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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 껍질만 쳐다보다 돌아온 3일간의 여행

korman 2013. 5. 6. 13:13

 

 

 

 

 

 사탕 껍질만 쳐다보다 돌아온 3일간의 여행

 

아침 6시 20분에 모이라고 하여 약속시간을 10여분 남기고 모이는 장소에 도착하였지만 가이드는 마음이 급했는지 먼저 도착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벌써 한참이나 설명을 진행하고 있었다. 내 이름을 대자 잽싸게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여행계약서’이니 서명하라고 한다. 시간이 없으니 읽는 것은 나중에 하고 서명부터 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체크인 할 줄 아냐고 묻고는 스마트폰 가지고 왔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약스케줄을 찍어 체크인 카운터로 가 보여주고 체크인 하라고 한다.

 

계약서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읽어 보지도 못하고 전화기를 꺼내 드는데 뒤이어 온 사람이 지금 오사카에 큰 지진이 나서 피해가 크고 공항이 폐쇄되었다고 뉴스에 나왔다는데 갈 수 있냐고 가이드에게 묻는다. 순간 모여 있던 사람들이 가이드를 향하여 웅성거리자 마지못해 자신이 지시 받은 것은 일단 체크인을 하고 게이트에서 대기하라는 것뿐이라 하였다. 그 시간 공항에서 지진과 관련한 안내방송도 없고 주위를 둘러봐도 일본으로 향하는 모든 카운터에서 정상적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 뭐 특별한 일은 없는 듯 하였지만 그래도 오사카로 향해갈 우리 팀 모두가 불안해하자 나를 바래다주러 나간 큰 이이가 스마트폰을 끄집어내어 보더니 오사카는 아무런 피해가 없고 간사이공항도 정상적으로 운영된다고 알려준다. 체크인 카운터로 향하며 순간 나를 포함하여 거기 모인 20명이 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약스케줄을 찍으려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있었거늘 나이든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왜 젊은이들까지 뉴스를 찾아볼 생각은 않고 걱정만 하고 있었을까 픽 웃음이 나온다.

 

엄마 환갑일과 부모 결혼기념일이 가까운지라 그 핑계로 아이들이 제주도 여행을 보내준다 하기로 제주도 다녀 온지는 몇 년 지나지 않았고 어미가 일본을 보고 싶어 하며 일본화 가치가 하락하여 제주도 여행 경비에 조금만 더 보태면 저가항공 패키지여행으로 2박3일 오사카, 나라, 교토에 다녀올 수 있으니 그리하겠다고 하고 나선 길이었는데 이른 아침 공항까지 와서 지진 때문에 일이 무산되나 싶어 출발부터 좋은 마음이 아니었지만 다행이 별 일 없이 간사이공항에 도착하였다. 기실 패키지여행이라는 것이 예상인원이 채워지지 않으면 예약이나 선급금에 관계없이 예정 일주일 전에 가부가 결정되는 터라 예약금을 물고 돌려받기를 이미 두어번 실시하였고 이번에 못가면 언제 다시 가능한 시일이 올까 몰라 처음 패키지여행을 하는 나로서는 남의나라 지진 소식이 참 난감하게 다가왔으나 간사이공항의 평온함은 어디서 그런 일이 있었나 할 정도로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입국심사대에서 외국인은 얼굴촬영과 지문을 찍느라 입국심사가 늦어지고 있었는데 내 앞에서 심사를 받고 있는 젊은 여인이 지문을 찍고 또 찍으며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통에 내 차례가 오기까지는 한참이나 걸렸다. 그런데 내 손가락도 그 기계에 낯이 설었는지 집사람을 심사대에 이르게 하는데 나 또한 긴 시간이 필요하였다. 다른 줄은 잘만 줄어드는데 아마도 내가 섰던 심사대 기계의 감지 능력이 좋지 않은 듯 보였다. 좀 기다려 줄 만한 시간이었거늘 이 한국인의 조급함이 심사대라고 하여 예외로 생각하지 않은 탓이겠지. 그런데 가방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먼저 나온 가이드가 누군가를 찾아 열심히 뛰어 다닌다. 일행 중 두 팀이 어디로 살아졌다는 것이다. 전화로 한국 여행사에 연락을 하고 터미널 안으로 밖으로 찾아 헤매더니만 어찌어찌하여 찾기는 찾았는데 그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해외에서의 2시간 가까운 그 귀중한 시간을 터미널에서 허비 하여야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 모이는 장소를 몰라서 그런 게 아니고 다른 곳에서 자기 시간을 보냈다는데 일행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한 곳에서 잘못 되면 머피의 법칙은 어찌 그리 잘 맞는지 아침 일찍 도착한 간사이 공항이거늘 공항에서 늦게 출발한 시간 그 이상으로 교토로 이동하는 내내 버스는 길바닥에서 헤매고 우리는 점점 늘어지는 시간만큼 스케줄을 맞추느라 그저 왔오갔오 하고 뛰어다니다 하루를 마감하였다. 가이드는 오사카성 앞에서 증명사진 한 장 찍기가 무섭게 버스에 오르라 하고 그 성 내부에 들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무엇으로 어찌 임진왜란을 일으켰는지 보고자 하였던 내 생각은 그저 나만의 생각이었음을 느껴야 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호텔로 왔으나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쉽게 들지 못하는 이 성미가 어디로 갈까. 엎치락뒤치락 하는 사이 시간은 새벽 2시가 넘었는데 응급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고 마이크로 뭐라고 떠들어대며 호텔주위를 주기적으로 돌아다닌다. 출발 전 인천공항에서 지진 소식을 듣고 염려가 되었었는데 같이 잠들지 못하던 집사람이 혹 지진이 났으니 빨리 대피하라고 떠들고 다니는 거 아니냐한다. 새벽 2시에 사람들 잠 못 자게 저리 사이렌을 울리면서 떠들고 다니는 것은 이상하지만 호텔에서도 아무 말 안 하고 일본말 잘 하는 가이드에게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으니 그런 다급한 경우는 아닌 것 같지만 새벽 2시에 반복적으로 울리는 사이렌과 확성기소리는 일본어에 귀머거리 신세인 우리 부부를 더욱 잠 못 들게 하였다. 그러는 사이 시계는 3시를 넘기고 이제 좀 선잠이 들려나 하는 순간 난데없는 까마귀가 계속 울어댄다. 우리는 까마귀를 흉조로 생각하여 그 울음소리에 재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길조로 여긴다 하니 지진과 연계시키지 말자고 생각하였지만 사이렌에 이어 새벽 3시에 울어대는 일제 까마귀에 일본에서의 첫 밤엔 포근히 잠들 여유가 없었다.

 

2일차 되는 날은 온 종일 자유 시간을 준다하기로 인터넷을 뒤져 준비한 자료를 끄집어내었다. 일본은 처음인 집사람을 위하여 최대한의 개인적인 시간을 벌어주고 일본의 역사를 간직한 교토와 나라 그리고 오사카를 늘 경험하고 싶었던 내 시간도 가져야하므로 내 딴에는 지하철을 위주로 한 최단시간 내에 패키지에 들어있지 않은 일본 문화와 역사 유적을 보고 집사람에게 오사카의 번화가도 경험하게 하는 시간표를 마련하였는지라 아침 일찍 서둘러 찾아간 곳이 백제인이 만들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사찰, 시텐노지(四天王寺)였다.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경내 건물들과 산만한 가람배치 그리고 종은 볼 수 없는 폐쇄식 종각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사찰 분위기가 우리나라 사찰이 주는 치유성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느낄 즈음 우리말로 들리는 유창한 역사적 설명에 고개를 돌리니 나이 지긋하신 우리 스님 한분이 신도인 듯한 몇몇 분에게 사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계셨다. 한참을 훔쳐듣고 있다가 인사를 하였더니 이 스님 느닷없이 나에게 무슨 띠냐고 묻는다. 그러나 알려드린 띠를 나이로 환산하는데 한참을 생각하시는 고로 그냥 나이를 다시 알려드리니 성씨가 무엇이며 본은 무엇이고 무슨 파에 몇대손이냐까지 묻는다. 훔쳐들은 대가로 응대를 해 드리기는 하였으되 남의 나라 절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그 스님은 나의 그것이 왜 궁금하였는지 참 나도 궁금하였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3일차, 가이드는 나라로 이동하여야 하는데 출근 시간대라 차가 밀리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며 아침 먹는 시간에 빨리 차에 오르라고 성화다. 아무리 일정이 늦어지기로서니 아침도 제대로 못 먹어서야 어찌 여행을 하냐고 투덜댈 시간도 없이 버스는 출발하고 그 덕분에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라는 도다이사(東大寺) 대불전에 계시는, 백제인이 주조하였다는 나라대불을 뵙고 가이드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느긋하게 노니는 사슴들과 섞여 집사람과 증명사진 한 장 남기고 시내 면세점과 온천에 잠시 들른다며 면세점 상품설명에 한창인 가이드를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면세점에서 물건을 사든 말든 그 주어진 시간에 나와 집사람은 한가로이 길거리 산책을 즐기고, 공항으로 가기 전 잠시 들른 온천에 구경이나 하고 나오라고 집사람을 들여보내고는 멍하니 휴게실의 TV를 응시하는데 특집방송이라고 나오는 게 한반도의 긴장과 북한의 미사일 위협소식이다. 다행이 한자가 섞여있는 자막이 나오니 내용이 짐작은 가지만 일본 TV를 볼 때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건 프로그램마다 출연진들의 과도한 호들갑이 좀 역겹다는 것이다. 이것도 내 개인 감정이나 하나의 문화적인 차이겠지만 참 내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가이드에게 그녀의 해박한 역사지식으로 하여 많은 걸 배웠음을 이야기 하였다. 비록 사탕 맛이 어떤지 껍질을 까 보지도 못하고 겉만 쳐다보다 돌아오는 길이지만 버스 안에서 계속된 그녀의 한반도 도래와 일본의 관련 역사에 대한 설명은 두꺼운 한일 역사책을 3일에 걸쳐 읽은 기분을 갖게 하였다. 또 저가 항공은 어떤지 늘 궁금했는데 그것도 경험했고 패키지여행은 어떤 것인지도 알았으니 그것으로 짧고 섭섭한 이번 여행을 정리하였다.

 

인천공항청사를 나와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려는데 가방이 있다고 못 태워준다는 버스기사의 말이 뒤 따른다. 공항에 오는 버스가 가방이 있다고 승차 거부를 해? 7년 연속 세계 제1의 공항으로 뽑혔다는 광고가 무색하다. 역사를 왜곡하거나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우경화에 골몰하는 일부 몰지각한 일본인들을 볼 때마다 왜x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승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은 일본에서 좀 배웠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큰 아이가 마중 나오겠다는 걸 마다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다.

 

2013년 4월 30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