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체리와 우편함

korman 2013. 8. 10. 15:04

 

 

 

체리와 우편힘

 

“새로 지은 타운하우스로 이사 간지 3년여가 지났어도 뒤뜰 한 구석에 체리나무가 있는지 몰랐는데 어느 날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러 현관을 열어보니 몇 집 건너에 사는, 임신을 하여 요새 배가 제법 나온 인도 여인이 체리를 몇 개 주워 와서는 자기가 좀 따 가면 안 되겠냐고 물어왔다. 타운하우스 뒤쪽에 체리나무가 있는 줄도 모르는 내가 선뜻 대답할 사항이 아닌 것 같아 아들이 퇴근하면 물어보겠다고 하였다. 저녁에 애들에게 물었더니 그 체리나무는 우리 집 소유가 맞는다고 하였다. 혼자 집에 있다 문득 임신한 인도 여인이 생각나 조그마한 바가지로 하나 가득 따 들고 그 집으로 향하다 다른 생각이 들어 다시 돌아왔다. 저녁에 애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안 가져다주기를 잘 했다고 하였다. 그 체리를 먹고 그 여자가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법적인 책임에서 그 여자 스스로 따 먹은 경우와 다른 사람이 가져다주었을 경우가 다르기 때문이란다.

하루는 우리 집 우편함에 옆집 우편물이 들어있어 그 집 우편함에 넣어 주려고 가져가는데 또 애들이 만류하였다. 옆집과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주소, 이름 다 맞는데 그냥 거기 넣어주면 될 것을 왜 만류 하냐고 하였더니 만약 그 우편물이 통상적인 것이 아니고 어떤 사건이나 범죄에 연류된 것일 경우 그것을 우편함에 누가 가져다 넣었느냐 하는 법적인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에 비록 옆집 우편물이라도 그냥 우리 우편함에 내버려 두라고 하였다. 그러면 나중에 배달부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집에 돌아오다 우편함을 열어보니 내 집 우편함에 바로 위층 집 우편물이 들어있었다.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 집 우편함에 그것을 옮겨 넣어주고 승강기에 오르는데 문득 엊그제 미국 사시는 누님과 한참동안 통화한 위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날 체리와 우편물을 가지고 누님은 타국에 사는 나이 드신 한국인의 정서로 참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셨다. 누님은 임신한 그 인도 여인에게 체리를 가져다주지 못한 것이 당신의 자식에게 못 먹인 것 같아 못내 서운해 하셨고 다 알고 지내는 사이에 그깟 우편물 하나 이웃집 우편함에 넣어주지 못하는 것이 미국사회의 실상이라 하셨다. 미국에 이민 가신지 40년이 되었으니 당신 생애의 절반을 그곳에서 보내셨고 자식들을 검은머리 미국인으로 기르셨지만 전화선을 타고 들리는 누님의 목소리는 자식들과는 달리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미국인이 되기에는 아직도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하신 듯 했다. 그러나 누님의 말씀을 들으며 내 생각은 ‘미국이라고 다 그럴까’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험악한 대도시와는 달리 시골은 그렇지 않겠지 하는 생각과 혹 도시에 사는 내 조카들이 그런 미국인들보다 더 앞서가는 미국인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기우와 함께.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아파트와 같이 세월을 보낸 커다란 감나무 몇 그루가 있다. 나 또한 그 감나무와 같이한 세월이 어느덧 23년이나 되었다. 작년 가을에는 다른 해와는 다르게 많은 감이 가지마다 가득 매달려 보기도 좋았거니와 감나무 아래에 있는 정자에는 아파트 할머니들이 모여 매일 감을 따 드시는 모습 또한 좋았다. 간혹 젊은 세대들은 아파트 주민들이 가을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노인들이 모두 따버린다고 투덜거리기도 하였지만 장대에 철사를 꽂아 가지 꼭대기에 매달린 감까지 따고 계시는 할머니들의 전문적인 감따기 모습과 할머니들의 기세에 눌려 감나무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시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에서 웃음을 짓기도 하였다. 그래도 할머니들이 따지 못한 감은 관리사무소에서 거두어 할아버지들을 위하여 노인정에 가져다 드렸다고 하였다. 지금 그 감나무에 또 다시 많은 감이 매달려 있다.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나면 감은 황금색으로 변하게 되겠지. 오늘 그 감나무 곁을 지나며 또 누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는 아직 내 과일나무에 열린 과일들을 나중에 잘못될 것을 생각하여 친한 이웃에게도 나누어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법적 해석이 뒤따를까. 내 과일나무에 열린 과일조차도 이웃과 같이하지 못하는 사회가 우리에게도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아 마음이 삭막해짐을 느꼈다..

 

오늘 집을 나서면서 본 편지함 아래 바닥에 이웃집 우편물이 버려져 있었다. 주소는 맞았으되 수신인이 그 댁 사람이 아니어서 집으로 가져가다 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종종 승강기 안에도 버려져 있곤 한다. 그걸 집어 그 댁 편지함에 넣어주며 자기 집 우편물이 아니라고 아무데나 내버리는 것과 거의 일어나지도 않을 나중 일을 생각하여 이웃집 우편함에 잘못 배달된 우편물을 넣어주지 못하는 사회 중 어느 쪽이 나은 사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3년 8월 8일

 

하늘빛


음악출처:
http://saranghae.ohpy.com/76661/11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