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할아버지는 왜 머리가 없어요?

korman 2013. 6. 27. 14:51

 

 

 

할아버지는 왜 머리가 없어요?

 

거실 바닥에 앉아 신문을 넓게 펼쳐 놓고 칼럼 하나에 정신이 빠져 있는데 요새 한창 궁금한 것이 많아 하루 종일 “왜”를 입에 달고 있는 큰손녀가 일어서서 내 옆을 왔다 갔다 하더니만 갑자기 “할아버지”하고 부른다. 이 녀석이 또 무얼 물으려고 하나 생각하는 순간 “할아버지는 왜 머리가 없어요?”하고 묻는다. 늘 자기보다 큰 키의 할아비 머리를 올려다만 보다가 내가 바닥에 놓인 신문을 읽으려고 앉아서 허리를 끼울이고 있는 동안 속알머리 없는 내 머리를 위에서 내려다보고는 그게 이상하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한다는 이야기가 “할머니도 많고 아빠 엄마도 많고 나도 많은데 왜 할아버지만 없어요?”라고 조금 톤을 높여서 재차 묻는다. 자기 딴에는 할아비의 머리칼 없는 머리 위가 비정상적이라 생각하였는지 정상적인 사람들을 거론하면서 할아비의 상처를 건드린다. 참 대답이 난감하다. 이제 말문이 터져 궁금하던 것을 말로 물어보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 아이에게 과학적이고 의학적 해답이 필요한 대머리의 문제에 대하여 어찌 대답하여야 하는지 참 난감한 질문을 받았다 생각하는 순간 엄마가 들어와 부르는 바람에 할아비의 난처한 순간이 모면되었다.

 

언젠가는 같은 질문을 또 할 테니 이에 적절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다른 물음에도 늘 대비태세를 가져야 하겠지만 순간 내가 생각한 것은 대답을 어찌해야 하나와 더불어 ‘어찌 그리 순식간에 말을 잘 할 수 있나’였다. 불과 몇 달 전 까지만 하여도 할아버지 소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부지’라고 부르던 녀석이 이제는 할아버지를 뛰어넘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수동태, 능동태 할 것 없이 자유자재로 하는 것이 대견한 것이 아니라 참 신기해 보였다. 물론 나도 내 아이들을 손주들이 자라는 단계를 거치며 키웠다. 그러나 그 때는 젊었었고 출장이 잦아서였는지 이런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손녀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젊었을 때는 느끼지 못하였던 사소한 일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기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지금은 기억하는 것 보다 자꾸 잊어버리는 것이 많은 남의나라 말 때문이다. 내가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때는 12살이 넘어서였지만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지만) 단어 하나를 외우는데도 무척 힘들었고 그걸 조합하여 문장을 만드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였으며 그나마 지금의 손녀 정도 까지만 이라도 말을 알아듣고 하는 데는, 노력이 많이 부족하기는 하였지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지 15년쯤 지난 후였다. 그런데 이 녀석은 오늘 만 세 살을 넘기는데 별 이야기를 다 한다. 세월의 단순비교는 의미가 없고 아무리 모국어로서의 강점을 생각 하더라도 이토록 사리에 맞는 문장을 구상하여 입 밖으로 내 보낼 수 있도록 하려면 적시적소에 맞는 많은 단어를 기억해야하고 그걸 조합하여 문법에 맞는 문장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또한 문장을 말로 바꾸어 소리를 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머리에 넣고 상대방에 자기의 의사를 충분히 알아듣도록 전달하는 데 태어나서 2년 6개월 ~ 3년 정도면 된다니 이 아니 신기한가. 아마도 뱃속에 있을 때부터 언어를 위한 기본 요소들이 자동으로 입력되어 그 나이가 되면 말을 자동으로 만드는 머릿속 슈퍼컴퓨터가 작동하는 모양이다.

 

10여년을 영어 공부하고 이제 손주의 말을 신기해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나마 이국인들과 이 녀석 만큼이라도 의사소통을 하려면 뇌의 손상을 막아야 하는데 큰 손주에 이어 작은 손주도 걸핏하면 “하부지 뭐해요”하고 있는지라 이제 이 두 녀석의 질문공세를 헤쳐 나가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짧은 영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보다는 손녀들의 질문에 합당한 답변을 연구하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느꼈던 험난한 길이 보인다. 내가 손녀들 나이 때 보다는 사뭇 다른 답변이 필요한 세상이지 아니한가. 

 

2013년 6월 26일

큰손녀의 만 세 번째 생일 날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