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가을녘의 천덕꾸러기

korman 2014. 10. 11. 11:37

 

 

 

 

 

가을녘의 천덕꾸러기

 

창밖으로 올려다 보이는 파란 가을 하늘을 더 보려고 몸을 일으키면 나와 같은 동네에서 내가 살아온 만큼의 세월을 같이 흘려온 가로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가는 게 보인다. 맑은 하늘아래 남아있는 초록빛은 노년에 접어든 사람의 피부처럼 생기 없이 위에서부터 노란빛을 띄어가고 있다. 아마 10월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나면 동네 곳곳은 여느 해처럼 온통 노란 은행잎으로 덮여질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갯벌을 메워 조성한 토지위에 생겨났다. 따라서 다른 동네와는 달리 길거리가 거의 바둑판처럼 짜여있다. 그리고 동네의 주된 가로수는 은행나무다. 내가 이 동네에서 살아 온지도 어느덧 25년이 흘렀다. 그 세월 전 이 은행나무들은 굵기가 내 팔뚝만 밖에 안 했는데 지금은 모두가 한 아름 보다 더 굵어 보인다. 그래서 매년 풍성한 잎사귀를 거리에 날리고 있다. 사거리 귀퉁이 작은 공원에 세워진 인천상륙지점 중의 한 곳이라는 팻말위에도 한두 이파리는 늘 얹혀 있곤 한다.

 

동네에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다 보니 은행이 열리는 시기가 오면 어느 길가에선 어김없이 사람들이 싫어하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구분되어 있고 암나무에는 은행이 달린다. 그러나 이 은행이 길가에 떨어져 사람들에게 밟히면 좀 퀴퀴한 냄새가 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밟은 걸 모르고 집에 그냥 들어왔다가는 온 집안에 이 안 좋은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지난 달 비바람이 불던 날에는 암나무 밑에 주차된 차들의 앞 유리와 후드 사이 와이퍼가 달린 공간에는 떨어져 쌓인 은행들이 가득차고 넘쳤었다. 차 주인들은 그걸 치우느라 고생 좀 했겠지만 보는 사람은 그것에 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졌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은행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동네 노인들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주우러 다녔고 장정들은 막대기로 털기까지 하였다. 아파트 입구에서 저녁 무렵 젊은이들이 동네 XX은행 근처에 은행 털러가자고 하였다가 오해한 행인에 의하여 산고되어 경찰이 왔던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길거리 은행을 줍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떨어진 은행들은 사람들에게 밟히고 자동차에 치어 읽으러진 모습으로 흉측한 냄새만 풍기고 있다. 갈비찜에 들어있는 은행은 그리도 맛 좋고 찬바람나면 따끈한 정종대포에 은행 한 꼬치가 속살에 스미는 추위를 막아주건만 지금 거리의 은행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엊그제 신문에 지역마다 은행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이를 없애달라는 민원이 들어와 암나무를 제거할 생각을 한다고 한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거리에 떨어져서도 멋진 가을의 풍경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암수 사랑의 결실은 인간에게 풍기는 자연의 냄새로 하여 그들 운명이 변하게 되었다. 신이 맺어준 음양의 섭리를 인간이 끊지 말라 하였다는데.......

 

하늘 파란 오늘도 길거리에는 새로 떨어진 은행이 즐비하고 사람들은 그 사이를 조심스레 지나고 있다.

 

2014년 10월 10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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