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눈이 오면 추우실첸데

korman 2013. 9. 27. 12:17

 

 

눈이 오면 추우실텐데

 

아침 일찍 출발한 터라 차 속에서 제 어미와 할머니 품에서 쌔근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있던 녀석들이 산소에 거의 도착할 무렵 깨어나서는 이제 우리나이로 네 살 된 큰 녀석이 어디 가냐고 물어왔다. 늘 사진을 보면서 제 아비의 할머니·할아버지라는 설명을 하여 주었기로 그런대로 이해를 하리라 생각하고 우리 집에 있는 사진에서 본 ‘노할머니· 노할아버지’ 계신데 간다고 알려 주었다. 우리 집 식구들과 형제들이 쓰는 사투리이겠지만 아이들이 물으면 증조부모의 의미를 알 때 까지는 그저 쉽게 부르라고 ‘노할아버지· 노할머니’라 대답하는 고로 그리 알려주었다. 그리고 산소에서의 마지막 잔은 이 호기심 많은 손주녀석에게 드리라 하였더니 신나게 잔을 받아 들더니만 노할머니·노할아버지는 어디 계시냐고 묻는다. 진작 사진에서 본 분들은 안 계시니 자기 딴에는 이상하게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잔을 올리는 산소를 가리키며 “여기 이 속에 계신단다. 그래서 네가 술 드시라고 드리는 거잖아”라고 대답하면서 이제 딴 질문은 더 하지 않길 바랐다. 삶과 죽음을 이야기 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침을 산소에서 먹기로 하였던 터라 차례상에 올렸다가 싸가지고 간 음식들을 돗자리 위에 펼쳤다. 그리고 이 궁금증 많은 녀석이 또 뭘 물어올지 몰라 조마조마하며 밥 먹자고 하였더니 또 묻는다. “노할머니·노할아버지는 땅 속에 계세요?” 그렇다고 하였더니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예의 그 “왜”라는 것이 드디어 터져 나왔다. 왜 땅 속에 계시냐고 묻는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질문을 해 올 텐데 사람의 죽음과 땅 속에 묻힘에 대하여 어찌 이야기를 해야 할까, 다음 질문을 피할 수 있을까 생각할 즈음 생각이 복잡한 이 할아비의 대답이 급한지 내 팔을 흔들며 대답을 재촉한다. 평소에 이 아이가 뭘 물으면 이해를 하든 못하던 일단 대답을 하여주기 때문에 이 어려운 철학적인 문제도 뭐라 대답하여 주어야 하는데 이해를 떠나 무슨 말로 대답에 임해야 하는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손주는 계속 재촉하고 제 아비·어미도 대답이 어려우니 모르는 척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라 미루기만 하고 참 난감하던 때 그저 궁색한 변명 하나가 떠올랐다. “왜 땅 속에 계시는지는 할아버지가 지금 설명해 줘도 네가 잘 모르니까 나중에 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그 때 얘기해 줄게 그 때 다시 물어봐라” 하였더니 그런대로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하더니만 다행이 더한 질문 없이 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할머니 앞에 앉아 할머니가 먹여주는 밥과 반찬에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하는 통에 정신이 딴 곳에 가 있었는지 신나게 밥을 먹던 아이가 갑자기 나를 쳐다보더니 “할아버지 여기 땅 속이 노할머니·노할아버지 집이라서 여기 계신 거예요?”하고 다시 물어왔다. 할아비의 궁색한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니면 밥 먹는 내내 그 답을 스스로 찾고 있었는지 아이는 자신이 생각한 답을 할아비에게 확인하려고 물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난 “참 이 보다 더 현명한 답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구세주가 왔는데 머뭇거릴 필요가 있을까! 순간적으로 난 “그래 맞아. 어떻게 알았지?” 하고 아이를 추켜세우고는 또 다른 질문을 막으려고 이거 맛있다 저거 맛있다 하면서 얼른 아이의 주위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이 녀석 또 엉뚱한 질문을 한다. “그런데 할아버지, 눈이 오면 노할머니·노할아버지 추워서 어떻하지?” 손주녀석의 이 질문에 나는 잠시 밥 먹던 수저를 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래, 겨울에 눈이 오면 이불 가지고 와서 덮어드리자” 하고는 물 한 모금 마시고 돗자리를 걷었다.

 

산소에서 돌아오는 내내 손주녀석의 마지막 질문이 마음에 걸렸다. 난 산소에 계신 부모님이 겨울에 추우실거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였던가. 물론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손주의 그 질문은 부모님을 위하여 무엇을 해 드렸냐고 나에게 물고 있는 것 같아 다시 한 번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게 어른이 아이에게서 배우는 것인 모양이다.

 

2013년 9월 25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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