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불신지옥

korman 2012. 4. 25. 19:12

 

 불신지옥

 

주말의 이른 아침이라고 하면 몇 시 정도라 말 할 수 있을까? 주말을 위하여 아침 일찍 서둘러 준비하여야 할 계획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말의 아침은 10시 이전을 이른 아침이라 할 수 있으려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직업이 있건 없건 나이가 어리건 많건 간에 모두가 여유롭게 느껴지는 날이 주말이고 보면 나들이 계획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말은 좀 늦잠을 자도 되고 아침을 거르고 점심 겸 브런치라는 것도 먹어보고 세수하는 것도 좀 미룰 수 있으며 주중에 묶여있었던 통념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날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아마도 브런치를 먹는 시간 까지는 이른 아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개념에서 주말 아침에 가끔씩 내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들은 너무 일찍 남의 아침 자유 시간을 방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 아침 세수도 하지 않아 자고 일어난 머리가 하늘로 치솟아 오른 것도 채 정리하지 못한 지난 토요일의 이른 아침, 9시가 되기도 전에 초인종이 울린다. 인터폰이 있음에도 누군가는 물어보지도 않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 가끔씩 주말에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확인도 하지 않고 문부터 열어젖힌 것을 후회하였지만 어쩌랴 내 몸은 벌써 열린 문과함께 집 밖으로 반은 나가버린걸. 문이 열리자마자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 서 있던 큰 핸드백을 드신 아주머니 두 분이 좋은 말씀이라며 유인물을 내미시며 잠시 얘기 좀 하자고 하신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라 정중히 사양하며 아직 이른 시각인데 이런 일로 내 아침을 깨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는 문을 닫았다. 물론 유인물은 닫치는 문틈사이로 날아들었다. 경험이 별로 없었을 때는 매번 열었었다. 그러나 그런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비디오폰이나 문에 나 있는 조그마한 렌즈구멍으로 누군가 확인을 하고는 이런 경우 더 이상 문을 열지 않았었다. 그러자 이 분들도 문이 잘 열리지 않자 눈에 뜨이지 않도록 비디오폰 카메라에서 비켜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서 계시고 누구냐는 물음에 대답을 잘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확인이 되지 않으면 문을 열지 않는데 지난 토요일에는 생각 없이 문을 열었었다. 집안으로 들어온 유인물을 집어 들며 한두 번도 아니고 주말 이른 아침에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그 분의 뜻은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시간에 전철을 탔다. 오후의 전철에는 주말 나들이 하는 사람들로 좀 복잡하다. 늘 겪는 것이지만 전철 낮 시간대에는 잡상인들이 많이 탄다. 한사람이 다른 칸으로 옮겨가기가 무섭게 또 다른 상인이 나타난다. 어떤 역사에는 아예 역사 바닥에 좌판을 벌리는 사람들도 있다. 전철 안이나 역사에서는 승객들에게 잡상인들의 물건을 사지 말고 역무원에게 신고하라고 수시로 방송을 한다. 그러나 차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야 자꾸 옮겨 다니니 그렇다 치더라도 역사에서 좌판을 깔고 고래고래 소리까지 질러대는 상인들은 역무원들이 몰라서 단속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잡상인 하나가 지나가자 손에 책 한권을 든 사람이 나타나 또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안 믿으면 모두 지옥에 간다고 믿고 죄를 용서받으라고 한다. 그 분은 책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유인물을 던지고 큰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젊은 엄마에게는 엄마 젖을 먹이지 않고 소젖을 먹이고 있으니 아이들이 못돼진다고 호통을 치고 보다 못해 좀 조용히 가자고 언짢은 말씀을 하시는 노인에게 믿지 않으면 말하지 말라고 아주 속된말로 노인을 윽박질렀다. 사람들의 표정은 자꾸 찌푸려지는데 이 사람은 이쪽 끝에서 저 쪽 끝으로 사람들 틈을 마구 헤치며 한참을 떠들어대다 다른 칸으로 옮겨갔다. 줄곧 불신지옥이며 믿고 용서받으라는 그 말만을 반복하며.

 

그가 지나간 후 이리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도 그분의 뜻은 아닐 텐데 그 분의 좋은 말씀을 전달하는 방법이 이런 부정적인 방법 밖에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한 동안 혼자 좀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죄라면 죄가 되는 일을 행했었을 수는 있겠지만 나 자신이 상식과 도덕과 윤리와 법률에 입각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노력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차 안에서 떠들던 사람은 줄곧 그 분을 믿지 않으면 무조건 지옥에 가니 믿고 용서 받아 천당에 가라 하였다. 그럼 그 분께서는 죄의 경종을 따지지 아니하고 무조건 자신을 섬기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낼까. 그리고 인간의 사후를 심판하는 분이 오직 그 분 한분뿐이실까. 이제는 좀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등등. 그러나 내가 내릴 곳이 가까워 오자 난 사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그 분을 믿고 죄를 용서 받으라는 말을 줄곧 하였다. 그러나 그 분의 참된 가르침은 당신을 믿어야 죄를 용서 받고 천당에 간다가 아니라 "당신에게 용서를 구하기에 앞서 인간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저지른 죄를 스스로 먼저 모두 용서하라 그래야만 너도 용서 받을 수 있으리라" 라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차안을 휘젓던 그 사람은 내내 믿고 용서를 받으라는 말만을 외쳐댔을 뿐 그 분의 말씀을 따라 나에게 죄지은 모든 이들을 먼저 용서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떤 자리에서건 정치나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고 다툼의 발단이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 글에도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댓글을 달지 모르겠다. 어떤 댓글이 달릴지 모르겠지만 이 글에 대한 비난성 댓글은 달리지 않기를 바란다. 이건 사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야하는 현실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쉬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012년 4월 스무 사흗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