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노리? 놀이?

korman 2015. 3. 28. 12:14

 

 

 

 노리? 놀이?

 

한 2년쯤 지났던가? KBS드라마의 제목이 맞춤법에 어긋난다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원 제목을 고수하려고 버티던 방송국에서 결국 여론에 밀려 맞춤법에 맞도록 제목을 고쳤던 일이 있었다. 5년 전쯤에 개봉된 영화도 맞춤법을 망가트린 제목이 있었다. 글을 익히는 아이들이 받침과는 상관없이 그저 소리 나는 대로 적듯이 늘어놓은 ‘구르믈 버서난..... ’이 그것이다. 영화의 제목도 마케팅의 한 전략으로 그리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가끔은 모든 것을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맞춤법 틀릴 일도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서 자유롭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래전에 학교의 끈을 놓은 사람들은 그 후에 바뀐 맞춤법에는 서툴기 마련이다.

 

그들이 내건 아이들 놀이터에 써진 이름과 각 코너에 적어놓은 놀이이름을 보고 망가진 맞춤법에 대하여 홈페이지 고객센터에 글을 올린지가 20여일 지났다. 내 글을 보고 이름을 고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뭔가 한 줄 그들의 변명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역시 내 부질없는 기대였을까 아무른 언급이 없다. 고객센터에 글을 남기려면 신상정보를 입력하면서 그들의 홈페이지에 회원으로 가입하여야 한다. 고객들의 신상정보를 팔아 이득을 취하여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업체라 이거 한 줄 쓰려고 내 신상정보를 제공해야 하나 하는 망설임이 있었지만 누군가의 잔소리는 있어야 할 것 같아 그리하였다.

 

한 달이 넘었다. 아들 내외가 주말에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며 동네에서 가까운 대형마트, ‘홈플0스’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놀이터에 손녀들을 데리고 가 2시간쯤 놀게 해 달라고 미리 사 놓은 표를 건넸다. 가끔씩 그곳에 가기는 하였지만 그저 필요한 곳 외에 다른 곳은 살펴보지 않아 아이들 유료놀이터가 있는 것은 모르고 있었는지라 살펴볼 기회가 없었다. 입구에서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직원이 아이들 이름, 보호지 전화번호 등을 간단히 메모하고 입장을 시켰다. 보호자는 같이 들어가도 된다고 하는데 이 젊은 할아비가 그곳에 들어가 무얼 하랴! 할머니 등만 떠밀고는 주위를 좀 살펴보았다.

 

‘0상노리’. 그곳의 간판이다. 아이들의 상상을 유발시키는 각종 놀이시설이 있다는 원대한 뜻을 품은 간판이라 하겠다. 그런데 ‘놀이’가 아니라 ‘노리’다. 처음 이것을 봤을 때는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그러나 이건 그저 시설의 고유명사 브랜드라 생각하고 이해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각종 놀이시설을 안내하는 코너마다에도 ‘놀이’가 아닌 ‘노리’가 붙었다. 정상적이라면 '00놀이‘라 써야 하는 자리다. 그곳에 오는 아이들을 보니 거의 대부분이 이제 한글을 익히는 나이또래들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려오는 어른들은 또 대부분 젊은 층 부모들이었다. 그 시설이 마트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집에 돌아와 아들내외에게 물었다. 꽤 오래되었다고 하였다. 손녀들과 같이 놀이터 안에 들어갔던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좀 비위생적이고 또 때마침 아이들의 시설물에 부딪쳐 피가 나는 사고도 목격하여 거기 좀 안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언급하는지라 나도 그곳의 맞춤법파괴를 이야기하며 이제 막 한글을 깨우치고 있는 손녀에게 좋을 게 없을 것 같다고 하고는 그 마트의 홈페이지에 브랜드에는 시비를 걸지 않을 테니 각 코너에 적힌 놀이 이름이라도 맞춤법에 맞게 적으라고 글을 남긴 것이다.

 

그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젊은 부모들이나 거기서 일하는 젊은 직원들은 그런 맞춤법 파괴에 대하여 어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의 노력으로는 부족하고 관련 시민단체의 힘을 빌려서라도 아이들의 놀이시설에서의 맞춤법 파괴행위는 좀 바로잡아야 할 것 같아 어디에 연락하여야 할지 인천의 관련 시민단체를 찾아보고 있다. 요새 방송을 보면 공영방송이라는 KBS에서 조차도 우리말과 글을 터무니없이 왜곡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를 들어 음식 프로그램에서는 ‘먹고’를 ‘먹Go', 여행 프로그램에서는 ’가을에 떠나자‘를 ’가을愛 떠나자‘ 등등. 발음이 비슷하다고 말도 안되는 다국적 글자를 자랑스럽게 섞어 늘어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말 고운말‘ 뭐 이런 제목으로 말과 글을 바로 하여야 한다고 국민을 계도하고 있다. 스스로 파괴하면서 그 파괴자를 국민으로 모는 것이다. 참 가소롭다.

 

글을 쓰면서 혹 누군가가 이런 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블로그나 카페에 그 놀이시설에 다녀왔다는 광고성 글만 넘쳐났을 뿐 맞춤법파괴와 관련하여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나 지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젊은 부모들의 인식이 좀 아쉬웠다.

 

마트의 홈페이지에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내 글에 대한 가치 있는 회신대신에 이메일이나 휴대폰 광고만 잔뜩 오는 것 아닌가 생각하였는데 역시나 가입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광고만 지천으로 쌓이고 있다. 내가 입력한 정보는 또 어디에 팔리려나.

 

2015년 3월 27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