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대중소

korman 2015. 4. 10. 15:43

 

 

대중소

 

소주 한 잔에 한강을 건너며 남들은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나 홀로 궁금해진 게 있었다. 예전 한강다리들에는 번호가 붙어있었다. 그래서 강물이 제3한강교 밑을 흘러간다는 노래도 나왔었다. 그런데 내 기억에 제4한강교가 없으니 그 이후에 건설된 다리부터는 고유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번호가 붙어있던 다리들도 모두 이름을 갖게 되었다. 번호가 있을 때 다리의 영문표기가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이름으로 바뀌면서 이름 뒤에는 ‘대교’라는 것이 붙었고 영문표기에는 ‘Grand Bridge'가 붙여졌다. 그런데 그 ’대교‘라는 것은 지금도 붙어있지만 영문표기에서 ’Grand Bridge"의 ‘Grand'는 슬그머니 없어져버렸다. 요새는 대부분의 다리에 영문이름도 우리이름을 그대로 로마자로 표기하고 뒤에 괄호를 하여 (Br.)넣어 다리임을 알리고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한남대교‘를  Hannam Grand

Bridge'라 표기하였던 것을 지금은 'Hannam-daegyo (Br.)', 이런 식이다.

 

내가 사는 인천에도 다리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종대교’와 ‘인천대교’이다. 우리나라에서 몇 번째로 긴 다리냐가 아니고 세계에서 몇 번째냐고 해야 하니 한강에 있는 다리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도 한강에서처럼 ‘대교’가 붙는다. 무심코 지나다녔는데 어느 날 문득 한강의 모든 다리에 ‘Grand Bridge'가 붙어 있었던 게 생각나 이것은 어찌 표기하였는지 표지판을 보니 그냥 지금의 한강다리에 붙인 것처럼 ’Incheondaegyo (Br.)'라 표기하여 놓았다. 이러니 이제는 전국의 모든 다리의 영문 표기는 모두 이런 식의 로마자 표기로 통일된 모양이다. 그래도 우리이름이나 로마자 표기에서나 ‘대교’의 ‘대’는 없어지지 않았으니 영어표기만 없을 뿐

‘Grand'가 없어지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다리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다리에 ’대‘자가 들어가니 아마 다리 이름에 ’대교‘를 붙이는 표준에 대한 규정은 없는 모양이다.

 

예전 한강다리의 영문 표기에서 'Grand'가 없어지고 그냥 'XXBridge'라 표기 되었을 때 왜 그랜드가 없어졌냐고 누군가에게 물었던 기억이 났다. 그랬더니 그 대답이 어느 날 한 미국인이 서울시에 한 말씀 하셨는데 미국의 그랜드캐년 만큼은 돼야 그랜드라는 말을 붙이지 폭도 그리 넓지 않는 한강 같은 곳에 별로 길지도 않은 다리를 놓고는 모두 그랜드를 붙인다는 것이 좀 민망하지 않느냐고 했다던가. 그래서 영문표기에서 ‘Grand'를 빼 버렸다고 답하였다. 그러냐고 그냥 웃어넘겼는데 그도 우스갯소리로 답하였는지 정말 누군가가 그리하였는지 확인 할 길이 없으니 그저 믿거나말거나일 뿐 책임질 대답은 되지 못한다. 어쨌든 지금 생각하면 그런 그의 대답이 다리에도 ’급‘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아 미국인이 아니라 자기가 그런 소리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의 말이 맞기라도 하듯 지금 생각하니 내가 다녀본 영어권 나라에서 다리가 아무리 길어도 ’Grand Bridge'라 붙인 다리는 보지 못한 것 같다. 한자문화권의 종주국인 중국의 다리에도 우리처럼 ‘대’나 ‘Grand'가 붙어있는지 살펴보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 내가 생각하여도 나 자신이 참 별걸 다 궁금해 하고 있다.

 

엊그제 지인을 만나 소주 안주로 족발을 시키면서 메뉴판을 보니 그 크기를 ‘중’과 ‘대’만을 적어 놓았다. 예전에는 ‘대중소’가 다 있었다. 요즈음 많은 식당들에서 ‘소’가 없는 ‘중대’만을 사용하고 있다. ‘소’가 없는데 무슨 ‘중’이 있을까만 세 가지에서 두 가지로 줄여 쓰려면 우리말의 구성상 ‘중’을 빼고 그냥 ‘소’와 ‘대’로 표기하여야 함에도 작은 것을 좀 크게 보이게 하려는 일종의 허세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강다리야 예전에 인천대교나 가거대교 같은 거대한 다리가 없을 때부터 생겨나 국내에 그거 이상 큰 다리가 없으니 ‘대’자를 붙이기 시작하였겠지만 크고 작음이 있을 뿐인데도 작은 것을 ‘중’이라 표기하는 것은 요새 문제시 되는 선물상자의 과대포장과 무엇이 다르랴. 그래서 메뉴판을 보는데 갑자기 한강대교와 인천대교의 ‘대’가 비교되며 없어진 ‘그랜드’가 생각 난 것이다.

 

작은 게 없는데 무슨 중이요? 우스갯소리로 묻는 나에게 상차림을 하던 조선족 그녀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내 얼굴만 바라봤다.

 

2015년 4월 8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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