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드라마와 좌판이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있다.

korman 2017. 6. 4. 17:35




드라마와 좌판이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있다.


아직 이른 오후인데도 광장시장의 좌판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나보다 10여년 세월을 더 보낸 사람이지만 내가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절찬하게 지내오고 있는 일친구이자 술친구의 연락으로, 그가 예전에 즐겨 찾았다던 광장시장 좌판의 한 귀퉁이에 걸터앉았다. 오랜 친분이 있었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그와 그녀는 만나자 마자 ‘이제 결혼은 했냐“로부터 농담을 시작했다. 그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그녀도 60은 훌쩍 넘어보였다. 아마 그녀도 꽤나 오랜 세월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것 같았다. 난 그 농담의 사연은 묻지 않았다. 내가 끼어들기 전에 그녀가 농담은 그냥 농담일 뿐이라고 입막음을 먼저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좌판에 내일행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며 빨간 뚜껑 한 병을 비워갈 무렵 옆 빈 의자에 미끄러지듯 와 앉는 학생인 듯한 앳된 얼굴의 두 여성이 있었다. 좌판 여주인의 반가운 인사에도 머뭇거리던 그녀들에게 여주인은 얼른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메뉴판에는 한글, 영어, 일어, 중국어, 심지어는 러시아어까지도 적혀 있었으며 주인의 등쪽으로는 아랍어도 적혀있었다. 좌판 하나가 완전히 국제화 되어 다국적 무역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와 내 지인도 지금까지 무역을 한답시고 여기저기 발걸음을 옮겨 다녔지만 국가가 늘 강조하던 세계 속의 대한민국은 제쳐두고 대한민국과 광장시장을 세계화시킨 좌판의 힘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전과 고등어튀김과 막걸리를 주문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행동은 나뿐만 아니라 그 좌판에 같이 앉았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다른 나라의 젊은 여성들이 막걸리와 우리의 안주를 어찌 먹는지 모두가 궁금하였으리라. 그러나 그녀들의 행동은 마치 그 자리에 여러 번 앉아봐서 어찌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우리의 그것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보였다. 잠깐 그 모습을 훔쳐보던 내 지인이 바로 옆의 내게도 들릴까 말까한 소리로 내게 물었다. “중국 애들인가?” 내가 입술을 움직일 새도 없이 내 옆쪽에 앉았던 여성으로부터 “싱가포르 사람” 이라는 대답이 영어로 먼저 돌아왔다. 내 지인이 한 한국말은 알아들었지만 대답은 얼른 한국어로 안 되었던 모양이었다. 어찌 한국말을 알아들었냐고 물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좀 배웠다고 하였다. “외교보다는 문화”라고 하더니 광장시장 국제적 좌판의 뒷배는 드라마였던 것이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참 궁금한 것이 많다. 그녀들과 또 다는 옆에 앉아있었던 부부인 듯한 중년커플의 아줌마는 드라마를 보고 한국어를 배웠다는 그녀들을 향해 끊임없는 개인적인 질문을 해 대고 있었다. 나이를 비롯하여 무얼 하는지 무슨 드라마를 봤는지 어느 배우를 좋아하는지 등등. 그녀들이 한국어에 능통하여 모든 것을 다 알아 듣는다고 생각하였는지 마치 자신의 친 딸이 대견스러워 쓰다듬어주듯이 그녀들의 등과 어깨를 쓰다듬으며 그리 질문을 해대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녀들도 한국의 그런 아줌마 문화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별로 싫어하는 기색 없이 웃어가며 어떤 것은 한국어로 어떤 것은 영어로 잘 대답하며 그녀들에게 주어진 막걸리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소통이 되지 않는 질문과 대답에는 좀 거들어주기는 하였지만 나와 내 지인도 좌판 덕분에 3개의 병뚜껑을 딸 때 까지 그리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


그녀들은 드라마 덕분에 서울에 두 번 왔지만 광장시장 좌판에 앉는 것은 처음이라 했다. 그런데도 그녀들의 행동이 그리 자연스러웠던 것은 어떤 드라마에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전과 막걸리를 어찌 다루는지 잘 알고 왔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다녀본 장소 중 신사동의 ‘가로수 길’이 참 좋았다고 했다. TV에 소개되는 그곳을 가끔 보기는 하였지만 외국의 젊은이들도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양이다. 집에 와서 자식들에게 물으니 내 자식들도 좋아하는 길이라 했다. 언젠가 나도 마누라 손잡고 한 번 걸어봐야겠다.


어디를 추천하겠냐는 그녀들의 질문에 손주가 셋인 이 할아비는 젊은이들의 장소를 모르니 창덕궁과 비원의 영어나 중국어 해설 시간을 추천하고는 친구들과의 또 다른 약속을 위하여 자리를 털었다. 드라마를 보고 찾아오는 그녀들, 참 대단한 열정이었다. 10명의 외교관 보다 그 한 편의 드라마와 막걸리 좌판이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있었다.


2017년 6월 3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