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덥게 지내네

korman 2016. 8. 9. 17:53




덥게 지내네


동네 공터에 계절을 잊은 코스모스가 7월도 되지 않아 피어나더니 가을의 고추잠자리 떼가 동쪽으로 난 내 창문의 아래위를 7월 말경서부터 오락가락 하고 있다. 원래 이 두 가지 자연의 알리장을 보고 우리는 흔히 가을의 전령사라 일컬어왔는데 기후가 변하여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자신들의 계절을 잃고 있다. 흡사 한 계절 앞서가는 패션쇼를 보는 듯하다.


뜨거운 햇볕이 서쪽으로 기울어질 즈음,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창가를 메웠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어린이 놀이터가 두 군데나 있지만 요새는 더운 날씨 때문에 휴일이라도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는데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고 하여 고개를 삐쭉 내밀어 보니 바로 길 건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발라의 옥상에서 나는 소리였다. 누군가가 아이들을 위하여 옥상에 그늘막과 간이수영장을 설치하여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남녘의 장흥인가 어디서 물축제를 하며 남녀노소 모두가 물바가지나 물총을 들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TV에 비치더니 요녀석들도 모두 커다란 물총 한 개씩을 들고는 옥상을 누비며 물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 어렸을 때는 그저 손바닥으로 물장구를 치던 것이 전부였거늘 무슨 큰 우주선처럼 생긴 물총을 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며 내 어린 시절이 아닌 손주또래 아이들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엊그제가 입추라 하였다. 가을로 들어섰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런데 그 문턱이 어찌나 높은지 코스모스와 고추잠자리는 진작 찾아왔지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이 더위라는 녀석은 아직 자리를 털고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아침에 늘 끓이는 커피를 요새는 두 포트씩 만들고 있다. 아침엔 뜨거운 커피가 좋지만 더위를 즐기려면 냉장고에 보관되어야 할 커피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는 간유리의 창문을 열면 탁 트인 앞모습에 멀리 높지 않은 산봉우리가 보여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여명이 살아지며 아침노을을 뚫고 두 봉우리 사이를 오르는 붉은 해를 볼 수 있어 좋아라 하였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은 산봉우리보다 높이 보이는 새로 생긴 회색 콘크리트 아파트가 산과 나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리고 이제 아침 해는 틈새가 벌어진 아파트 두 건물사이로 솟아오른다. 아쉽지만 그래도 여명과 아침노을과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무더위를 이길 것 같다.


광복절이 지나야 이 더위가 조금은 풀어질 거라 한다. 하기야 광복절 다음날이 말복이라는데 아무리 더위가 기운이 세기로서니 세월의 흐름에 녹아내리지 않을 수 없을 터, 그리고 뒤따라 더위를 처분한다는 ‘처서’가 오고 있으니 아무리 버텨봐야 땡처리 될 운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입추가 지나자 거실 창문에서 거실 안쪽으로 햇볕이 깔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여름 내내 창문 쪽에만 조금 비치던 그 볕이 입추가 지나자 남쪽으로 기울어졌는지 아직 더위는 그대로인데 이제는 집안으로 침입하니 심리적으로 더 덥다. 햇볕을 막아놓고 에어컨을 틀어대면서도 요새 뉴스에 한창 떠들어대고 있는 누진 전기요금이 걱정이 된다. 그래도 올림픽은 봐야하는데 열은 좀 식히면서 응원도 하고 탄식도 해야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집사람을 설득한다.


오늘도 날씨 모양새가 선풍기와 에어컨을 돌아가면서 켜야 잠을 잘 것 같은데 이쯤에서 한줄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에이 여름 장마라고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비구경도 제대로 못했는데 언감생심 소나기라니.....


절친한 후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형님! 더운데 어찌 지내세요?” 내 대답이 “그래서 덥게 지내네.” 그리고 같이 웃었다. 머그컵에 얼음 한 움큼을 담고 냉장고에 넣어놓은 커피를 따르며 우선 메이저리그 한국선수들의 하이라이트를 위하여 채널을 돌린다. 오늘은 누가 시원한 홈런으로 내 더위를 쳐내려나?


2016년 8월 9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