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사이
세월이 빠르다 외우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올해도 벌써 2월의 끝으로 세월은 흘러가고 있다. 빠르다고 서운해 하면서도 사람들은 3월이 오면 봄의 새싹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고 특별한 의미를 붙여가며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봄이 지나 여름이 되면 늘 하던 대로 신록이 우거진 싱그러운 세월을 외쳐댈 것이다.
매년 연말이 되고 새해가 되면 세계 각국에서는 송구영신을 기념하는 특별한 행사들을 마련하고 사람들은 잠시 세월의 빠름은 잊은 채 숫자까지 세어가면서 가는 해를 보내고 오는 해를 맞이하는 순간을 즐긴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 거꾸로 불리는 숫자의 끝은 작년과 내년이 공존하는 찰나이고 그 순간 시계의 초침과 분침과 시침은 정확하게 하나로 겹친다. 그리고 새로운 해는 시작된다.
날짜가 바뀌는 정중앙의 시간을 우리는 자정(子正)이라 부른다. 숫자로 표기할 때는 00:00, 24시 혹은 밤 12시라 한다. 이 순간이 지나면 새로운 날의 오전이 된다. 마찬가지로 정오(正午)라는 말이 있다. 오전과 오후가 바뀌는 순간이다. 이 순간이 지나면 시간 표기는 오후 몇 시 혹은 13시, 14시 등등으로 변한다. 그리고 정오가 넘은 시간이 여태 오전 1시 혹은 오전 13시 등으로 불리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밤 12시가 넘으면 새로운 날로 접어듦에도 불구하고 가끔 오늘밤 12시 30분, 오늘 밤 1시 30분 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있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야 하는 방송에서 조차도 그리할 때가 많다.
지난 올림픽 축구 예선 중계방송은 주최국과의 시차 때문에 우리나라 경기는 물론 주요국들의 경기가 자정을 넘겨 중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저녁 TV의 중계예고에 나오는 자막은 늘 “오늘밤 12시 30분”, “오늘밤 1시 30분” 등으로 표기되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무의식인지 의식인지 그런 표기가 계속되고 있다. 밤 12시 30분이라는 것은 비록 30분에 지나지 않지만 자정이 지나 새날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니 오늘 오후 12시 30분은 있으나 오늘 밤 12시 30분은 존재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시보를 울리는 방송국에서 그렇게 알려주고 있다. 시간상 새날이라도 12시를 조금 넘겼으니 해 뜰 무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새벽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 좀 남세스러워 그리 하는 것일까?
관습적으로 일반인들은 자정이 넘겨진 시각도 오늘밤 몇 시 등으로 부르고 또 그렇게 가르쳐 줘도 모두가 다음날 그 시각으로 알아듣는다. 그렇다고 하여도 방송에서 시청자들에게 그렇게 전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하겠다. 하루의 시간은 정오를 기점으로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져있으니 오늘밤 1시 30분이 아니라 내일 오전 1시30분이라 하여야 제대로 된 알림이 아닐까. 예전에는 자시(子時, 전날 오후11시에서 다음날 오전1시)로 시작되는 십이시(十二時)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자시, 축시, 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時)’. 각 시 사이에는 2시간이 존재한다. 따라서 자정은 자시의 정중앙이라 하여 자정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12시 30분은 자시에 속하고 1시 30분은 축시에 속한다. 그러니 차라리 자시나 축시에 중계를 한다고 하는 것이 내일의 시작시간을 오늘밤이라 부르는 것 보다는 운치가 느껴지지 않을까.
내일 오전을 오늘밤이라 부르는 것, 이거야 말로 세월의 빠름을 조금이나마 늦추어 보려는 인간의 의도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무의식적 바람일까? 우리처럼 부르는 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2016년 2월 23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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