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꺾어진 태극기

korman 2017. 10. 3. 16:40




꺾어진 태극기


가을이 깊어지는 10월의 초입에 긴 연휴가 시작되었다.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휴가를 얻었지만 기업주의 입장에서는 참 난감한 달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연차나 월차를 더하여 거의 보름동안을 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반달을 일하고, 그것도 나머지 반달에서 토, 일요일을 제외하면 10여일 일하고 한 달 치 월급에 추석 보너스까지 주머니를 채워주는 달이니 이보다 더 좋은 달이 어디 있을까만 월급을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4월이 잔인한 것이 아니라 2017년의 10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 되겠다.


오늘은 ‘국군의 날’이다. 엊그제 TV를 보았더니 국군의 날 기념식을 미리 하고 있었다. 연휴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하였는데 개천절이나 한글날은 어찌하려나 모르겠다. 모두 연휴 속에 들어 있는데 이 날들은 연휴 끝나고 하려나? 인천공항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연일 기록을 경신하는 공항을 놓고 보자면 불경기라는 말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모든 국민들 중에 그리 공항을 메우게 할 사람들이 몇 퍼센트나 될까도 생각되지만.


연휴가 시작 되면서 주요 길거리엔 많은 태극기가 걸렸다. 주로 차량 통행이 많은 간선도로의 가로등 기둥에 두 개씩 설치된 것들이다. 깨끗한 태극기들이 가로수처럼 늘어선 길을 가다보면 꽃길을 가는 듯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고 평소에 자주 생각하지 않던 ‘나라사랑’이라는 말도 생각나곤 한다. 길거리에서도 상하기식을 하는 모습을 보면 멈춰 서서 가슴에 손을 얹는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다 보니 태극기에서 풍겨 나오는 대한민국이라는 느낌은 어느 세대보다도 진하게 다가오고 있다고 하겠다.


가로등 기둥에 걸려있는 태극기들은 아마도 연휴 내내 걸려있을 것이다. 연휴가 태극기를 걸어야 하는 한글날까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요새는 태극기에 대한 법이 바뀌어 국경일이나 기념일에만 거는 것이 아니라 걸고 싶으면 아무 때나 밤낮으로 걸어도 상관없다고 한다. 국군의 날을 맞이하여 나도 베란다 바깥 난간 한 쪽에 태극기를 걸었다. 그러나 곧 거두어 들였다.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바뀐 법은 비가 온다고 해서 태극기를 접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비 맞는 태극기를 보면 어쩐지 애잔해 지는 느낌이 들고 더렵혀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릴 때 받았던 교육의 힘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나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사는 인천의 도로변 태극기들이 수난을 맞고 있다. 길거리에 설치된 깃발꽂이들은 가로등 기둥의 일정한 높이에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있다. 거기에 태극기를 걸면 태극기는 도로 쪽으로 1M 이상 더 나오고 태극기 길이만큼 도로 바닥 쪽으로 낮아지게 된다. 깃발꽂이가 가로등에 너무 낮게 설치된 고로, 그래서 길 가녘 차로로 높은 차들이 지나게 되면 차량의 지붕에 태극기가 스치게 된다. 버스의 경우에는 지붕이 곡선이고 매끄러우니 태극기의 절반정도를 스치고 지날 뿐이지만, 그로 인하여 태극기는 더렵혀지고 있지만, 적재함이 노출된 화물트럭의 경우 태극기는 노출된 짐이나 적재함 모서리에 걸려 깃대가 부러지고 깃발은 훼손되는 것이다.


지난 3.1절 아침 7시 30분, 그 시각에도 초봄의 햇살을 받으며 곳곳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길을 건너기 위하여 건널목에 이르자 눈에 들어온 첫 모습은 반대편 가로등 기둥에 깃대가 꺾여 아스팔트바닥으로 곧 떨어질 것 같은 태극기의 모습이었다. 우선 걸음을 멈추고 해당 구청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휴일이지만 관공서이므로 숙직자나 당직자가 있을 것이고 3.1절에 부러진 태극기가 가히 볼품사납고 마음도 안 좋았기 때문에 이 사항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한참만에야 통화가 이루어졌다. 상황을 설명하고 교체를 요구했다. “3.1절 아침에 꺾어진 태극기가 있어서 되겠느냐, 사진도 찍어 놨다”고 엄포(?)도 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전화를 받는 사람은 빨리 조치하겠지만 휴일이라 좀 늦어질 수도 있다는 말을 남겼다. 9시경 돌아오는 길에 같은 장소를 지나며 바라본 곳에는 새 태극기가 꽂혀 있었다. 그러나 그 옆에 시커멓게 훼손된 것은 교체되지 않았다. 꺾어진 태극기를 빨리 교체한 것은 좋은 일이나 그 참에 훼손된 것도 교체를 하였으면 좋았을 텐데 참 생각이 거기까지인가 하는 아쉬움이 앞섰다.


그 후 8.15를 비롯하여 다른 국경일에 태극기가 걸려있는 길가에서는 심심치 않게 꺾어진 태극기가 눈에 띄었다. 오늘도 내가 지나온 길가의 태극기는 두개가 그리 되어 있었다. 이 모습들을 보면서 도로변 태극기 계양을 담당하시는 분들은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였을 텐데 가로등 깃대 꽂는 자리는 왜 변화가 없는지 의아스러웠다.


2017년 10월 1일

국군의 날에

하늘빛



* 이 글을 올리는 오늘은 개천절이다. 기념식은 그대로 이루어졌으나 오늘은 몇 개의

   태극기가 훼손되거나 부러져 있는지 기우가 앞선다.

   그나저나 가수 ‘이용’이는 좋겠다. 또 하루 벌어 1년 먹고 산다는 10월의 마지막 

   밤이 곧 찾아올 테니까.