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korman 2014. 10. 30. 18:46

 

                사진 : 오늘 아침 창문에서 바라본 동녘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먼 곳에 지어지고 있는 고층아파트가 내 창문을 가리기 시작하였다. 비록 거리감은 좀 있는 편이지만 초록빛 야산이 보이던 시야를 온통 회색 콘크리트와 타워크레인이 가려버렸다. 그나마 먼저 지어진 아파트와의 사이에 난 틈으로 아침노을을 만들며 남쪽으로 기울어져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볼 수 있어 아직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언제 그 틈이 메워질지 누가 알랴.

 

새벽 신문을 넘기고 빈 잔에 새 커피를 부으며 밖을 내다보면 6층 아래로 신호등 없는 사거리가 보인다. 이제 초록빛을 거의 잃어버린 길모퉁이 은행나무는 위에서부터 노란 이파리를 하나 둘씩 검은 아스팔트위로 떨구고 있다. 늘 그랬듯이 이제 곧 지나는 길목마다 노란빛이 가득할 것이다. 도시가 주는 가을의 목가적 풍경이지만 내 눈에 비치는 사거리 모습은 떨어지는 은행잎만을 감상하기에는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사거리를 지나다니는 차들의 접촉사고와 아슬아슬한 모습들이 자주 목격되기 때문이다.

 

왕복 2차선 도로의 사거리에서 제일 많이 목격되는 것은 사거리로 진입하기 전에 속도를 줄이며 주위를 살피고 진입하는 차량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과 회전하는 절반 이상의 차량들이 깜박이를 켜지 않는다는 것이다. 깜빡이를 켜지 않으니 앞에서 오는 차는 상대방이 직진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진입하지만 결과는 접촉사고나 위험으로 목격된다. 깜박이도 안 켜고 끼어드는 차들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즈음은 그에 더하여 일반적인 회전 전용차로는 물론 비보호 좌회전, 아파트의 진출입로, 골목길에서 큰 길로 들어서는 차들에서도 놀랄 만큼 많은 운전자들이 깜박이를 켜지 않고 또 내가 보기에는 그 수가 점점 늘어가는 것이 문제다. 그만큼 위험에 대한 인식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차를 몰고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서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고 적은 스티커를 뒤창에 붙이고 다니는 차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가 타고 있다는 데 저런 영어 표현이 맞나 생각되는 영어문장이 붙어있는 차가 더 많아 보인다. 심지어는 “내 새끼는 내가 지킨다”라는 글귀도 보여 헛웃음이 나오게 한다. 그런데 그 문구를 붙인 차들 중에 카시트는 제쳐 두더라도 아이를 앞자리에 혼자 앉히거나 어른이 아이를 안고 앞자리에 타거나 심지어는 아이를 안고 운전하는 사람도 가끔 눈에 띤다. 또한 창문을 열고 아이들이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게 하고 다니는 차들도 있다. 그런 스티커를 붙이는 이유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면 자신부터 아이보호에 신중함을 기해야 할 것임에도 스티커를 붙였으니 사고 나면 내 탓이 아니고 네 탓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사는 동네에는 어린이 집과 유치원은 물론 학교가 많다. 그래서 주위에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길바닥 글자와 안내판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학교 주변에는 방법용 CCTV도 눈에 많이 띤다. 그러나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게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과속을 하는 차량들로 인하여 아이들이 사고를 많이 당한다는 뉴스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시속 30km 이하로 가야한다. 그런데 그리 가면 뒤에서 경적을 울리는 차들이 적지 않다. 빨리 가라는 것이다. 이 문제의 과속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살펴보면 과속을 단속하는 카메라는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 이전에 운전자의 인식이 앞서야 하는 것이겠지만 만일 과속단속 카메라를 설치하고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과속이나 그로 인한 사고는 더 엄하게 다스린다면 어찌될까? 30km 이상을 단속할 수 있는 카메라 설치가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없다면 사고를 줄이는 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거의 완공단계에 있는 공사 중인 건물에서 불이 났다는 뉴스가 있었다. 화재 원인은 용접 중 튄 불똥이라고 하였다. 관심을 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겠지만 지금까지 수리 중이거나 공사 중인 건물에서 불이 많이 났다. 그리고 그 원인도 거의가 용접 중 불똥이 인화물질에 튀어 일어난 것이었다. 화재 원인이 모두가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같은 인재적인 이유로 화재가 발생한다. 일 하는 사람이나 감독하는 사람이나 건물 주인이나 모두 위험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100명의 경찰이 있어도 도둑 하나를 못 잡는다고 하였다. 자기 스스로 안전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국가나 사회의 제도가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어쩌지 못할 일이다.

 

할머니와 밖에 나갔던 손주 녀석이 들어오면서 할아비에게 이른 말이 어린이집 선생님은 길을 건널 때 손을 들고 건너면 차들이 선다고 해서 그렇게 하였는데 차가 자기 옆을 그냥 지나가더라고 그 아저씨 참 나쁘다고 씩씩거렸다. 그 말에 할아비가 어찌 대답하여야 할지 말을 잊었다. “세상사 별일 다 있단다” 할까? 아직도 길 건너편에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우리 스스로의 인식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그저 말,말,말만이 있을 뿐.

 

세월호 보다 먼저 세월호처럼 개조된 쌍둥이 배 ‘오하마나호’의 경매가 진행 중이라 한다. 이 배도 세월호와 같은 사고를 잠재하고 있는 배다. 정부도 이를 알고 있을 테니 더 이상 여객선 허가는 안 하리라 생각되지만 사 가는 사람도 그저 고철덩어리 외에 다른 목적으로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2014년 10월 30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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