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야기 1
집사람이 수술 후 치료를 위하여 정기적으로 입원하는 덕에 나도 병원 문턱을 수시로 넘나들고 있다. 이곳 병원의 입원실로 오르는 승강기는 복도 양쪽에 홀수, 짝수 층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5층에는 모든 승강기가 멈춘다. 그리고 5층에서 문이 열리면 난 늘 시야에 들어오는 복도의 분위기를 관찰하곤 한다. 자연적으로 그리 된다. 5층에는 모든 수술실이 몰려있고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과 가족들은 모두 그곳을 거쳐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수술이 있었느냐에 따라 복도에서 대기하는 가족들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내 집사람도 이곳을 3번 거쳤다. 위험한 수술은 아니었지만 십 수 년 전에 지금과는 다른 수술로 이미 경험을 하였고 이번에는 두 번 5층을 거쳤다. 나 또한 보호자로써 그 복도를 서성거렸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보호자 대기실이 있다. 그리고 대기실 벽에는 큰 모니터 두 개가 붙어있다. 하나에는 수술 중에 있는 환자의 이름이 또 다른 하나에는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깨어나는 회복실에 있는 환자의 이름이 보인다. 보호자들은 그 모니터를 보며 대기실에 앉아 있지만 시간이 경과할수록 걱정과 지루함으로 복도를 서성거리게 된다. 성공적인 수술을 받고 회복실에서 마취가 깨어난 환자들은 일반병실로 옮겨지며 그 때 보호자가 불려진다. 이때에야 가족들은 안도를 하고 참았던 숨을 길게 내 쉬는 듯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수술 도중이나 회복실에 가기 전 이름이 불리는 가족들은 참았던 숨도 내쉬지 못하고 황급히 수술실로 통하는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를 목격하면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의 표정에 걱정이 드리우곤 한다.
집사람이 처음 이곳을 거쳤을 때 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때 집사람 이름은 아직 수술중이라는 곳에 머물러 있었는데 수술실로 통하는 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족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중 나 홀로 그곳에서 불렸다. 그 문을 들어서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다. 집도한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오며 나에게 보호자냐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한 마디 남기고 돌아섰다. 난 돌아서는 그의 뒤통수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수술이 질된 사람 모두는 회복실에서 깨어나면 입원실로 침대를 옮기는 사람이 가족을 부르는데 이 의사는 어째서 수술이 끝나자마자 모니터에 이름이 바뀌기도 전에 왜 직접 그 중간문에서 나를 불러,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큰 두려움을 주었나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대기실을 통하여 복도로 나오는데 보호자들을 안내하는 안내데스크 한 쪽에 ‘장례식장안내’ 라는 팸플릿이 아주 잘 보이게 진열되어 있었다. 가족 모두가 마음 조리며 결과를 기다리는 곳에 장례식장 안내라니. 친절한 안내도 필요하겠지만 안내도 안내 나름이지 하는 생각에 데스크에 앉아있는 분에게 이야기를 건넸었다. 집사람을 따라 입원실로 가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술 중에 다른 길로 들어서면 그런 안내 팸플릿을, 아무리 장삿속이라지만, 가족의 심정은 고려하지도 않는 채 그곳에 비치하였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팸플릿이 의사의 뜬금없는 부름에 생겨났던 두려움대한 뒤풀이를 할 수 있는 순간을 제공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이번 수술은 전 보다는 더 중한 수술인 관계로 내 마음의 무게도 더하였으나 중간에 불리는 일 없이 잘 끝났다. 하지만 다른 분의 가족들이 황급히 그 중간문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보았다. 여러 번의 입원 중 집사람은 최근 팔목보다는 가슴을 통하여 주사를 맞을 수 있는 수술을 위하여 다시 한 번 5층 신세를 졌다. 나 또한 다시 가족 대기실을 서성거렸다. 처음에서의 일이 생각나 안내네스트를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 병원 안내 팸플릿이 놓여 있었지만 장례식장 안내는 없었다. 그건 처음부터 거기에 없었어야 했거늘,,,,
2016년 3월 7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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