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박스갈이

korman 2013. 9. 21. 12:45

 

  

 

박스갈이

 

명절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제철과일을 한 상자씩 보내주는 젊은 친구가 있다. 이번 추석에도 큰 나주배 한 상자를 우체국 택배를 통하여 보내왔다. 젊은 친구이니 언제나 자신이 물건을 직접 보고 사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늘 온라인을 통해 구매하여 보내주고 있다. 쇼핑몰에 나와 있는 사진을 보고 주문하니 보내는 사람은 사진에 버금가는 물건이 배달되겠지 하는 믿음뿐 실지로는 어떤 상태의 물건이 배달되었는지 받는 사람이 알려주기 전에는 진작 본인은 잘 모른다.

 

지난번에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커다란 사과를 보내왔었다. 각각의 사과에는 황금색 넓은 띠까지 둘러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소비자의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상자 속 사과의 2/3 정도에는 손가락 넓이 하나정도의 푹 패인 상처가 그 찬란한 황금색 띠 아래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보내준 친구에게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었을 뿐 사과의 상태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 마땅히 상태를 알려서 다시는 그런 쇼핑몰을 이용하지 않게 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알면 그 친구가 얼마나 민망해 할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번에 도착한 나주배 상자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인증 마크도 찍혀 있었고 생산자의 주소 전화번호 등 품질을 보증하는 조치가 박스 겉면에 다 기록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박스를 싼 보자기를 풀면서 품질에 대한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역시 2/3 정도에 볼펜으로 그은 듯 한 검은 줄이 두서너 줄씩 겉면에 걸쳐있었다. 이번에도 보내준 친구에게 그저 고맙다는 인사는 하였지만 그 상태는 이야기 하지 못하였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상태의 배가 보내졌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스러움이 있었지만.

 

사진을 찍어 박스에 표기되어 있는 생산자의 휴대전화로 보내주고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로 판단하건대 60은 훨씬 넘었을 것 같은 여자분이 전화를 받았다. 내용물에 대한 상황을 설명하기도 전에 그분은 이미 다 알고 계신 듯 딱 끊어서 한마디로 그거 “박스갈이요.” 하였다. 내가 언뜻 못 알아듣는 듯 하니 그 분은 공판장에 제대로 된 상품을 납품하였는데 유통과정에서 상인들이 자신의 박스를 이용하여 내용물을 바꿔치기 한 것이라 했다. 그리고 더하여 내가 전화한 날만 벌써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수차례 전화를 걸어와 해명하느라 할 일을 못했다고 하소연도 하였다. 나도 언젠가 그 ‘박스갈이’라는 것에 대하여 방송에서 들은 바 있어 더는 이야기 하지 않고 어디 행정당국에 수사의뢰가 안 되냐고 물은즉 추석 연휴가 끝나면 어디 군청이나 경찰에 가서 이야기를 해야지 못된 짓은 상인들이 하는데 왜 생산자가 욕을 먹어야 하는지 참 속상하다고 하였다.

 

가끔 뉴스를 보면 특정 수산물이나 농산물이 과잉생산되어 산지에서는 그냥 내버리던가 아니면 생산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상인들에게 넘기고는 한숨짓는 농어민의 모습이 소개된다. 그럴 때 마다 집사람에게 그런 농수산물에 대한 동네 시장현황을 물어본다. 그러나 시장에 다녀온 집사람의 대답은 늘 비싸다는 것이다. 산지에 관한 뉴스와는 상관없이 소비자들은 줄 값을 다 주어야 그 물건들을 구입할 수가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유통과정에 개입한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본다. 올해도 무더위와 늦더위 때문에 농민들의 땀과 노력에 대한 결실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농민들은 생산품의 품질보증을 위하여 생산자 실명을 박스에 새겨 놓았는데 유통을 하는 사람들은 이를 이용하여 ‘박스갈이’라는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한 용어를 퍼뜨리며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으며 농민을 도와 이를 단속해야 할 행정당국의 이에 대한 가시적 초치는 미흡한 모양이다.

 

“박스갈이”, 이건 분명히 범죄의 한 일종이다. 농민들에 대한 명의도용이며 소비자를 속이는 기만행위이다. 나도 농사를 짓던 집의 자식으로 추수의 어려움을 안다. 따라서 농민들의 생산품을 가지고 자신들의 이득을 위하여 범법을 일삼는 이런 상술은 농민과 소비자에 대한 중한 범죄이므로 철저히 색출되어 엄히 다스려지기 바란다. 또한 생산자 품질 보증이니 환경인증이니 이런 제도도 좋지만 박스에 쓰인 생산자의 정보를 보호 할 실질적 대안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

 

2013년 9월 20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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