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스스로 떠는 궁상일까?

korman 2017. 5. 26. 10:32




스스로 떠는 궁상일까?


어느 날 갑자기 절친한 친구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 하나를 친구에게 주면서 “난 이제 이거 필요 없으니 자네가 갖게” 한다면 그 친구를 잘 살펴보라고 한다. 친한 친구에게 선물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쯤에서 스스로 생을 정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뜬금없이 그런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사람들의 심리가 어떤 예기치 못한 조그마한 변화에도 갑자기 예민해 질 때가 있으니 생을 정리하는 데도 충동적으로 그런 경우가 생기는 모양이다.


물론 변화에 대처하는 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과 성격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고 또 변화가 있다하여도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말아야 하겠지만 나도 그들과 같은 인간 DNA를 가지고 그들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언제 그들처럼 갑자기 찾아오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다수의 보통 사람들도 스스로 생을 정리하는 문제에 대하여 종종 생각한다고 하니 그러한 생각들이 어떠한 계기로 인하여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는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도 난 가끔 이제 뭔가를 정리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현재에 처한 환경과 건강이 아무리 좋은 사람일지라도 외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갑자기 원하지 않던 일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가족들이 당황해 하지 않도록 배려를 하는 것이라고 해야 옳겠다. 일종의 인생 리스트라고 하면 어떨까? 아직 필요한 기억력 간직하고 컴퓨터 화면 온전히 보이고 손가락 운동 잘 할 수 있을 때 그런 리스트를 만들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참 별 걱정을 다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일 당하면 남은 가족들이 다 알아서 할 거라고. 물론 그리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없을 때 나와 관련된 것들을 정리하는데 가족들은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가족임을 증명하는데도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많은 것에 내 개인정보가 필요하고 소위 비밀번호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블로그 하나에도 개인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필요치 않은가! 따라서 내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그런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놓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현재의 내 나이가 아직 그런 걸 생각할 나이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다. 80이 넘으신 내 누님, 형님 혹은 매형이 들으신다면 어린(?)녀석이 불경스러운 생각을 한다고 하실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하철 공짜로 타고 다니는 인생이라면 더 있다가 만든다 한들 지금과 환경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지금쯤 기본적인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비록 가족들에게 남겨줄 것이 많지 않은 처지라 하더라도 나로 인하여 가족들이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은 없게 하는 것이 또한 내가 가족에게 남기는 좋은 일 아니겠나.


자식들과 소주를 한잔씩 할 때면 난 늘 내 인생을 정리하는 이런 이야기들을 조금씩 한다. 어떤 것은 그냥 웃고 지나가고 또 어떤 것은 일종의 유언처럼 남겨지기도 한다. 자식들과 언제까지 이렇게 웃으며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지금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을 때 이야기를 해 두는 것이 좋은 것이다. 나는 여행 다니면서 많은 장식용 종을 모았다. 어느 날 그냥 우스갯소리로 너희가 관심이 없으면 한 5년쯤 지나서 종 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하였더니 아들과 며느리는 그러라고 하는데 사위는 얼른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하였다. 그러니 웃으며 한 소리로 종에 대한 교통정리는 끝난 셈이 되는 것이다.


난 가진 게 별로 없으니 가족들에게 크게 유언할 것이라고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벌써 다 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어느 날 친구에게 내가 아끼는 것을 갑자기 주어버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생활하면서 만들어진 각종 증서의 번호와 아이디 및 비밀번호가 필요한 것들과 내가 떠나는 자리를 알려주어야 할 사람들의 전화번호쯤은 리스트로 남겼다 가족에게 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물론 스마트폰의 비밀패턴도 함께. 그저 가벼이 엑셀프로그램 하나를 스마트폰 SD카드나 USB에 남겨 전하면 될 일 아니겠나?


이 글을 쓰고나니 갑자기 손주들이 보고 싶어져 저녁에 아이들을 데려 오라고 아들 녀석에게 전화를 하였다. 글을 쓰며 다운받은 음악을 틀어놨는데 마침 “비내리는 고모령” 바이올린 연주곡이 나왔다. 스스로 떠는 궁상일까?


2017년 5월 24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