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혼자 사는 연습인가

korman 2013. 4. 6. 16:16

 

 

 

 

 

혼자 사는 연습인가

 

언젠가 길거리 상점가를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넥타이를 발견하고 가격까지 물어보고는 그걸 살까 고민하다가 그냥 나온 경우도 있고 출장에 동반하는 가방이 하도 오래돼 손잡이나 바퀴가 망가져 새로 장만하려다 국내에서 사도 중국제를 살 텐데 마침 홍콩 출장길이 있어 헌 가방 가져가 새것으로 바꿔오지 하고 갔다가 그냥 온 경우도 있다. 모두가 마누라가 사다 주는 대로 가졌을 뿐 나 스스로 나를 위한 무언가를 사는데 익숙지 않아 물건이 적당한 것인지 제값을 주고 사는 것인지 망설여지기 때문에 그리된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쓴 여행기의 끝 구절에 “내가 마누라 먼저 보내면 혼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글귀였다.

 

굳이 재택근무라고 우길 필요는 없겠지만 그저 남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는 시간에 집 컴퓨터에 앉는 일이 내 하루의 시작이지만 날짜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제 매끼 잘 챙겨먹는 버릇도 없어져 아침은 커피 한 잔으로 때우거나 기분 내키면 계란플라이 하나쯤 만들어 먹는다. 마누라 보다는 내가 먼저 일어나니 평생을 아침밥 차리느라 늦잠 한 번 제대로 자 보지 못한 마누라에게 봉사 좀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계란을 두 개 깨 넣을라치면 껍질이 툭 부서지면서 손을 미끄럽게 하지 않으면 그놈의 계란 껍데기는 왜 그리 부서져 플라이 하는 계란 속으로 들어가는지 봉사는커녕 껍질 씹는 마누라에게서 핀잔 받기가 일수다. 마누라는 계란을 하나씩 양손에 쥐고 깨끗하게 잘도 까 넣던데 난 왜 그것도 잘 안 되는지. 계란플라이 하나에도 또 마누라 없으면 어찌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 마누라와 연애할 때, 그 한창 젊었던 때는 등산도 많이 다녔다. 요새는 산에서 취사가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그 때는 하루등산이라고 해도 모두가 배낭에 한 짐씩 지고가 산에서 밥을 지어먹을 때였기 때문에 누구나 산에 가면 밥 짓고 반찬 만들고 설거지 까지 해야 했는데 그게 무슨 율법도 아니었거늘 또 무슨 신사도도 아니었거늘 여자들과 어울려 가더라도 이 모든 것을 산에서만은 남자들이 담당하였다. 그 당시 나는 대부분 찌개나 반찬 담당이었는데 이 때 산에서 개발한 찌개를 마누라에게 전수하여 지금도 가끔 집에서 만들기도 하거늘 어쩌다 마누라가 외출하고 혼자 재택근무를 할라치면 스스로 차려 먹는 것에 익숙지 않아 그저 뭘 먹어야 하는지 그게 걱정이다. 어떤 TV광고에 곰국 끓이는 장면이 있던데 마누라가 곰국을 끓이기 시작하면 남편은 마누라가 아끼는 강아지라도 안고 있어야 한다던가.

 

요새 각종 미디어 정보 프로그램이나 뉴스에서 퇴직한 나이든 남자들이 요리학원을 메운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예전 내 할머니께서는 벽에 옷을 걸 때 어쩌다 어머니께서 남자 옷 위에 여자 옷을 덧걸면 야단을 치셨고 내 어머니께서는 마누라가 내 출장 가방을 쌀 때 남자의 옷은 양복저고리의 단추가 위로 보이게 접고 옷깃이 가방 손잡이 쪽으로 오게 하여 가방의 맨 윗부분에 넣어야 한다고 하셨고 내가 밥상의 그릇이라도 좀 치울라치면 사내자식이 부엌일에 얼씬거리는 거 아니라고 늘 당신께서 얼른 채 가시곤 하셨다. 그래서 할머니 어머니 계실 때는 계란플라이 같은 것 집에서 해보고 싶어도 못하였는데 지금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고 있는 장면을 두 분이 보신다면 하루 종일 혀를 끌끌 차실 것 같다.

 

나이든 남자들이 요리를 배우는 장면을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또한 배운 요리 실력으로 집에서 가족을 위하여 봉사하는 행복한 장면도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수고한 마누라에게 신세진 것을 은퇴하고 갚는다는 오손 도손 행복한 모습이야 보기 좋지만 아울러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지금 인생을 연습하나 싶어서 조금은 편치 않은 마음도 한켠에 자리한다. 아직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 수명까지 살려면 한참이나 남은 인생이지만 살다보면 마누라 없이도 버텨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혼자 사는 연습도 그 요리실습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부질없는 생각으로 또 하루를 마감한다.

 

2013년 4월 5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