비쳐지는 주말의 아침은 밤새 내린 비에 한 꺼풀이 벗겨져 길거리마저도 청량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그런 아침거리에서 무심코 내다본 차창 밖으로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새 간판하나가 청량한 아침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좀 떨어진 아파트 건너편 상가에 하늘색 바탕에 흰 글씨로 "베이비 세일 BABY SALE"이라고 내건 간판이 그리 산란한 마음을 만든 것이다. 거리를 향한 가게의 창에는 아기용품들이 잘 진열되어 있었다. 이런 아기용품을 다루는 상점이니 상호를 그리 정하였구나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그게 단어 그대로 번역하면, 영어 사용권에서도 같은 표현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기를 세일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걸 보고 내 마음만 산란할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기를 아끼는 좀 신중한 표현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눈에 잘 뜨이지 않던 것이 큰 맘 먹고 남이 많이 안 가진 것을 장만 하였을 때는 다른 이들도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많이 뜨인다. 이것도 어찌 보면 같은 경우인가. 차타고 가는 내내 베이비 세일이라는 간판을 생각하며 바라보아서 그런지 지나치는 간판들 중에 수많은 간판들에 "키즈" 이름이 걸려있다. 키즈카페, 키즈잉글리쉬, 키즈미술, 키즈피아노 등등. 아이들을 상대하는 업종마다 키즈가 안 붙은 것이 없을 정도다. 하기야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박세리 키즈, 박지성 키즈, 김연아 키즈 등등. 운동선수들의 명칭에도 키즈는 빠뜨려지지 않으니 그걸 뭐 이상하다고 할까마는 언제부터 우리 아이들이 키즈가 되었을까 생각하니 이것 또한 마음 한켠을 산란하게 한다. 요새는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식에 대한 질문에 Child나 Children 대신에 Kid나 Kids를 사용하고 있으니 일종의 언어패션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내가 다니던 회사에 출장을 자주 오던 미국인이 있었다. 나는 그로 인하여 실전 영어회화에 접할 기회를 가끔씩 갖곤 하였는데 어느 날 내가 그에게 물었었다. How many kids do you have? 그러자 그는 대답대신 대뜸 나에게 kid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내 딴에는 최신 영어라 해서 배워 한 번 써먹어 본 것인데 본토에서 온 사람이 그런 단어는 쓰지 말라니. 그 당시 우리나라의 많은 회화 책에서 기본적으로 그리 가르치고 있었는데 난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단어는 짐승의 새끼를 가리켜 주로 사용하는 말이고 그저 일부에서 슬랭으로 사용하는 말이니 우리들의 귀한 아이들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합당한 일이 아니겠냐고. 요새는 미국의 구어에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전에 나와 있지만 그 말의 일반적 의미는 그의 말대로 새끼 염소나 어린 짐승으로 되어 있다.

 

그 때는 생각이 모자랐었는데 그 후 kid의 의미를 생각하여 본 즉 우리의 할머니들도 가끔씩 손주들을 보며 예쁘다는 의미로 "아이구 내 강아지" 혹은 "아이구 내 새끼" 등의 표현을 하고 있는 고로 아마도 미국에서도 노인들 사이에서 그리 표현되던 것이 슬랭화 되면서 젊은 사람들에게도 일반화 되었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영어의 영향으로 현재는 너무나 당연하다 싶을 정도의 키즈 유행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하여도 미국도 아니고 우리의 아이들을 가리켜 키즈로 계속 부르는 것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세상의 흐름을 선도하는 방송에서도 2세를 주니어로 노인을 실버로 부르는 세상이니 뭐 그런 것 가지고 마음 산란하다고하냐 물으면 대답이 생각날까만.

 

2012년 7월 1일

하늘빛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요일 밤에 흐르는 눈물  (0) 2012.07.29
브리지트 바르도는 어디에  (0) 2012.07.17
어찌 우리 잊으랴  (0) 2012.06.25
집수리  (0) 2012.06.18
칸느의 태극기  (0) 2012.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